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불교미술을 여성이란 관점에서 조망한 대규모 기획전이 주목받고 있다. 세계 각지에 소재한 불교미술 걸작품 92건을 한 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가 지난 27일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개막했다.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불교미술에 담긴 여성들의 번뇌와 염원, 공헌을 조망했다. 불교미술 속 다양한 여성상을 소개하고, 그 뒤에 숨은 사회의 시선과 기대 등을 엿볼 수 있는 전시다.
이를 위해 전 세계 27개 컬렉션에서 모은 불화, 불상, 사경과 나전경함, 자수, 도자기 등 다양한 장르의 귀중한 불교미술 걸작품 92건(한국미술 48건·중국미술 19건·일본미술 25건)을 한 자리에 모았다.
‘금동 관음보살 입상’,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 ‘아미타여래삼존도’, ‘수월관음보살도’ 등 9건은 국내에서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된 작품이다. 또한 해외에 흩어져 있던 조선 15세기 불전도(석가모니 일생의 주요 장면을 그린 그림) 세트의 일부인 ‘석가탄생도’(일본 혼가쿠지)와 ‘석가출가도’(독일 쾰른동아시아미술관)를 세계 최초로 한 자리에서 전시했다.
1부 ‘다시 나타나는 여성’에서는 불교미술 속에 재현된 여성상을 인간, 보살, 여신으로 나누어 살펴봄으로써 지난 시대와 사회가 여성을 바라본 시선을 이야기한다.
여러 부처와 보살이 남성이기 때문에 불교미술 속 여성의 자리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보편적으로 보이는 유형은 어머니였다.
어머니 중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석가모니를 낳은 마야부인이다. 불교 전승에 따르면 마야부인은 출산 후 7일 만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석가모니의 삶을 묘사한 이야기에서는 조명받지 못했다. 석가모니의 일생 중 중요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불전도나 불전 조각의 일부로 표현됐다.
‘석가탄생도’에서는 출산을 마친 마야 부인이 대좌에 위엄 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다. 여타의 불전도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모습으로, 15세기 조선 왕실 남성들의 시선이 간접적으로 투영돼 있다.
7세기 중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28㎝의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도 중요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가져갔다가 2018년 6월 존재가 다시 알려진 불상으로, ‘백제의 미소’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부여 규암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당시 문화재청이 최대 42억원에 매입해 환수하려 했으나 소유자가 150억원을 제시하며 협상이 결렬됐다.
2부 ‘여성의 행원(行願)’에서는 찬란한 불교미술품 너머 후원자이자 제작자로서의 여성을 조명한다.
중세 동아시아 여성들은 여성의 몸으로는 성불할 수 없다는 교리에도 불구하고, ‘법화경’에 나오는 용왕의 딸처럼 모든 제약을 뛰어넘어 부처가 되기를 꿈꿨다.
당대 최고 권력자의 아내 혹은 어머니였을 진한국대부인 김씨(辰韓國大夫人 金氏)가 1345년 조성한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이나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 발원문’은 이 같은 차별적 시선을 내면화한 고려시대 여성들의 자기 인식과 이를 넘어선 성불에의 염원을 동시에 드러낸다. 반면 중국 원대 회화인 ‘유마불이도’에서는 남녀를 비롯한 모든 분별을 뛰어넘는 ‘불이(不二)’의 지혜를 읽을 수 있다.
전시를 담당한 이승혜 큐레이터는 “시대와 지역, 장르의 구분을 벗어나 여성의 염원과 공헌이란 관점에서 불교미술을 조명하는 새로운 접근을 통해 전통미술 속에서 동시대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6월 1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