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프레슬리가 반세기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인공지능(AI) 기술이 1977년에 사망한 엘비스를 무대 위로 불러냈다. 오는 11월 영국 런던에서 시작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일본 도쿄, 독일 베를린 등 월드투어를 진행하는 ‘엘비스 에볼루션(Elvis Evolution)’에 관한 얘기다.
영국 엔터테인먼트 회사 레이어드 리얼리티(Layered Reality)는 엘비스를 되살리기 위해 수백 시간의 영상과 수천 장의 사진, 음악 등 수많은 데이터를 활용해 엘비스를 재현해냈다. 이 AI는 노래하고, 춤추고, 말하고, 걷는 방식까지 엘비스의 모든 것을 학습했다고 한다. 엘비스의 진짜 공연 영상이 그의 정면만을 보여줬다면, AI 엘비스는 당시 뒷모습까지도 구현할 수 있다는 게 레이어드 리얼리티 측의 설명이다.
이렇듯 AI 기술 발전은 콘텐츠 시장까지 파고들었다. 콘텐츠 생산은 물론이고 소비에서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다만, AI가 몰고 올 변화를 향한 시각은 엇갈린다. 콘텐츠 제작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여 창작자들의 창의성을 극대화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과 콘텐츠 질을 저하할 뿐만 아니라 저작권 침해 문제를 촉발할 것이란 비관론이 팽팽하게 맞선다.
2주만에 5분 영상 생성…창의성 극대화하나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공동 주관한 ‘2024 국제방송영상마켓(BCWW)'에서도 AI는 뜨거운 이슈였다. 권한슬 감독 겸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대표는 지난달 27일 트렌드세션 ‘AI가 TV를 만나다’에서 “AI만으로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AI 필름’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3년 후에는 CG(컴퓨터그래픽) 대신 AI를 활용해 장면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해질 것”이라며 “AI가 제작비를 줄이면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신인 창작자들은 본인의 세계관과 색깔을 보여줄 기회의 장을 얻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 감독의 AI 영화 ‘원 모어 펌킨’은 올해 초 두바이에서 열린 제1회 국제 AI 영화제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동시 수상했다. 최근에는 ‘멸망의 시(Poem of Doom)'라는 최신작을 공개했다. 1년 전 AI 기술을 활용해 만든 원 모어 펌킨과 달리, 멸망의 시는 최첨단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했다. 이 작품은 5명이 2주 동안 작업해 완성했다.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비약적인 제작 속도다. 영상과 배우, 연기, 음성, 음악 등 모든 요소를 생성형 AI로 만들었다. 실사 촬영과 CG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권 감독은 멸망의 시를 만들면서 AI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체감했다. 그는 “1년 전만 해도 AI 기술은 저해상도 GIF 파일 수준이었다. 그러나 단 1년 만에 오픈AI '소라'가 공개됐다”며 “3년 후에는 AI로 장면을 제작하는 것이 당연한 프로세스가 될 것이다. 실사 촬영과 AI가 융복합하는 미래가 조만간 열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오픈AI는 연내 동영상 생성형 AI '소라'를 대중에 출시할 계획으로, 현재는 시각예술가, 디자이너, 영화제작자 등에만 공개돼 있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소라가 공개되면 영상 제작 환경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본다. 지난 2월 대중에 선보인 소라의 데모 영상이 사람이 오랜 기간 공을 들여 만든 것처럼 너무나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마이클 맥케이 아시안 아카데미 크리에이티브 어워즈 회장은 AI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만큼, 이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AI를 통해) 혁신과 창의성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다. (AI를) 포용한다면 제작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고 더 강력한 콘텐츠를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권 감독 역시 “AI가 스스로 콘텐츠를 창작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창작의 주체고, AI는 도구”라며 인간이 AI를 통해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그는 정보의 빈부격차를 해소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전 세계에는 8000개가 넘는 AI 서비스가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중 10개도 모를 것”이라며 “정보를 잘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간 격차가 커져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Z세대는 콘텐츠 질 못 믿어…저작권 침해도 문제
AI가 콘텐츠 시장에 가하는 위협으로는 신뢰도 저하와 저작권 침해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특히 AI에 친숙한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가 AI 활용 콘텐츠에 부정적인 점은 AI 콘텐츠의 질이 소비자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콘진원이 낸 ‘Gen Z 콘텐츠 이용 트렌드’ 연구 보고서를 보면, Z세대의 AI 활용 콘텐츠 친숙도는 약 28%로, 밀레니얼 세대(14%), X세대(12%), 베이비부머 세대(10%) 등 다른 세대보다 높았다. 그러나 AI 활용 콘텐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43%에 달했다. 베이비부머 세대(27%), 밀레니얼 세대(35%) 등에 비해 부정적 경향이 뚜렷했다. 보고서는 "Z세대는 AI에 친숙한 만큼 AI 기술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AI 활용 콘텐츠의 질에 대한 비판적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저작권 침해도 심각하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이 최근 개최한 ‘제4회 2024 저작권 보호 미래 포럼’에서는 생성형 AI의 저작권 침해 사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전 세계에서 생성형 AI와 관련한 저작권 소송이 빠르게 늘고 있는 가운데 저작자들은 침해 저작물을 특정하기도 어렵고 실질적 유사성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응준 린 법무법인 변호사는 “AI 소송을 추적하다가 이제는 그 수를 세는 것을 포기했다. (관련 소송이) 30개쯤 될 것 같다”며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소송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 침해 사례는 글, 이미지, 음성 등 다양하다. 그는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저작권 침해 이슈는 스타일의 유사 문제, 작품 및 화풍의 유사 문제가 크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 유튜브에는 유명 코미디언인 조지 칼린의 1시간 분량의 영상이 공개되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코미디언은 2008년 사망했기 때문이다. 한 팟캐스트 회사가 AI로 영상을 제작한 것으로, 칼린의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됐다. 전 변호사는 “이는 앞으로 AI 생성물에 의한 저작권 침해에서 굉장히 많이 나타날 수 있는 유형”이라고 관측했다. 이외에도 NYT-오픈AI 간 소송, 게티이미지-AI 이미지 생성기 스테이블 디퓨전 개발사 간 소송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 변호사는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려면 원고는 자신의 저작물이 AI 학습 데이터에 포함됐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피고가 학습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 한 저작물이 학습 데이터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짚었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산출물이 기존 저작물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의거성 입증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Have I been Trained?’란 사이트를 통해서 본인의 저작물이 어떤 AI에서 학습 데이터로 사용됐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100%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