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100℃] 미국-사우디 골프 전쟁, 주도권은 누구 손에

2023-12-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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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가 끓어오르는 100℃

지난해 시작된 미국-사우디 골프 전쟁

내년 美 대선과 맞물려…주도권은 누가

지난해 2월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 경제 도시 로열 그린스 골프 앤드 컨트리클럽(파70).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DP 월드 투어, 아시안 투어 등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배수에 문제가 있었던 대회장에는 파리가 들끓었다. 음식 위에, 대화 중인 사람들의 입 안에, 온몸에 파리가 들락날락했다. 사람들끼리 교류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모두 참으며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당시 대회 이름은 아시안 투어 PIF 사우디 인터내셔널.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PGA 투어는 소속 선수 출전에 제동을 걸었다. 이번에는 허락하지만, 내년에는 AT&T 페블비치 프로암에 꼭 출전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선수들은 동의서에 서명하고 사우디로 떠났다.

선수들이 사우디로 간 이유는 두 가지다. 양면을 가진 달처럼 밝고 어두웠다. 밝은 부분은 중동 골프 발전이다. 어두운 부분은 거액을 받고 사우디 골프 리그에 합류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의 브라이슨 디섐보가 출전했다. 300야드(274m) 이상 날리는 그의 비거리에 대회 조직위원회는 드라이빙 레인지 펜스를 뒤로 쭉 밀었다. 그러나, 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비거리를 위해 몸을 불리다가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상에도 파리가 날아다니는 테라스에 앉았다.

그의 앞에는 중동 사람이 앉아 있었다. 부상 부위를 만지다가도 금세 밝은 표정을 지었다. 묘한 장면이었다. 테라스에는 파리가 들끓고, 선수들과 에이전트 그리고 중동 사람이 섞여 있었다. 대회장에 펼쳐진 영입 시장이다.
 
지난해 2월 야시르 알-루마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총재오른쪽가 필 미컬슨왼쪽과 함께 PIF 사우디 인터내셔널 프로암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아시안 투어
지난해 2월 야시르 알-루마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총재(오른쪽)가 필 미컬슨(왼쪽)과 함께 PIF 사우디 인터내셔널 프로암 행사에 참석했다. 두 사람이 함께 찍힌 첫 사진이다. [사진=아시안 투어]
 
영입 시장에서 35명과 계약한 LIV 골프

영입 시장에 출전한 선수는 120명이다. 이중 더스틴 존슨, 그레이엄 맥도월, 브라이슨 디섐보, 캐머런 스미스, 아브라함 안서, 제이슨 코크락, 패트릭 리드, 케빈 나, 매슈 울프, 토마스 피터스, 호아킨 니먼, 마크 레슈먼, 필 미컬슨, 리 웨스트우드, 세르히오 가르시아, 이언 폴터, 해럴드 버너 3세, 버바 웟슨,  스콧 빈센트, 김시환, 로리 칸터, 올리버 피셔, 저스틴 하딩, 샘 호스필드, 새돔 깨우깐자나, 파차라 콩왓마이, 기노시타 료스케, 파블로 라라자발, 비라 마다파, 제디아 모건, 웨이드 옴스비, JC 리치, 트래비스 스미스, 헨리크 스텐손까지 34명이 사우디 골프 리그에 합류했다. 아마추어 계약은 라차논 찬타나누왓이다. TK라 불리는 이 선수는 어깨에 로고를 달았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합치면 총 35명이다.

토니 피나우, 티를 해튼, 토미 플리트우드, 루카스 허버트, 셰인 라우리, 김주형, 제이슨 더프너, 라파 카브레라 베요 등은 계약하지 않았다.

4달 뒤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가 세상에 나왔다. 사우디 영입 시장에서 계약한 35명 중 대다수가 주축이 됐다. 총상금 2500만 달러(개인전 2000만 달러, 단체전 500만 달러)라는 소리에 계약을 주춤하던 선수들도 하나둘 계약서에 서명했다.
 
지난해 2월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 경제 도시 로열 그린스 골프 앤드 컨트리클럽 18번 홀에서 우승자를 축하하는 공연팀 당시 이 공연은 사우디군의 진군 같았다 사진아시안 투어
지난해 2월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 경제 도시 로열 그린스 골프 앤드 컨트리클럽 18번 홀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사우디 인터내셔널 우승자를 축하하는 공연 팀. 당시 이 공연은 사우디군의 진군처럼 보였다. [사진=아시안 투어] 
골프계 흔든 사우디 석유 자본

사우디 석유 자본이 골프계를 흔들었다. 사우디 침략에 미국은 연합군을 조직했다. 사우디는 자연스럽게 추축군이 됐다.

추축군에는 아시안 투어와 메냐 투어가 합류했다. 연합군에는 DP 월드 투어,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 일본골프투어(JGTO) 등이다.

추축군 선봉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금고지기라 불리는 야시르 알-루마얀 사우디 국부펀드(PIF) 총재다. 알-루마얀 총재는 직접 나서지 않았다. 그레그 노먼을 LIV 골프 커미셔너이자 최고경영자(CEO)로 마제드 알 소로우를 골프 사우디 CEO로 앞세웠다.

노먼 커미셔너는 아시안 투어에 인터내셔널 시리즈를 만들었다. LIV 골프 프로모션(승강전)을 위해서다. 미국과 유럽에 할 수 없으니 아시아에 승강 구도를 만들었다.

미국 진영 선봉은 제이 모너핸 PGA 투어 커미셔너다. PGA 투어를 지원하는 여러 후원사, 각국 투어 기구와 힘을 합쳤다.

메이저 대회를 개최하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미국골프협회(USGA), 미국프로골프협회(PGA of America), 로열앤드에이션트골프클럽(R&A)은 중립국을 선언했다.

단, 이들이 주축으로 있는 남자골프 세계 순위(OWGR)는 LIV 골프를 배제했다. 배제의 이유는 하나다. 경기 방식이 전통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진AP·EPA·연합뉴스
[사진=AP·EPA·연합뉴스] 
'골프지만 더 크게' 시끄럽게 전통 방식 깨부순 LIV 골프

LIV 골프는 'Golf, but Louder'를 표어로 내걸었다. 시끄러운 골프 대회라는 뜻이다. 대회장에는 시끄러운 노래가 나온다. 사람들은 왁자지껄하게 술을 마신다. 환호하고 열광한다. 라운드 후에는 유명 가수 공연도 펼쳐진다.

소음과 함께 전통을 깨부쉈다. LIV 골프는 매 대회 54홀(사흘) 방식이다. 48명이 출전하고 컷이 없다. 샷건 방식으로 각 홀에서 출발한다. 개인전과 4인 1팀 방식인 단체전이 있다. 상금도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나뉜다.

선수들은 더운 날씨에 반바지를 입는다. 짧은 일정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매력을 내세웠다.

2022시즌은 런던에서 시작해 포틀랜드, 베드민스터, 보스턴, 시카고, 방콕, 제다에서 종료됐다. 6개는 일반 대회고, 제다는 5000만 달러가 걸린 팀 챔피언십이다. 총규모는 2억 달러(2631억8000만원)다.

2023시즌은 마야코바에서 시작해 투산, 올랜도, 아들레이데, 싱가포르, 털사, 워싱턴, 안달루시아, 런던, 그린브라이어, 베드민스터, 시카고, 제다, 마이애미까지 진행됐다. 13개 일반 대회와 1개의 팀 챔피언이다. 총규모는 3억7500만 달러(약 4933억8000만원). 1년 사이에 상금 규모가 1억7500만 달러(약 2302억4000만원) 늘었다.

PGA 투어도 상금 증액에 열을 올렸다. 2022~2023시즌 54개 대회로 편성했다. 다음 시즌부터 단일 시즌으로 변경되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보다 7개 대회가 늘었다. 총규모는 메이저 4개 대회를 포함해 6억350만 달러(약 7945억원)다.
 
상금 증액, 천문학적인 소송 비용, 새 법인 발표

공방전이 펼쳐지는 동안 PGA 투어는 재정 문제에 직면했다. 무리한 상금 증액, 천문학적인 소송 비용 등으로다. 결국 PGA 투어 정책위원회 이사인 지미 던과 에드 헐리히, 모너핸이 알-루마얀 총재와 만났다. 양측은 이탈리아 결혼식 만남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만남을 이어갔다.

만남의 결과가 지난 6월 미국 CNBC를 통해 발표한 새 법인(PGA 투어 엔터프레이즈)이다. 

양측은 5장 분량의 임시 계약서에 서명했다. 모든 소송을 취하하고, 새 법인을 만들어 업계를 선도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정식 계약 만료일은 12월 31일로 설정했다.

모든 것은 PGA 투어 선수들이 모르게 진행됐다. 타이거 우즈, 로리 매킬로이 등도 몰랐다. 선수들이 입을 모았다. 우즈를 선수 이사로 추천했다. 매킬로이는 선수 이사에서 사임했다.
 
스페인의 욘 람왼쪽이 지난 8일 그레그 노먼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 커미셔너오른쪽와 계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LIV 골프
스페인의 욘 람(왼쪽)이 지난 8일 그레그 노먼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 커미셔너(오른쪽)와 계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LIV 골프] 
욘 람 이적으로 깨진 평화

미국과 사우디 골프 전쟁이 이렇게 끝나나 싶었다. 평화가 깨진 것은 지난 8일이다. PGA 투어 수호자를 자처하던 스페인의 욘 람이 LIV 골프가 제시한 계약서에 서명했다. 람은 올해 마스터스 우승자다. 당시 LIV 골프 선수들을 누르고 그린 재킷을 지켰다. OWGR 순위는 3위. 

해외 매체들은 람의 이적료가 적게는 3억 달러(3951억9000만원), 많게는 6억 달러(7903억8000만원)라고 추측했다. 이는 최다 이적료 보유자인 미컬슨(2억 달러 추정)을 뛰어넘는다.

허를 찔린 PGA 투어는 이틀간 성명을 발표하지 않다가, 이날(11일) 입을 열었다.

"개별 선수의 선택에 왈가왈부할 수 없다. PGA 투어 정책이사회는 PIF와 추가 협상을 진행할 외부 투자 그룹을 만장일치로 선정했다."

PGA 투어는 람 이적으로 깨진 평화에도 PIF와의 협상을 이어간다는 뜻을 전했다. 다른 선택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2024 미국 대통령 대선에서 맞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 공교롭게도 미국-사우디 골프 전쟁과 겹쳐있다 사진AP·연합뉴스
2024 미국 대통령 대선에서 맞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 공교롭게도 미국-사우디 골프 전쟁 중에 진행된다. [사진=AP·연합뉴스] 
끝나지 않는 미국-사우디 골프 전쟁, 주도권은 누구 손에

미국과 사우디의 골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골프계 주도권을 쥐기 위한 양측의 치열한 공방전이다.

서방에서는 이러한 사우디의 움직임을 '스포츠 워싱(스포츠를 통한 이미지 세탁)'이라고 부른다. 사우디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서다.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 여성 인권 등이 주요 이유다.

스포츠 워싱은 다양한 종목에서 진행 중이다. 축구(뉴캐슬 인수, 2034 월드컵 유치), 자동차 경주(아람코 후원), 테니스(ATP 개최) 등을 통해서다.

스포츠 밖에서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를 유치하기도 했다. 네옴 시티 건설 등도 이미지를 바꾸는 주요 사업 중 하나다.

미국은 내년 11월 선거를 앞두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상·하원 선거와 함께 진행된다.

공화당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민주당에서는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이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무소속 출마자는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다.

바이든은 사우디와 사이가 좋지 않다. 최근에는 "사우디를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는 사우디와 사이가 좋다.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나서 "동반자"라고 치켜세웠다. LIV 골프 주요 대회 역시 트럼프 일가가 운영 중인 골프장에서 개최된다. 

최근 미국 내 여론조사 결과는 트럼프가 우세했다. 2024년 대선에 걸친 미국-사우디 골프 전쟁. 골프는 14세기 유럽에서 시작해 20세기 미국이 주도권을 쥐었다. 사우디가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주도권은 중동으로 이동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 프로암 행사에서 스윙 중이다 영상LIV 골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 프로암 행사에서 스윙 중이다. [영상=LIV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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