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이재명, 권력투쟁 정치에서 리더십의 정치로 나아가야

2024-04-1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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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4·10 국회의원 총선이 더불어민주당 압승, 국민의힘 참패로 끝나자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상당 부분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그런 지적을 받아야 할 사람은 윤 대통령만이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윤 대통령 못지않게 정치 행태의 변화가 요구된다. 이 대표는 총선 공천 과정을 통해 민주당을 장악했다. 그리고 총선 압승으로 국회를 장악했다. 이 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총선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그런 만큼 정치에서 이 대표의 역할과 책임이 커졌다. 그가 진정한 정치 지도자의 면모를 보일 수 있느냐가 우리 정치의 중대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2022년 3월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지금까지 권력 투쟁의 정치를 해왔다.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모든 것을 쏟는 정치가 권력 투쟁의 정치다. 대선에서 패했으면 일정 기간 자숙의 모습을 보이는 게 그간의 관례다. 그러나 이 대표는 그러지 않았다. 곧바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다. 이어 민주당 대표 경선에 도전해 대표직을 차지했다. 권력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준다. 

 

이 대표의 권력 집착은 타고난 본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법 리스크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방탄’에 성공했다. 한번은 민주당이 국회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는 바람에 구속될 위기에서 벗어났다. 또 한번은 민주당 일부 의원 이탈로 체포 동의안이 가결됐으나 법원이 영장을 기각해 구속을 면했다. 이제 이 대표가 민주당을 장악하고 총선에서 압승해 국회 권력을 쟁취했으니 정부는 물론이고 법원도 과거보다 더 이 대표 눈치를 볼 가능성이 커졌다.  이 대표의 권력 유지를  위한 ‘방탄’이 한층 더 튼튼해졌다


진실성·신뢰성 무시하며 권력 추구에 올인
 

이 대표는 민주당 대표로 있는 동안 진실성이나 신뢰성 같은 가치는 고려하지 않는 듯한 행태를 서슴지 않았다. 대장동 사건 등으로 자신의 측근 5명이 숨지는 일이 터졌음에도 주눅들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들을 모른다'고 했다. ‘그들을 죽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검찰’이라고 했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하고는 막상 체포될 수 있는 순간이 오자 말을 뒤집었다. 이런 일들은 권력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행동을 해도 된다는 권력 지상주의 행태라는 말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 대표의 권력 투쟁 정치는 총선 공천 과정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났다.  ‘비명횡사, 친명횡재’로 불리는 공천  결과가 그것이다. 민주당은 막말 파문으로 친명 후보가 사퇴한 지역구에서 경선을 두 번이나 치르면서까지 하면서 결국 박용진 후보를 탈락시켰다. 박 후보는 평소 이 대표를 비판해 왔다. 자신에게 도전하는 사람은 절대 살려두지 않는다는 이 대표의 냉혹한 권력 의지가 읽혀지는 장면이다.

 

이 대표는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선동식 정치 행태를 보였다.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윤 대통령 발언을 공격거리로 삼은 게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 발언 전문을 보면 당초 MBC가 윤 대통령 발언 취지를 거두절미하고 왜곡했음이 드러난다.   

 

윤 대통령은 '원래 가격은 1700원 정도인데 875원에 판매 중'이라는 마트 관계자의 안내에 "여기 하나로마트는 이렇게 하는데 다른 데는 이렇게 싸게 사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이에 관계자가 "(농협중앙) 회장님이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하라고 했다"고 하자 농협중앙회장은 "원래는 2550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한창 비쌀 때에는 3900원까지"라고 설명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대파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이 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물가를 몰라서 대파 한 단을 875원이라고 한 게 아니라 '875원이라면 소비자 입장에서 합리적인 가격일 텐데’라는 뜻으로 희망 사항을 말한 것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총선 압승으로 정치 위상 높아져
 

그럼에도 이 대표와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대파 한 단 값도 모르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공격했다. 이 대표는 과거에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가 논란에 휩싸이자 "(박 전 대통령을)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 말이라는 것은 맥락이 있는데 맥락을 무시한 것이 진짜 문제"라고 했다. 대파 논란이야말로 맥락을 무시한 말이다. 전형적인 거두절미식 선동이다. 권력 투쟁에서 선동은  빠지지 않는 수단이다. 민주당 일부 지지자들은 투표소에 대파를 들고 가는 쇼를 벌이기도 했다. 그만큼 대파 논란이 선거에서 유리할 것으로 봤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대파 논란은  총선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 대표는 선거를 앞두고 몇 차례 재판 받으러 법원에 출석하면서는 ‘이게 다 정치 검찰이 노린 결과’라고 했다. 재판 일정은 검찰이 아닌 담당 재판부가 정한다. 재판장조차 ‘재판 일정은 재판부가 정한다’라고 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마치 검찰의 장난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법정에 들락거려야 하는 듯이 말했다. 이 역시 교묘한 선동이다. 내막을 잘 모르는 유권자들은 ‘정치 검찰 탓’이라는 이 대표 말을 믿고 ‘검찰 독재 심판’이라는 이 대표 주장에 손을 들어줬을 것이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이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과 위상이 총선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높아졌다. 이제 이 대표는 그 영향력과 위상에 걸맞게 정치 행태를 바꿔야 할 때가 됐다. 권력 투쟁 정치에서 리더십의 정치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권력 투쟁 정치에선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다. 리더십의 정치에서 권력은 정치다운 정치를 하기 위한 수단이다. 리더십은 지도하는 기능이다. 나라가 나아갈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고, 그걸 달성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들이 동참하도록 이끄는 기능이다.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가 헤쳐나가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면서 국민을 설득해 이해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게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다. 

 

이 대표는 ‘소극적 복지에서 적극적 복지로’를 주장한다. 탈락자를 구제하는 소극적 복지에서 탈락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적극적 복지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구체적 내용이 기본 소득, 기본 주택, 기본 대출 등 ‘3대 기본 시리즈’이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듬고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는 나름의 인식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듬고 지원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일이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국정의 방향과 목표라고 할 수는 없다. 


정치 지도자 면모 보여줘야 할 때
 

국정 방향과 목표가 되려면 대내적으로는 국가를 경제·문화·법치 등 주요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원대하고 포괄적인 비전이 담겨야 한다. 이 대표는 그 비전이 있는가? 이 대표의 ‘적극적 복지론’은 복지 분야의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적극적 복지론은 퍼주기 정책이다. 퍼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퍼줄 돈을 마련하는 일은 더 중요하다. 퍼주려면 나라 경제가 잘 돌아가 재정이 튼튼해져야 한다.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도 개혁이 시급하다. 연금과 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막으려면 국민들에게 돈을 더 내게 하든지, 연금 수령액이나 건강보험 혜택 수준을 낮추든지 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가? 돈을 더 내는 것도, 혜택이 줄어드는 것도 대부분 국민은 싫어 한다. 그러나 싫어한다고 방치할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정치 지도자라면 국민이 당장은 싫어할지라도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그 구상을 밝히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대표는 그런 구상과 설득력을 갖추고 있는가?

 

대외적으로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강대국과의 외교· 안보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야 하는지가 중요한 문제이다. 흔히 말하듯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식으로 간단히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처한  외교·안보 현실은 수학으로 치면 초등생도 할 수 있는 더하기와 빼기 수준이 아니다. 대학생도 풀기 어려운 고차원 방정식 수준이다.  

 

이 대표는 이 어려운 외교· 안보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구상이 있는가? 그는 ‘중국과 대만의 문제가 어찌 되든 우리와 뭔 상관이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우리가 왜 끼어드나’라고 했다. 고차원 방정식으로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더하기와 빼기만 하면 충분하다는 식이다. 이 정도 인식 수준으로 복잡하고 냉엄한 국제 현실에서 과연 국가를 안전하게 이끌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권력 투쟁 정치는 교활하고 사악한 술수의 정치다. 거짓, 왜곡, 선동, 말 뒤집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한다. 권력 쟁취라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리더십의 정치는 다르다. 신뢰성, 진실성, 인간성 같은 기본 가치를 존중한다. 선동 대신 설명하고 설득한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정당한 목적을 사실과 이치에 근거한 정당한 방법으로 추구한다. 이 대표가 권력 투쟁 정치에서 벗어나 리더십 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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