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칼럼] 저출산 대책은 복지가 아닌 자구책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을

2024-02-15 14:38
  • 글자크기 설정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신년사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을 강조하면서, “저출산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KBS-TV와의 신년 대담에서 저출산 문제를 “최우선 국정 과제”라고 다시 강조했다. 정부·여당의 “다른 차원의 접근”으로 나올 정책들이 기대되는데, 마침 야당도 주요 저출산 대책을 발표하고 있어서 희망을 부풀리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부총리급 인구부 신설, 육아휴직과 아빠 출산휴가 의무화, 초등 늘봄학교, 새학기 도약 바우처 지급, 아이돌봄 서비스를 민간 돌봄으로 확대하는 등 전반적으로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출산부부에게 임대주택 제공, 모든 신혼부부에게 대출 지원 등 주거 지원 정책과 아동수당, 아이돌봄 서비스와 무상 바우처 지원 등 현금 지원 정책도 제시했다. 이번에 양당이 발표한 저출산 대책은 종전과는 결이 다르게 저출산 문제의 핵심 원인을 직접 파고들고 있어서 다행이다.
 최근 10여 년 동안 필자가 스크랩한 저출산 관련 신문 기사를 살펴보면, 매년 반복되는 ‘합계 출산율 저하’ 현상에만 주목하여 “저출산 쇼크, 저출산 위기, 인구 위기, 인구 절벽, 출산 절벽, 도시 초등학교 통폐합, 고교 입학절벽” 등 다양한 제목으로 저출산 위기만 보도해 왔다. 그리고 정부의 대처 방식은 일관성 없이 중구난방 정책만 내놓곤 해서 저출산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
 여러 조사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 저출산 원인은 높은 집값, 양육 및 사교육비, 양성평등 환경 미비, 공공 보육 부족, 청년 취업난, 고용 불안, 잦은 야근과 회식 문화, DINK(Double Income No Kids)족의 출산 기피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중에서 저출산의 주요 원인인 높은 집값과 양육비 등 목돈이 들어가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 없이 현금을 산발적으로 지원하다보니 2006년부터 최근까지 저출산 대책에 380조원을 쓰고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양성평등 환경 미비, 여성에게 집중된 육아 부담과 야근 등의 문제는 큰 재정 투입 없이 근무 제도만 변경해도 저출산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저출산의 심각성은 인구 감소 우려를 넘어서서 외신에서 국가소멸을 우려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인구 감소 문제는 교육, 고용, 국방, 조세 등 국가 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고령화와 경제 위기로 이어진다. 1981년 출생아 수(86만7409명)는 사망자보다 4배 가까이 많았는데, 40여 년이 지난 2020년에는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27만2400명)를 추월하는 인구 데드크로스(dead-cross) 현상으로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되었다. 출생아 수가 감소하면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감소하므로 외국에서 노동자와 산업 인력을 공급하도록 이민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인구가 감소하면 소비 여력이 줄어들어 기업 투자도 감소하므로 경제가 위축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반면에 노인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함으로써 초고령화 사회에서 사회보장 비용 부담은 가중되므로 복지정책도 재편해야 한다.
 유럽 각국과 일본 등도 저출산 문제를 겪었지만, 저출산 대책을 적기에 수립하여 출산율 반등에 성공했다. 일본은 다자녀 가구에 대학 무상교육을 제공하고 아동수당을 확대했으며, 한 기업에서 성공한 유연근무와 재택근무 제도를 장려하고 있다. 헝가리는 자녀 수에 따라 출산 예정 대출을 통해 주택자금을 지원했고, 프랑스는 비혼 커플과 한부모 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에도 차별 없이 지원하고 있다. 독일은 이민법을 제정하여 이민자 자녀에게도 내국인과 동일하게 출산·보육 및 육아 지원을 하고 있으며, 스웨덴은 육아휴직 아빠할당제를 의무화하고 육아휴직 기간 급여 수준도 높였다.
 세계 최저 저출산 국가가 되어버린 우리나라가 저출산의 주요 원인인 높은 집값, 양육 및 사교육비, 양성평등 환경 미비, 공공 보육 부족 등을 해결하는 데 특단의 대책을 취해야 할 때다. 이미 국내외에서 시행되었거나 제안된 다양한 저출산 대책 중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는 출산 보조금이나 육아 수당 등 산발적인 현금 지원과 저출산 대책이라기보다 단발성 복지 혜택으로 보이는 정책 등은 중앙정부가 컨트롤 타워로서 체계적으로 지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민법 제정과 이민청 설립 등 입법이 필요한 정책은 더 늦기 전에 정부와 국회가 협조해야 한다. 그러나 외국에서 성공한 정책이라도 우리 문화·관습 상 시기상조이거나 실현 불가능한 정책, 즉 비혼 커플 지원이나 외국인 육아도우미 등은 선별하여 뒤로 미루어야 한다.
 저출산 대책은 복지정책이 아니라 국가 자구책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예비부부나 신혼부부, 영유아의 학부모, 초·중·고·대학생 자녀의 학부모 등 생애주기별 대상자에게 절실하고 실효성 있는 저출산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 첫째, 예비부부나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을 지원하더라도 대중교통이 좋은 곳에 제공하고, 가족 구성원 수에 맞는 규모의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둘째, 영유아 학부모에게 일·가정 양립이 가능해지도록 하려면 민영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수익을 낼 수 없는 곳에는 국공립 시설을 확충하고, 직장의 유연근무 및 재택근무를 지원해야 한다. 셋째, 초등학생을 위한 돌봄교육과 중·고·대학생 자녀의 학부모를 위한 교육비를 지원해야 한다.
 총선, 대선, 지방자치 선거 때마다 저출산 대책 예산을 산발적으로 뿌리는 공약을 제시하곤 했다. 정부 부처와 광역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기초자치단체마저 저출산 대책으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저출산 대책이 효율적으로 기능하려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인 대통령이 범정부 컨트롤 타워를 맡아 직접 지휘해야 한다. 그리고 윤 대통령이 2024년 신년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접근”을 추구하기보다 생애주기별로 절실한 저출산 대책에 ‘선택과 집중’하는 것만이 정공법이다. 정부는 지난 5일 초등학교에 종전의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을 통합한 ‘늘봄학교’ 추진 방안을 발표했고, 국회에서는 이민청을 설치할 수 있도록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이참에 여야가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정책들이 재정 뒷받침으로 실행에 옮겨져서 세계 최저 저출산 국가로부터 탈출할 것을 기대해본다.



이재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미 텍사스대(어스틴) 연구교수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회장 ▶경인교육대학교 6대 총장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