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장수 패러독스 …출산율 격감 해법은 있다

2024-06-1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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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면서 단순 수명 증가가 아닌 기능적 장수(functional longevity)가 부각되고 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온전한 신체와 정신을 갖추어 삶의 질을 양호하게 유지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개인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신종 역병과 재난을 극복하는 사회적 시스템의 정비는 필수적이다. 제반 시설뿐 아니라 생활환경의 안전을 추구하고, 자연환경은 물론 환경 변화의 악영향도 극복하여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진 사회는 인간의 염원인 장수의 패러다임을 구축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향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개혁에도 불구하고 장수사회로 진입하면서 미증유의 역설적인 문제들이 떠오르고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출산율이 격감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인간관계의 양적·질적 변화, 세대 갈등, 사회질서 변조, 존엄성 문제 등이 제기되고 있다. 인류사회의 근간이었던 기존의 질서와 윤리의 바탕이 흔들리는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비를 서둘러 하지 못하면 장수의 역풍이 불게 마련이다. 장수 패러독스(Longevity Paradox)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심각하게 고심하면서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장수 패러독스의 첫째는 무엇보다도 출산율 격감이다. 생명현상 미스터리 중 하나는 종의 기대수명과 번식이 반비례한다는 점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하루살이와 같은 벌레나 멸치와 같은 작은 어류는 엄청난 양의 알을 낳아 번식하고 고래나 코끼리같이 크고 오래 사는 동물들은 평생 극소수의 새끼밖에 낳지 않는다. 식물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잡초와 같은 일년생 식물은 순식간에 지역을 덮을 정도로 번식하는데 다년생 나무들은 제한된 지역에서만 번식한다. 인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별로 보면 기대수명이 높은 부유한 선진국의 경우는 출산율이 극히 저조한 반면 전쟁에 시달리거나 가난한 국가는 기대수명이 짧은 대신 높은 출산율을 보인다. 중남미 국가들이나 아프리카 지역의 출산율이 높고 구미 국가들의 출산율이 낮은 이유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역적 차이에 국한되지 않고 동일한 국가 내에서도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시계열적으로 출산율이 격동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전쟁이 끝나자마자 우리나라에는 베이비붐이 일어났다. 당시는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이후 사회적 환경이 안정되고 기대수명이 차차 증가하면서 출산율이 저하되기 시작하였다. 기대수명의 증가에 따라 출산율이 저하되는 수명과 출산율의 반비례 관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현상이다. 수명 증가에 병행하는 출산율 저하의 저변에는 사회적·환경적 요인들과 생물학적·진화적 요인들이 서로 얽혀 상호작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번식과 수명 간의 상호 배제적인 조절 기전에 대한 설명은 없다. 환경적요인과 생물학적 요인의 상호작용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학설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마치 생명체의 양적 조율이 미지의 손에 의하여 총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수명과 출산율에 관한 우리나라의 특수 상황이 국제적으로 크게 부각되고 있다. 영국의 저명한 인구학자 에자티 박사는 2030년이 되면 최장수국의 명예를 누려왔던 일본을 제치고 우리나라가 세계 최장수국이 된다고 예측하였다. 그는 우리나라의 기대수명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고 최고 장수국가가 되는 요인으로 의료시스템과 건강보험체계가 최상이고 경제적 풍요와 조기 영양 교육과 사회안전망 확보가 월등함을 지적하였다. 또한 한국의 여성 장수가 압도적임을 강조하면서 그 저변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이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기대수명 증가가 세계적으로 부각되면서 반대급부적으로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의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벌어졌다.

수명 증가는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일이고 인류의 염원이었지만 이에 병행하는 출산율 저하는 미래의 동력을 상실하게 하여 고령사회를 암울하게 하는 요인이다. 따라서 고령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출산율 유지가 절체절명의 조건이다.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 전방위적인 대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우선 사회정책적으로는 결혼을 독려하여 자식을 낳게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출산 위주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출산이 바로 미래 사회를 위한 보장성 보험임을 주지시켜야 한다. 그리고 국가가 지난 20여 년간 수조 원의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악화일로에 빠졌던 이유를 밝혀야 한다. 사회적·정책적 노력만으로 이러한 심각한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인지하여야 한다. 다시는 정책적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출산율 저하 요인에 사회적·환경적 요인과 더불어 생물학적 요인이 얽혀 있음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인류는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마다 혁신적 과학기술을 통하여 해결하였다. 비근한 예가 코로나-19 사태이다. 전 세계가 사회적·정책적 수단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려고 몸부림치면서도 마지막 희망은 바로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있었다. 과학기술 개발이 인류를 암울한 구렁텅이에서 구한 것이다. 출산율 저하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출산율 저하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적 대책에서 과학기술적 측면을 등한시한 점을 정책당국은 반성하여야 한다. 해법의 원칙은 가임여성의 숫자를 증대하고 가임기간을 연장하는 과학기술 개발이다. 가임여성의 숫자를 증대하기 위해서는 불임이나 난임 비율을 감소시키는 의학적 해결이 필요하다. 최근 여성의 불임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이와 더불어 체외수정을 통한 시험관아기의 효율을 증대하는 기술이 발전되어야 한다. 보다 근원적 해결 방안은 여성의 가임기간을 연장·확대하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가임기간은 초경부터 폐경에 이르는 30여 년이다. 폐경기 도래를 지연하여 가임기간 자체를 연장·확대할 수 있다면 츨산율 제고를 위한 획기적 방안이 될 수 있다. 난소 기능을 젊게 유지하고 유관한 내분비선의 노화를 억제하는 방안이 개발되면 결국 여성을 보다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하여 초고령사회의 목표인 기능적 장수를 달성할 수 있다. 출산율 격감이라는 장수 패러독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피상적인 대응에 그치지 말고 사회적 노력과 함께 과학기술 개발을 독려하는 등 본질적인 대응이 시급하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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