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에서 매출 8조원 시대를 목전에 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이하 벤츠코리아)가 지난해 1900억원대에 달하는 배당금을 해외 본사에 송금했다. 벤츠코리아는 매년 국내에서 벌어들인 돈 100%를 배당금 명목으로 본사에 송금하고 있다. '고배당' 논란이 처음은 아니지만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전기차 배터리 화재 사태에 소극적 대응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터라 벤츠코리아의 행태가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벤츠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액 7조9375억원, 영업이익 2392억원, 당기순이익 1898억원을 달성했다. 2022년과 비교해 영업이익은 15% 줄었지만,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5.3%, 6.8% 늘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벤츠코리아는 이 가운데 당기순이익의 100%인 1898억원을 본사에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벤츠코리아의 지분은 메르세데스-벤츠AG가 51%, 한성자동차 모기업인 스타오토홀딩스가 49%를 보유하고 있다.
고배당 구조는 수입브랜드의 고질적 병폐지만, 문제는 최근 인천에서 발생한 배터리 화재 사고에 벤츠가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 소방청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 폭발 사고가 발생해 차량 87대가 불타고, 783대가 그을었으며, 아파트 전체 14개동의 일부 배관, 설비 등이 녹는 시설물 피해가 발생했다. 벤츠 측은 이에 대한 지원금 성격으로 '인도적 목적'의 45억원만 지급하고, 배터리 리콜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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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가 발생한 EQE 350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는 중국 파라시스 사가 제조한 제품이다. 벤츠코리아에 따르면 현재 모델 EQE 300, 350+, AMG 53 4MATIC+, 350 4MATIC, 4004MATIC과 SUV인 EQE 500 MATIC, 최상위 전기 세단인 EQS 350 등에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됐다. 벤츠코리아 관계자는 "지금은 화재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며 "합동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소비자들은 벤츠의 이런 소극적 태도에 아쉽다는 반응이다. 앞서 2020년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코나, 아이오닉 등의 배터리 화재 당시 국토교통부 결함조사가 완료되기 전임에도 소비자 보호를 위해 2만6699대 차량에 탑재된 고전압배터리시스템(BSA)을 전량 교체하는 리콜을 단행한 바 있다. 이후 양사는 국토부 조사 결과에 따라 자동차제조사와 배터리 제조사가 각각 3대 7로 비용을 분담했다. 벤츠는 중국 파라시스와 지분을 보유한 특수협력관계에 있는 만큼 사태 해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40대 벤츠 소유주는 "중국 파라시스 사의 배터리를 최고급 사양인 EQS 350에도 탑재했다는 것은 사실 꽤 충격적"이라면서 "1억원 중반대의 차 가격을 생각하면 국내 소비자로서 배신감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유주는 "벤츠의 1대 주주로 중국기업이 등극한 2018년부터 검증되지 않은 중국 배터리 제조사와의 협력을 확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벤츠가 원가절감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브랜드 신뢰 회복을 위해서 좀 더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에 대해 벤츠 코리아는 "보상금 45억원은 사고의 원인과 무관하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금액"이라며 "전체 보상안을 45억원으로 제안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고배당 지적에 대해서도 "배당금은 이미 지급한 금액으로 이번 사고에 대한 보상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벤츠는 현재 사고의 근본 대책을 확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벤츠는 현재 사고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글로벌 본사에서 전문가를 파견했으며, 지난 13일에는 소비자 요구에 따라 베터리 셀에 대한 정보를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또 전기차 무상점검도 지난 14일부터 전국 공식 서비스센터를 통해 진행하고 있으며, 전담 콜센터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