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2일부터 13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베트남을 방문한다. 2015년과 2017년에 이어 세 번째 방문이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이 중국을 견제하며 베트남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지만 시진핑 주석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중국과 베트남 양국 관계가 한층 더 긴밀해질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필리핀 정치학자 리처드 헤이드리안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중국과 베트남 관계에 황금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며 “시 주석의 베트남 방문으로 양국 관계가 정점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베트남, 中 주도 '인류운명공동체' 참여할까
로이터는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시 주석이 이번 베트남 방문에서 쭝 총서기와 회동한 후 양국 간 공동성명에 '인류운명공동체 구축'을 포함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이달 초 왕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 겸 외교부장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당시 부이타잉썬 베트남 외교부 장관은 "중국의 인류운명공동체 구축을 지지한다"고 언급했다.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제창한 인류운명공동체는 중국이 미국 중심인 기존 세계 질서에 대항해 구축하려는 '새로운 세계관'이다. 서방국가들은 중국 주도 세계관이라며 비판해왔다. 베트남은 동남아 국가 중 유일하게 중국 인류운명공동체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다. 라오스·캄보디아·미얀마·태국 등은 모두 참여했다
알렉산더 부빙 미국 싱크탱크 대니얼 이노우에 아시아·태평양 안보연구센터 교수는 미국의소리(VOA)에 "베트남이 인류운명공동체에 합류한다면 베트남과 중국 관계가 기존 포괄적 전략적 파트너십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됨을 의미한다”며 “중국은 이를 중국과 베트남 간 관계가 이미 미국과 베트남 관계를 뛰어넘었다고 해석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美 제재에···中 베트남 투자 갑절 증가
사실 경제적으로 이미 중국과 베트남 관계는 미국보다 훨씬 긴밀하다. 올 들어 11월까지 중국(홍콩 포함)의 베트남 투자는 82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갑절에 달했다. 현재 중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자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와 중국 경기 회복 둔화세로 중국 기업들이 줄줄이 베트남으로 생산 거점을 옮긴 데 따른 결과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의 베트남 투자액은 5억 달러로 10위에 불과하다. 미국과 베트남 간 교역액도 쪼그라들었다. 올 들어 10월까지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했다. 미국의 베트남 수출도 감소했다.
같은 기간 베트남의 대중국 수출은 5% 늘어나 거의 500억 달러에 육박했다. 다만 대중국 수입은 감소했다. 미국의 제재로 대중국 중간재 수입이 줄어든 탓이다. 베트남은 그동안 중국에서 중간재를 들여와 조립한 후 서방국가에 수출해왔다.
특히 이번 시진핑 주석의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양국 간 철도 연계도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써 두 나라 간 통상무역, 공급망 구축 등 방면에서 경제 협력 관계는 한층 더 긴밀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이달 초 왕이 위원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이미 양국은 철도 연계 촉진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현재 양국은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베트남 북부 하이퐁 항구를 연결하는 철도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개선안은 베트남이 처리 기술 부족으로 지금까지 채굴할 수 없었던 최대 희토류 광산이 있는 지역을 통과하도록 설계됐다.
중국과 베트남을 오가는 철도는 이미 깔려 있지만 베트남 철로 시스템이 구식이라 운송력에 한계가 있었다. 특히 중국과 베트남 간 철로 시스템이 서로 달라 그간 국경에서 정차했다가 승객과 화물을 다시 국내선 열차로 환승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앞으로 양국 간 철도 연계가 업그레이드되면 양국은 전략적 핵심 광물인 희토류 가공 분야에서 협력도 가속화할 수 있다. 베트남은 중국에 이어 세계 2대 희토류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다.
경제적으로는 긴밀하지만 베트남과 중국 간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있다. 현재 중국과 베트남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2018년에는 베트남 정부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경제특구 조성 관련 법안을 만들자 차이나머니가 경제특구를 독식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며 베트남에서 반중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