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어쩌다 합계출산율 0.7의 초저출산 국가가 됐을까. 그 결과는 이미 예견됐을지 모른다. 일하며 아이 키우기 힘든 세상. 일하는 젊은 부부에게 ‘아이는 누가,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미래의 막연한 행복에 기대어 가족계획을 세우는 건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어린이집을 비롯한 보육 시설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만, 부모 출퇴근 시간과 자녀 등하원 시간 사이 틈새 공백이 발생한다는 한계가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수도권 근로자의 평균 출퇴근 시간은 83.2분이다. 기본 9시간 근무와 통근시간을 합산할 때, 아이가 온전히 보육 시설의 돌봄만 받는 경우 11시간 가까이 외부 공간에서 생활하는 셈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가정 내 아이돌봄이 시설 돌봄과 함께 필수적으로 병행 제공돼야 할 이유는 명확하다. 다변화되는 근로 환경과 더불어 아동의 연령과 발달 단계를 섬세하게 고려한 유연한 돌봄을 부모가 계획할 수 있고, 어린아이들이 장시간 외부 환경에서 생활하며 받을 수 있는 불필요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가정 내 아이돌봄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맞벌이 부모의 직접적인 육아시간 제공을 위한 다양한 근로 정책 제안과 공공 아이돌봄서비스 공급 확대, 민간 아이돌봄 서비스에 대한 관리 체계 마련 및 돌봄제공자의 전문성 강화 등 양질의 가정방문형 아이돌봄 제공을 위한 정책이 논의돼 왔다.
가정 내 양육은 조부모의 황혼육아에 기대는 비율이 높다지만, 초산 연령이 높아지는 만큼 조부모의 연령대 또한 높아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최근 젊은 부모들은 평생을 자식을 위해 희생해 온 조부모 대신 믿을 수 있는 육아조력자를 찾기 위해 가정방문형 아이돌봄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민간 아이돌봄 업체들은 이러한 시장의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자체적인 검증 노력과 더불어 신뢰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빠르게 변화해왔다. 하지만 기본적인 산업 체계가 전무한 상황에서 부모들은 돌봄업체나 돌봄제공자의 개별 책임감만으로 복불복 ‘운’에 기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양육친화적인 사회환경 조성을 위한 중요 인프라로서 가정방문형 아이돌봄 산업의 근간을 구축할 수 있는 민간 아이돌봄 업체 등록제와 아이돌보미 국가자격제 등의 내용을 포함한 아이돌봄 지원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6개월이 지나도록 진척 없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 현재 민간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베이비시터는 14만명 수준으로, 정부 지원 아이돌보미의 약 5배 이상 규모로 추산된다. 맞벌이 가구의 일 가정 양립이 무너지지 않도록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간과 공공 아이돌봄 서비스가 함께 돌봄 생태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아이돌봄 지원법 개정을 통해 현재 돌봄 인프라를 지탱하고 있는 아이돌봄 산업의 정책적 체계 마련은 법안의 주목도나 인기, 정치 이념을 떠나서 모두가 합심해 시급하게 선결해야 할 민생 과제이다.
육아하기 좋은 세상을 위한 유연하고 안전한 돌봄 시스템 구축이 진정한 공공의 책임 실현이자, 저출산 문제 해소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돌봄 체계 구축을 통한 아이돌봄 부담 경감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당장 현실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맞벌이 부모의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아이돌봄은 더 이상 개인, 가족만의 책임이 아니다. 가정방문형 아이돌봄을 사회적 필수 돌봄으로 인정하고 정부는 정책적 변화를, 기업은 문화적 변화를 만들어내어 궁극적으로 “일하며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 “아이 낳고 싶은 대한민국”의 돌봄 인프라 구축에 다시 집중해야 한다. 그 변화의 첫걸음으로 아이돌봄 지원법 개정안이 신속하게 빛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