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우는 소리가 잦아들면서 지방자치단체와 정치권에서 '억' 단위 베팅이 난무하고 있다. 합계출산율이 0.6명대로 추락할 위기에 처하자 어떻게든 아이를 낳게 하겠다는 절박함이 만든 풍경이다.
인천시의 '1억+아이드림' 정책은 절박한 출산 지원금 레이스에 불을 지폈다. 올해 태어난 아이가 18살이 될 때까지 1억원을 지원하겠다는 인천시의 출산 대책은 단기간 내에 화제가 됐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 경쟁도 치열하다. 여야가 여러 분야의 저출생 극복 방안을 내놨지만 단연 눈길을 끈 대책은 '현금성 지원책'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산·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신혼부부에 가구당 1억원(10년 만기)의 ‘결혼·출산지원금’을 대출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1억원을 대출해주고 아이를 한 명 낳으면 이자 감면, 둘을 낳으면 원금 50% 감면, 셋째를 낳으면 원금 전액을 감면하는 방안이다.
국민의힘도 같은 날 육아휴직급여를 60만원 인상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당장 육아휴직조차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여건에서 '무쓸모'라는 지적을 받으며 야당의 '1억 대출' 공약에 비해 이목을 끌지 못했다.
'억' 소리 나는 출산·육아 지원 경쟁이 격화하면서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의 지난 대선 공약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허 대표는 2007년 대선에 출마하며 결혼 수당 1억원, 출산지원금 3000만원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2021년 대선 당시에는 결혼수당 1억원과 주택자금 2억원 무이자 지원, 출산 수당 5000만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같은 허 대표의 공약은 당시 기준이나 상식으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매년 인구가 줄면서 국가 소멸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현 상황에서 그의 공약이 일정 부분 현실화하고 있다.
허 대표 스스로도 한 인터뷰에서 "과거 애를 낳으면 3000만원을 줘야 한다고 말할 때 나를 미친 사람 취급 안 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지금은 전국의 모든 지자체에서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있지 않나"라고 언급했다.
정부도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현금성 지원을 비롯한 예산 규모를 매년 늘리고 있지만 정작 효과는 아쉽다. 2006년 이후 정부가 저출산 대응을 위해 30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이 반등하기는커녕 더 떨어지고 있는 탓이다.
향후 태어날 아이에게만 지원이 집중되면서 이미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의 불만과 상대적 박탈감도 적지 않다. 지자체별로 넉넉지 않은 곳간에 지원 혜택 격차도 커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2세, 4세 아이를 둔 워킹맘 A씨는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를 더 늦게 낳을 걸 그랬다"며 "나날이 정부 지원이 늘어나는데 누가 서둘러 아이를 가지려고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출산 대책이 허탕을 치는 동안 인구 절벽으로의 질주에 더 가속이 붙고 있다. 통계청이 24일 발표한 '2023년 11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출생아 수는 1만7531명에 그쳤다. 1년 전보다 1450명이 줄어든 것으로 2022년 12월(1만6896명)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해 1월 2만3000명대였던 월별 출생아 수는 등락을 거듭하며 같은 해 4월 1만8000명대로 떨어진 이후 11월에는 1만7000명대로 주저앉았다.
사망자 수는 늘어나는 반면 출생아 수가 줄면서 지난해에만 11만명의 인구가 자연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년 새 경기도 여주시 인구(11만4000명)가 통째로 사라진 셈이다.
지금 당장 출산율이 반등하더라도 인구 절벽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통계청은 지난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 2022~2072년' 전망에서 저출산 대책의 효과로 2036년부터 합계출산율이 1.0명대 이상으로 올라서더라도 2041년 총인구는 4000만명대로 떨어지고 2060년에는 3000만명대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홍보를 위한 선심성 대책으로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어렵다. 나락으로 떨어진 출산율이 이를 증명한다. 지금이라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보다 정밀한 대응책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