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들이 ‘존폐 위기’에 내몰렸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전공의의 병원 이탈 뒤 입원환자와 수술 등이 줄어들면서 수익률이 급감한 탓이다. 석 달 가까이 이어지는 의료 공백으로 종합병원들은 직원 급여 지급 중단과 희망퇴직을 고려하는 등 심각한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가 떠나기 전인 2월 첫째 주 하루 평균 3만3000여 명이던 상급종합병원 입원환자는 4월 넷째 주 2만3000여 명으로 3분의 1가량 줄었다. 이른바 ‘빅5’로 불리는 병원들조차 지난 3월부터 비상경영에 돌입했고 직원 희망퇴직이나 무급휴가를 시행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오주형 경희의료원장은 최근 교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개원 이래 최악의 경영난으로 의료원의 존폐 가능성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며 “당장 올해 6월부터 급여 지급 중단과 더불어 희망퇴직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고 전했다.
경희의료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한 뒤 무급휴가 시행, 보직 수당 및 교원 성과급 반납, 운영비 삭감, 자본투자 축소 등 비용 절감을 시행했으나 억 단위 적자가 두 달 넘게 지속되면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다른 주요 상급종합병원 경영 상황도 녹록지 않다. 전공의 이탈에 이어 교수들마저 ‘주 1회 휴진’을 선언하면서 인력 부족으로 수술을 절반가량 줄였고 환자 역시 급감하면서 수억 원대 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은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면서 의사를 제외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이른바 ‘빅5’ 병원 중 처음으로 희망퇴직 신청도 받고 있다.
다만 의·정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 의료 공백 장기화에 따른 병원 경영난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규모는 당초 정부 방침보다 500명가량 줄어든 1500명 안팎으로 배정될 전망이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의대 증원 백지화 후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결국 이달 중순 의대 증원 효력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정부와 의료계는 대화도 갈등 격화도 없는 소강 상태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의료계는 법원 판단에 기대감을 걸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정부를 압박하는 수위도 높이는 모습이다.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의대 정원 증원 과정에서 절차적 위법성이 발견됐다. 모든 행정 절차를 전면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4월 30일 서울고등법원은 정부에 오는 10일까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한 과학적 근거 자료, 현장 실사 등 조사 자료, 배정위원회가 각 대학에 세부적인 인원을 배정한 회의록 등을 요구했다.
전의교협은 이와 관련해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 배정 주요 회의에서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아 관련 법령을 위반한 담당 공무원을 법과 원칙에 따라 즉각 문책하고, 이제라도 의대 정원 증원, 배정 과정의 절차적인 위법성을 인정하고 지금까지 모든 의대 정원 증원 행정 폭주를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