[전병서 칼럼] '단반도체 1등' 대만을 벤치마크 하라

2024-09-23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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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1등 기업의 저주”가 내렸다?
바둑에서는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있지만 반도체업계에서 대마(大馬)도 죽을 수 있다. 세계 1위 반도체업체였던 인텔은 2024년 2분기에 16.1억 달러의 손실을 내면서 1981년 이후 43년 만에 주가가 장부가를 하회하는 수모를 겪었다. 15%의 감원과 파운드리 사업부의 분리를 발표했다.
자동차업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세계 1위 폭스바겐이 전기차시장에 제대로 대응 못해 독일과 중국공장의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반도체업계 40년 황제에서 계륵이 된 인텔, 세계 1위 자동차회사로 부상했다가 구조조정에 들어간 폭스바겐 모두 “1등의 저주”에 빠진 슬픈 거인들의 모습이다. 정부가 나서서 전방위 지원을 하지만 이미 한번 쓰러진 공룡을 다시 뛰게 할 수는 없다.

반도체산업의 황제, 인텔을 지옥으로 보냈고 미국과 일본이 천문학적 보조금 주면서 공장 유치하는 기업이 바로 대만의 TSMC다. 지금 3nm 이하 첨단반도체와 AI용 GPU칩은 대만의 TSMC 없으면 미국도 답이 없다.

2023년 한국은 1인당 GDP에서 일본을 넘어섰고 2022년 대만은 1인당 GNI에서 한국을 넘어섰다. 비밀은 반도체가 없는 일본은 한국에 추월 당했고 첨단 반도체가 있는 대만은 한국을 넘어섰다. 반도체가 만든 GDP 약진이다.

첨단반도체의 “슈퍼을(乙)” 대만반도체의 비밀
정말 한국과 '가깝고도 먼 나라'가 대만이다. 우리는 1992년 한·중 수교와 동시에 대만과 단교하는 바람에 대만을 잘 모른다. 대만은 우리 백두산보다 높은 해발 3000m가 넘는 산이 258개나 되고 한국의 파운드리 반도체는 대만에 이은 세계 2위라고 하지만 1위 TSMC 점유율 62%의 5분의 1에 불과한 11%선에 그치고 있다는 것도 잘 모른다.

반도체공장에는 진동, 염분, 먼지가 독이다. 대만은 화산폭발이 있는 '불의 고리'에 들어가 있어 지진이 빈발하고 태풍이 많은 지형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미국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첨단반도체 파운드리의 신화를 이루었다. 열악한 환경이 반드시 나쁜 것만이 아니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대만 반도체산업의 성공은 첫째 사람이다. 대만은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나라다. 한국의 재미교포들이 세탁소, 슈퍼마켓 할 때 중국 화교는 주린 배 끌어안고 미적분 풀며 전자공학을 공부했다. 같은 고향사람들 끌어주고 밀어주는 것은 반도체업계도 예외 없다.
지금 엔비디아의 젠슨황, AMD의 리사수를 비롯해 파운드리의 주고객인 세계 10대 팹리스 회사의 CEO 중 8명이 대만 혹은 중국계이다. 삼성 파운드리가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삼성에 주문 주고 말고는 이들 CEO의 맘이다.

둘째, 대만 파운드리는 고객과 싸우지 않는다. 휴대폰, 서버, 통신장비회사들과 제품경쟁이 없다. 이들이 원하는 반도체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세트업체는 기술 유출의 리스크가 없기 때문에 제품에서 경쟁사인 삼성의 파운드리에 주문은 피하고 TSMC에만 몰린다
셋째, 정부와 사회의 반도체 밀어주기다. 대만은 반도체기업 TSMC를 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 호국신산(護國神山)으로 부른다. 중국의 공격을 미국이 필연적으로 막아주는 것은 TSMC의 첨단반도체 공장이기 때문이다.

대만의 새로운 라이칭더 정부는 경제를 총괄하는 사령탑인 경제부 장관에 반도체기업 CEO 출신 궈즈후이(郭智輝)를 기용했다. 모든 경제정책의 최우선에 반도체를 둔다는 말이다. 반도체는 물을 많이 사용하는 산업인데 대만은 여름 가뭄에 물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농업용수를 반도체에 최우선으로 사용하게 했다.

넷째, 4차 산업혁명시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시계제로 시대에는 선택과 집중이 답이다. 모든 바다의 고기를 다 잡을 수는 없다. 내가 가진 그물과 배의 크기 그리고 선원의 숫자에 맞춰 최선의 조업을 하는 것이다.
반도체 설계, 제조, 조립, 완제품의 모든 공정을 다하는 IDM이 인텔과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 공룡기업들의 업(業)의 방식이지만, 후발이고 자금력도 떨어지는 대만의 선택은 제조에만 특화하는 것이었다.

첨단반도체 라인 하나 건설에 250억 달러씩 들어가는데 이를 감당할 반도체 설계업체는 없다 보니 대만의 TSMC에 모든 주문이 몰리는 것이다. 2등 하면 한방에 훅 가는 4차혁명의 시대의 생존법은 1등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기우제 지낸다고 바로 비가 오지는 않는다

최근 한·중 증시에서는 미국의 모 증권사 반도체경기 피크 보고서 때문에 반도체 주가가 폭락해 시끄럽다. 미국은 AI용 서버가, 중국은 휴대폰이 반도체 먹는 하마다. 미국은 AI붐에 빅테크가 천문학적 자금을 투자하는 바람에 AI서버용 반도체는 이미 지난 사이클보다 더 높은 성장률로 경기 피크를 친 것은 맞지만 미국의 반도체 소비는 세계시장의 25%선에 그친다. 아시아와 중국의 소비가 65%를 차지한다.

아시아와 중국은 소비심리가 죽어 휴대폰의 교체주기가 길어졌다. 미국 증권사가 주장한 반도체의 겨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여름이 오고 있는지는 중국 17억명의 휴대폰 가입자의 교체수요, 업그레이드 수요가 결정할 전망이다. 내수경기 최악이라는 중국에서 최근 370만원짜리 화웨이 3단폴더폰 메이트XT의 예약자 수가 11일 만에 642만명을 넘었다.

아이 하나 키우려면 온 동네가 나서야 한다는 말처럼 AI시대 혁명은 차고나 기숙사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온 나라가 나서는 시대다. 거대한 플랫폼 자본주의가 '인공의 神(AI)'을 매일 키우고 발전시킨다. 빅데이터의 양과 질이 AI의 지능지수를 결정짓는다. 거대 플랫폼이 가입자를 확보하고 거기서 나오는 거대한 빅데이터를 처리하는 데이터센터를 짓고 GPU를 줄 서서 사는 이유는 '인공 神'을 만들기 위함이다.

신은 전능하고 신을 장악하면 진정한 패권자가 된다. 반도체투자는 국가로 보면 국방비이고 빅테크로 보면 일생일대 승부를 걸어야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굿판의 제사상 차리기다. AI시대 2등 하면 죽는다. 제조시대에는 금은동이 있었지만 AI시대는 1등이 다 먹는 'WTA(:Winner takes all) 시대'다.

빅테크기업은 1등 하든지 아니면 죽든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빅테크의 AI투자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투자한다. ROE(자기자본이익률), 사이클 따위는 생존의 문턱 앞에서는 그냥 바람소리다. 묻고 더블로 가는 것이 생존의 유일한 법칙이기 때문이다.

지금 미·중 기술전쟁은 반도체가 인계철선이다. 미·중의 전쟁에서 한국이 안전하려면 반도체가 피난처다. 반도체산업에 정부, 정치, 기업, 사회가 돈, 자원, 인재를 몰아줘야 한국이 산다. 반도체 지원에 정부는 미적거리고, 정치는 다리 걸고, 사회는 무관심하고, 기업만 발버둥치면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다.

한국에서 폭망론이 넘쳐나는 중국은 1조 위안(약 183조원)의 반도체펀드를 만들어 지원하고, 재정적자로 정부도 셧다운 하는 미국은 반도체에 527억 달러(약 70조3070억원)를 퍼 넣는다. 잘 모르면 1, 2등 따라하면 되는데 왜 한국은 반도체 지원만은 1등, 2등을 따라하지 않는지 모른다. 기회의 신은 발에 날개 달린 대머리다. 정확히 빨리 잡지 않으면 쏜살같이 지나간다. 한국, 첨단반도체 1등국가 대만의 반도체산업 지원을 제대로 벤치마크 할 필요가 있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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