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에서 인질 6명이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이스라엘을 향한 휴전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인질 협상 타결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대규모 시위와 총파업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네타냐후 총리는 이집트와 연결된 가자지구 최남단 ‘필라델피 회랑’을 계속 점령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CNN 등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악의 축(이란과 그 대리 세력)이 필라델피를 필요로 한다”며 “우리가 그곳에 주둔한다는 사실은 영구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필라델피 회랑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이집트 국경의 완충 지대로, 이곳의 병력 주둔은 휴전 협상의 주요 쟁점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인질 석방에 나보다 더 헌신적인 사람은 없다”며 “누구도 나에게 설교할 수 없다”고 휴전·인질석방 협상 요구를 일축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델라웨어 해변 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네타냐후 총리가 인질 협상을 확보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백악관 풀 기자단이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설교’ 언급은 바이든 대통령 답변을 염두한 것으로 해석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필라델피 회랑은 하마스에 산소와 재무장을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이라며 “이 회랑은 우리 생존에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네타냐후 총리는 필라델피 회랑에서 철수한다고 인질들을 데려올 수는 없을 것이고 반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철수 시 휴전 1단계 기간 하마스가 인질들을 육로로 이란이나 예멘으로 옮길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영국은 국제법 위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 허가 일부를 중지했다. 데이비드 레미 외무장관은 이날 하원에서 대(對)이스라엘 무기 수출 검토 결과, “특정 무기 수출이 국제 인도주의법을 심각하게 위반하거나 위반을 용이하게 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분명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내준 대이스라엘 수출 허가는 350건으로, 이번 결정은 그중 약 30건에 해당한다. 이번 조치에는 군용기와 헬기, 드론 부품이 포함되지만 다국적 F-35 전투기 프로그램을 위한 영국산 부품은 들어가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시작 이후 이스라엘에 일부 무기 판매를 중단한 서방 주요 동맹국은 영국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다만 레미 장관은 “영국의 수출 허가 검토는 정부의 법적 의무”라며 “이는 전면 금지나 무기 금수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그는 “영국은 국제법에 근거한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계속 지지한다”고도 했다.
하마스는 인질 추가 살해를 위협하며 이스라엘에 휴전 협상을 압박하고 나섰다. 하마스의 무장조직 알카삼 여단은 이날 성명에서 “점령군(이스라엘군)이 구금 장소에 접근할 경우 인질 처리에 대한 새로운 지침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이어 “네타냐후가 협상을 성사시키지 않고 군사적 압박으로 이들을 풀려나게 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이들이 관 속에 갇혀 가족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한 땅굴에서 수습된 6명의 시신은 부검 결과 이스라엘군에 발견되기 약 48시간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후 이스라엘에서는 휴전과 인질 석방 협상을 정부에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와 노동단체의 파업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등 이스라엘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시위에는 약 70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으로 추산된다. 이스라엘 인구가 약 950만명인 것을 감안할 때 전체 인구의 7~8%가 시위에 참여한 것이다. 이들은 인질 석방을 미뤄온 네타냐후 정부를 질타했다. 이는 가자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 반정부 시위이다.
아울러 노조원 80만명의 최대 노동운동 단체인 히스타드루트의 총파업까지 겹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벤구리온 국제공항과 주요 항구, 대학, 쇼핑몰이 문을 닫았고, 버스와 경전철 등 대중교통도 마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