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다사다난했던 '계묘년(검은 토끼의 해)'의 시간이 지나고 2024년 '갑진년(푸른 용의 해)'의 해가 밝아온다. 올해는 지난 1월 등장한 챗GPT 열풍부터 글로벌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국가 간 '반도체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에 따른 한국 방산 수출 쾌거 등 크고 작은 산업계 이슈가 많았다. 아주경제 산업부가 꼽은 2023년 10대 주요 뉴스를 시간대별로 정리했다.
1. 혜성처럼 등장한 챗GPT와 인공지능(AI) 열풍
한국 정부도 국가 과제로 AI기술 초격차 10대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챗GPT와 같은 초거대 AI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국내 기업들도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차별적 제품 개발에 골몰한 한 해였다. AI 서비스 수요 증가에 기업들이 IT설비 투자를 늘리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개발에 집중한 한 해였다.
2. 글로벌 반도체 '쩐의 전쟁' 격화
2년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를 쥐고 흔든 이후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각 국의 신경전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해였다. 미국은 자국에 반도체 시설을 짓는 기업에 390억 달러(약 50조원)의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반도체 지원법'을 통과시키고 반도체 제조공장을 비롯해 소재, 장비 제조공장에 대한 막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을 비롯해 인텔, 대만 TSMC, 삼성전자 등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며 미국 제조업 부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일본도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해 일종의 반도체 기술 연합군인 '라피더스'를 만들고, 1조5450억엔(약 14조원)의 추경을 편성했다. 이에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TSMC, 소니, 삼성전자 등이 일본에 투자를 결정했고, 인텔도 R&D 거점을 일본에 두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한국도 대통령이 나서서 반도체 세일즈에 동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반도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생산기업인 네덜란드 ASML을 방문해 ASML R&D 거점을 한국에 두는 방안을 확정하는 한편, 한-네 반도체 동맹을 재확인했다.
3. '노(NO) 재팬' 시대 가고, '예스(YES) 재팬'
3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약 4년간 한국에서 이어지던 '노재팬(NO JAPAN)' 분위기가 사실상 사라졌다. 한일 양국 간 정상회담은 2019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 오사카를 방문한 후 처음이다.
특히 한일 대통령 간 양자회담은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부터 일본과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면서 양국 우호 분위기는 코로나19 이후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본 여행객들이, 일본에서는 한국 여행객들이 '큰손'으로 떠오르고, 일본에서는 특히 '제2의 한류'로 불릴 정도로 한국 문화에 대한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다만 일본 강제징용 판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 굵직한 이슈가 여전히 살아있어 앞으로 분위기가 반전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4. 660조 시장 열린다...제2의 중동 붐 '네옴시티'
사우디 빈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초대형 프로젝트 '네옴시티' 수주를 위한 산업계의 노력이 돋보인 한 해였다. 사우디는 2030년 엑스포, 2034년 월드컵 등 대규모 국제 행사를 앞두고 네옴신도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 면적의 44배에 달하는 네옴에 '더 라인(신도시)', '옥사곤(산업 단지)', '트로제나(관광 단지)', '신달라(휴양지)' 등 4개의 신도시를 건설하는 이번 프로젝트에는 약 5000억 달러(약 660조원)가 투입된다.
삼성과 현대, SK, 현대차 등 재계는 네옴시티 수주를 위해 정부와 함께 '원팀 코리아'를 꾸리고, 사우디 수주 성과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11월 30일 기준) 수주액 277억3739달러 가운데 중동 수주고는 8억3853달러로 집계돼 전년동기 대비 11.3% 증가했다. 중동 수주액은 전체 해외 수주액의 30.2%로 북미·태평양(34.1%)에 이어 2위 규모다.
5. 화학, 정유업계 IRA에 울고 웃다
한국 배터리 업계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울고, 웃었던 한 해였다. 배터리업계는 첨단제조세액공제(AMPC) 혜택으로 매출은 증가했지만 해외우려기관(FEOC) 발표로 사업 변동성이 커졌다. 지속가능항공연료(SAF) 시장 대응에 늦은 정유업계는 울상이었던 반면 태양광 업계는 IRA에 대표적 수혜 업종으로 꼽히면서 기대감이 커졌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북미산 전기차 구매 시에만 보조금 혜택을 받기로 한 IRA에 따라 대규모 북미 투자를 단행했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 업체들의 미국 진출이 쉽지 않은 상황인 만큼 국내 배터리 3사에 대한 완성차 업체들의 러브콜이 이어졌기 때문. LG에너지솔루션은 GM, 현대차, 혼다, 스텔란티스 등과 미국서 배터리 합작 공장을 추진 중이고, 삼성SDI는 스텔란티스, GM 등과 SK온은 포드, 현대차 등과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6. 한국 자동차의 약진...현대차·기아, 나란히 최고 '수출의 탑'
올해 한국은 자동차가 먹여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가 글로벌 경기침체, 전쟁 장기화 등으로 힘을 못 쓰는 사이 자동차가 약진한 한 해였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올해 각각 300억 달러, 200억 달러 수출의 탑을 달성하며 한국무역협회가 수여하는 '2023 수출의 탑' 수상 1700여개 기업 중 수출액 1, 2위를 차지했다.
현대차 수출액은 최근 1년(2022년 7월 1일~2023년 6월 30일) 310억 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29.6%, 기아는 235억 달러로 같은기간 30.7% 증가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수출 물량 가운데서도 고부가가치 차종의 비중과 전기차 물량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 앞으로 친환경 모빌리티 시대에서도 업계를 주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7. '산 넘어 산'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심사 발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한항공은 지난 11월 EU 집행위원회(EC)에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분리 매각 계획 등이 포함된 시정조치안을 제출했지만, EC는 이에 대한 결론을 내년 2월로 미뤘다. 승인을 위한 관건은 항공 화물 시장에 대한 지배력 완화 방안이다.
항공화물시장은 여객과 달리 신규 경쟁사가 진입하기 매우 어려운 구조인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미국 항공 화물 점유율은 73%, 일본은 68%, 유럽은 59%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유럽 등은 반도체, 의약품 등 첨단산업 제품을 주로 다루는 항공화물 시장을 특정 업체가 독점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EC의 결합 승인 이후 미국과 일본 경쟁당국의 심사도 통과해야 한다.
8. 꼬리가 몸통을 삼킨다...HMM 인수 선언한 하림
하림그룹이 국내 최대 해운사 HMM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림그룹이 국내 1위 벌크선사인 팬오션에 이어 HMM까지 품게 되면 '해운 공룡'이 탄생한다. 하림은 6조4000억원의 매각가를 제시해 동원그룹, LX그룹, 독일 하파크로이트사 등을 제쳤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하림이 매각 측인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1조6800억원 규모의 잔여 영구채에 3년간 전환유예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아직 본계약 체결 전이고, 노조의 반대와 해운불항이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매각 진통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체급이 작은 중견업체(하림)가 공룡기업(HMM)을 삼키면 '승자의 저주'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9. 세계 곳곳서 전쟁...'잭팟' 터진 국내 방산업계
러-우 전쟁, 이-하마스 전쟁 등 잇단 전쟁 발발에 한국 방산업계는 '잭팟'을 터트린 한 해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세계 15대 방산업체를 분석한 결과 2022년 말 기준 15대 방산 기업의 총 수주 잔고는 7776억 달러(약 1004조원)로, 2020년(7012억 달러) 대비 10%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15개사 중 신규 수주가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다. 한국은 동유럽 국가들의 주문에 힘입어 주요 무기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세계 무기 수출국 순위에서 한국은 2020년 31위에서 2022년 9위로 급상승했다.
10. 반도체 '업턴(상승기)' 온다...삼전, SK하닉 수혜 기대
반도체 업계는 글로벌 IT기기 수요 둔화에 따른 시장 침체로 올해 혹한기를 보냈다. 그러나 내년에는 생성형 AI 등장에 따른 새로운 수요 창출로 반도체 업황 회복이 본격 기대된다. 시장 조사 업체 카날리스와 IDC는 내년 개인용컴퓨터(PC) 시장이 올해보다 각각 8%, 3.4%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폭발적으로 구매한 PC의 교체주기와 함께 AI 기능이 탑재된 PC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IDC는 D램과 낸드 시장은 각각 17.3%, 14.9%, 비메모리는 20.9%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메모리 반도체 한파로 올해 어려움을 겪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이미 2024년 준비한 고대역폭메모리(HBM)물량을 모두 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조단위 적자를 쌓은 양사의 실적도 내년부터 급속도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