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이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나갔다.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미·중 갈등 등으로 국제정세가 요동쳤으며, 글로벌 CEO들의 기업경영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최근 기술 트렌드가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매년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박람회인 CES에서 세계 최고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선보이는 신기술이 그 한해의 기술 트렌드를 말해 주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인공지능이 뜨거운 이슈였다. 올해 눈에 띈 국내 기업의 신기술은 LG전자·삼성전자의 투명 TV, 현대차의 전기수직이착륙항공기 등이었다.
지난해부터 오픈 AI의 챗GPT로 인해 인공지능 열풍이 불고 있으며 각 산업에서 인공지능 접목 현상이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올해, 세계 시장의 화두는 인공지능과 로봇이다. 삼성전자도 새로 출시한 AI 스마트폰 ‘갤럭시 S24’에 실시간 통역 기능을 장착하였고, SK텔레콤도 정보통신회사에서 인공지능 전문회사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2017년에 세계적인 기술연구소인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을 인수하여 인공지능과 로봇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AI 반도체에서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으며 이에 맞서기 위해 애플, 테슬라, 구글, 메타, MS 등도 AI 반도체를 독자적으로 설계하고 있다. 오픈 AI CEO인 올트먼도 이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앞으로 모든 제품에서 인공지능이 경쟁력의 핵심 역할을 할 것이다.
인공지능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 로봇, 자동차이다. 로봇의 사용범위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급격하게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올해 CES에서 삼성전자는 업그레이드된 AI 로봇 ‘볼리’를 공개하였으며, 로봇이 일반 가정에서 사람과 애완용 동물을 보살피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로봇이 애완동물을 대체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로봇과 전기차의 핵심기술이 되고 있다. 특히 미래 자율주행차 시대에서의 인공지능은 마치 인간의 두뇌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현재 많은 자동차·IT업체들이 미래 핵심 기술인 자율주행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구글의 웨이모는 미국 피닉스, 샌프란시스코에서 무인 로봇 택시를 운행한다. 국내에서도 서울시가 지난해 12월부터 심야에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율주행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제 자율주행 기술시대가 우리 생활 속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기대가 많이 된다. 자율주행차는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땅, 하늘, 바다에서 자율주행 로봇이 활개 치는 날도 멀지 않았다.
기술 트렌드에 앞서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현대차가 지난 2021년 로봇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였고, 테슬라, 샤오미도 로봇사업에 출사표를 이미 던졌으며, 애플도 자율주행전기차를 개발 중이다. 세상은 이미 내연 자동차 시대에서 전기차 시대로 탈바꿈하고 있으며, 자율주행차 시대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IT업체, 반도체 기업, 전자업체, 자동차 회사들이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빠른 속도로 변화되는 기술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과거 필름산업의 강자였던 코닥이 디지털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 도산하였던 것처럼,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10년 이상 1위를 기록했던 노키아가 애플의 스마트폰 시대를 예측하지 못해 경쟁에서 탈락한 것처럼 그 전철을 밟을 것이다.
글로벌 CEO는 국제정세 변화와 관련하여 신속하게 정무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글로벌 기업이 세계 각지에서 사업을 하고 있기에 각국의 경제정책 변화는 물론이고 전쟁, 국가갈등 등에 따른 국제관계 변화에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미·중 간의 기술패권경쟁과 바이든 정부의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정책이다. 이로 인해 미국과 중국의 대기업들은 물론이고, 주변 국가의 글로벌 기업들까지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 중국 반도체 기업, 화웨이 등이 미국의 압박을 받고 있으며, 중국도 희토류 영구자석 제조기술 수출금지 등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또한,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로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영향을 받고 있으며, 국내 자동차·배터리 업체들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년이 되어가고 있다. 서방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있으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 동참하고 있기에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기업활동을 수행하기가 어렵다. 최근 현대차는 가동이 중단된 러시아 공장을 현지 업체인 아트파이낸스에 매각하였다. 삼성전자·LG전자도 부품조달 어려움으로 공장가동을 중단하였으며 현지 업체에 임대를 검토 중이다. 북한이 러시아에 전쟁 무기를 공급하고 있는 등 북·러 관계가 군사동맹 관계로 치닫고 있어 한반도에도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러 관계 악화라는 국제상황은 러시아 시장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상당 기간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지난 1월 대만의 총통선거가 친미 성향인 집권당 후보 라이칭더의 승리로 끝났다. 이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대만의 안보위협과 세계 반도체 시장에 미칠 파장을 걱정하는 전문가들의 시각도 다양하였다. 친중 후보인 제1야당 허우유이가 승리할 경우, 대만의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TSMC에 미칠 중국의 영향력을 걱정하는 분위기도 제기되었으며, 라이칭더 후보가 승리할 경우, 대만 통일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압박이 거세어질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공존하였다. 현재 TSMC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다. TSMC의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물론이고 애플 등 TSMC의 고객들도 대만 총통선거를 놓고 자사에 미치는 파장을 면밀하게 검토하였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오는 11월이다. 전 세계 국가들이 다가오는 미 대선에 주목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현직 대통령보다 많은 인기를 얻고 있어 재집권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서는 과거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따른 후유증을 잘 알고 있다. 미·중 간의 관세전쟁,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 등으로 중국은 물론이고, 동맹국들과도 갈등을 초래하였다. 최근 트럼프 후보 진영에서 바이든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난하면서 각종 선거공약을 내세우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만일 트럼프 정부가 다시 들어설 경우, 바이든 정부에서 추진된 IRA를 폐지하고, 중국은 물론 동맹국들에 대해서도 고관세를 부여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이에 국내 대기업들이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미 정치권과 차기 정부에 대한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에 대한 반도체기술 봉쇄를 위해 한·미·일 동맹을 기반으로 반도체 ‘칩4 동맹’을 추진해 왔으며, 보조금 지급 등을 골자로 하는 IRA를 통해 한국 전기차와 배터리 기업들의 대미투자를 유도해왔다. 만일 IRA이 폐지된다면, 한국기업들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국제정세 변화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발 빠른 대처는 글로벌 기업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기업에 승리하고, 미래 기술 트렌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며 변화무쌍한 국제정세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CEO의 전략적이고, 정무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효율적인 마켓 인텔리전스 기능이 반드시 긴요하다.
엄태윤 필자 주요 이력
△Pace대학 경영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국제관계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특임 강의교수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주 보스턴총영사관 영사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기업경쟁정보(2023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