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일인 15일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과거 아시아 국가에 대한 가해 사실이나 반성 내용을 올해도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해 패전일에 언급한 "전쟁의 참화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표현을 그대로 반복하는데 그쳤는데, 아사히신문 등 일본 매체들도 이날 기시다 총리의 추도사는 '전례 답습'에 그친 내용이었다고 평했다.
전날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기시다 총리로서는 전몰자 추도식에서의 연설은 이번이 마지막이 된다.
이날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추도식 식사(式辭)에서 기시다 총리는 "전후 일본은 일관되게 평화국가로서 그 발걸음을 내딛어 왔다. 역사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며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전쟁의 참화를 되풀이하지 않겠다. 전후 79년이 지났지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이 단호한 맹세를 세대를 넘어 계승하고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패전일에 이웃 나라가 겪은 피해를 언급하고 반성의 뜻을 표명해 오던 관행은 2012년 12월 아베 신조 총리 재집권 이후 사라졌다.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가 처음으로 "전 세계 전쟁 희생자 및 유족에게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언급한 이후 1994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비참한 희생을 초래했다"며 "깊은 반성과 함께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반면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식사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깊은 반성 위에 서서 다시 전쟁의 참화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해 지난 해에 이어 '반성'을 언급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기시다 총리의 기념사는 '전례 답습'이 짙은 내용이었다. 피폭지 히로시마 출신 총리로서의 독자성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두 차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아베 전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의 연설 내용을 답습한 표현이 많았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또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으로 보호받는 가운데 '핵무기 없는 세계'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언급도 없었다고 짚었다. 그나마 새로운 부분으로는 '전후 79년이 지났지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전쟁의 참화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부분과, 이같은 맹세를 '세대를 넘어 계승'하겠다고 표명한 부분이라고 전했다.
또한 아베 총리가 2020년 기념사에서 사용한 이후 지난 해까지 4년 연속으로 언급했던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법의 지배에 기초한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질서의 유지 및 강화'와 '인간의 존엄성'의 중요성을 호소했다.
아사히신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해양 진출과 대만 유사시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