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한국수자원공사가 건설사·건축사사무소 등 121개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설계보상비 반환 소송에 관한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들 업체는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한강·금강·낙동강·영산강) 유역 정비 사업에 공동수급체를 구성해 참여했지만 입찰에서 탈락했다. 이후 해당 입찰 과정에서 업체들이 가격을 합의하고 탈락한 업체들은 일부러 낮은 점수를 받도록 설계서를 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이들 업체가 담합한 사실을 적발해 시정 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수자원공사는 업체들이 수령한 설계보상비를 반환하라며 2014년 4월 소송을 제기했다. 설계보상비는 입찰에서 탈락한 업체에 발주자가 입찰 참여 시 사용한 설계비 중 일부를 보상해 주는 것을 말한다.
상고심에서는 수자원공사가 직접 발주한 공사에서 입찰 공고의 '설계보상비 반환' 관련 규정을 수자원공사와 업체 간 계약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2심은 반환 규정이 계약은 아니라고 판단해 업체들이 반환금이 아닌 불법 행위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봤다. 직접 담합에 가담하지 않았거나 수동적으로만 동조한 다른 업체까지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담합을 주도한 대표사가 전액을 부담하라고도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입찰 공고 주체가 (설계보상비 관련 규정을) 정했고, 입찰자가 이에 응해 참여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입찰 공고 주체와 탈락자 사이에는 공고에서 정한 바에 따른 설계보상비 지급에 관한 계약이 체결됐다고 볼 수 있다"면서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설계보상비 반환도 대표사와 시공사가 분담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원고와 시공사들 사이에서도 설계보상비 지급에 관한 계약이 성립했다"며 "시공사들은 연대해 원고에게 설계보상비를 반환할 의무가 있고, 직접 담합 행위에 관여했는지에 따라 책임의 유무를 달리 볼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법원은 정해진 용역을 이행한 후 대가를 받는 형태로 계약한 설계사들은 분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