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재계에 따르면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준감위 정기회의에 앞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회비 납부는) 아직까지 준감위에서 정식 안건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며 "안건 논의에 앞서 필요한 부분에 대해 좀 더 자료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한경협이 삼성전자를 포함한 4대 그룹에 회비 납부 공문을 발송하고 석 달 가까이 흘렀음에도 검토해 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한 것이다.
전날 류진 한경협 회장이 충북 청주시 우수 자문기업 현장 방문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4대 그룹이 회비를) 다 낼 것"이라며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나"라고 기대감을 내비친 것과는 거리가 있는 답변이다.
이 위원장은 이날 "단체와 구성원에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성원은 어떤 특별한 사업 목적이 없어도 기금을 마련하는 게 가능한데, 단체는 구성원의 출연으로 운영되는 만큼 기금 사용처와 관련한 감시 시스템 등이 좀 더 명확하게 설득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경협 회비를 납부하려면 우선) 구성원들의 이해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한경협이 정경유착 핵심 축이라는 인식을 완전히 씻어내지 못한 만큼 아직 삼성전자가 회비를 내며 회원사로 복귀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대표기업이라는 위상이 있는 만큼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등 다른 4대 그룹도 당분간 삼성전자 측 판단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4대 그룹은 과거 국정농단 사태로 전경련을 탈퇴한 바 있다. 이에 한경협은 지난해 4대 그룹을 회원사로 둔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통합하면서 4대 그룹을 형식상 회원사로 확보했다. 하지만 4대 그룹은 실질적 회원사를 판단하는 척도인 회비 납부 요구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한경협은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에 대표 경제단체라는 위상을 빼앗겼다. 이에 한경협은 지난해 류 회장 취임 후 외형 확장을 노리며 4대 그룹에 회비 청구서를 보냈다.
재계에 따르면 한경협은 기업 매출 규모에 맞춰 4개 구간으로 회비를 책정했는데, 4대 그룹은 회비가 가장 많은 1그룹이다. 1그룹 회비는 약 35억원으로 알려졌다.
이는 과거 전경련 시절 대비 절반 수준이다. 4대 그룹의 회원사 복귀가 절실한 한경협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국정농단 사태 이전인 2015년 전경련이 회원사에서 받은 회비는 약 5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60%를 4대 그룹이 냈다.
4대 그룹에서 회비를 받지 못하면 IT·게임·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산업 분야 기업을 회원사로 유치하며 전성기 규모를 회복하려는 한경협 행보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대한상의 등 다른 경제단체가 경제인 600여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제주포럼을 여는 등 한국 기업의 원활한 비즈니스를 위한 공감대 확보와 의제 설정에 주력하는 동안 한경협은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한경협이 4대 그룹에 우선 청구서를 들이밀기보다는 혼란한 국제 경제 정세와 여야 대립으로 인한 입법·정치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 기업들을 위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