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재정환율이 100엔당 800원대를 기록하는 '슈퍼 엔저' 현상이 이어지면서, 연일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일본은 이 상황이 반갑지 않은 눈치다. 외국인 관광객으로 인한 '과잉관광(오버투어리즘)' 문제가 그 이유다.
10일 여행업계에 따르면 7~8월 출발하는 주요 여행사를 통한 해외 패키지 예약 비중은 동남아에 이어 일본이 2위를 차지했다.
도쿄와 오사카, 후쿠오카 등 한국인이 주로 찾는 일본 지역은 이미 30도 안팎의 무더운 날씨를 기록 중이다. 더구나 섬나라인 일본 지형 특성상 습도가 높아 일본의 여름은 한국보다 무더운 데다가 6월부터는 장마철까지 겹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일본 여행의 인기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엔저' 덕이다. 실제로 원·엔 환율이 100엔당 860원대로 떨어졌던 날, 커뮤니티에는 계획에 없던 일본 여행을 위해 엔화를 구매했다는 인증이 쏟아지기도 했다.
최근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왔다는 김모씨(30)는 "남자 친구와 결혼 준비를 하면서 예물을 준비하고 있는데 환율을 생각하면 일본에서 사 오는 것이 이득이라 예물 쇼핑을 하러 왔다"면서 "2박 3일 여행하고 필요한 것들을 쇼핑하고 가면 여행 경비 정도는 벌고 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올해 여름휴가로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장모씨(36)는 "지난해 7월 오사카에 갔는데 동남아보다 더워서 돌아다니기 힘들었다"면서 "지금 엔화가 너무 저렴해 일본 여행은 포기할 수 없었기에 비교적 시원한 홋카이도행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다만 일본에서는 폭발하는 여행 수요를 마냥 달가워하진 않는 모습이다. 엔저 현상이 지속하자 한국 외에도 아시아와 유럽, 미주권 관광객들이 물밀듯이 몰려들면서 오버투어리즘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후지산에서는 쓰레기 무단 투기와 조난 사고 등이 발생하는가 하면, 오키나와에서는 다이빙 관광객이 몰려든 탓에 산호초가 오염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는 환경오염뿐 아니라 식당과 카페 등 먹거리 물가 상승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곧 내국인들의 물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에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오버투어리즘 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별로 관광세를 도입하거나 외국인 차등 가격을 도입하는 등 문제 해결에 나섰다.
7월에서 9월 초까지 내외국인 2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일본 대표 관광지 중 한곳인 후지산은 7월부터 등산객에게 1인당 약 2만7000원(2000엔)의 통행세를 받는다. 기존 9000원에서 3배나 올린 가격이다.
오사카부는 1박에 약 6만9000원(7000엔) 이상인 숙박시설에 1인당 2700원(300엔) 수준의 숙박세를 받고 있는데, 여기에 관광세를 추가하거나 외국인 관광객에게만 추가 징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홋카이도 니세코초에서는 오는 11월부터 1박당 숙박료에 따라 1인당 약 1만8000원(2000엔)의 숙박세를 걷는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가까운 일본은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인데, 슈퍼 엔저가 이어지면서 일본 여행에 대한 심리적 문턱이 더욱 낮아졌다"면서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관광세 도입 등) 결단에도 불구하고 일본 여행의 인기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