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밤 10시쯤, 베이징 시내 진찰환자 수와 대기시간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베이징 응급 발열 진료 지도 앱을 켰다. 중국 서우두의과대 부속 차오양병원 소아과 발열 진료소 대기인수만 80명, 대기시간이 최장 2시간 이상으로 뜬다.
중국서 9월 하순 들어 독감과 마이코플라스마폐렴을 중심으로 한 호흡기 질환 환자가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중국 신화망에 따르면 베이징 시내 서우두 소아과의 경우 하루 발열 관련 내원 환자 수는 최고 9378명에 달하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에는 발열환자로 붐비는 응급실, 병원 복도 의자에 빼곡히 앉아 수액을 맞는 어린이들의 사진도 돌아다닌다.
최근 중국에는 제로코로나의 상징물인 ‘젠캉마(健康碼, 디지털 건강QR코드)’ 프로그램이 다시 등장했다, 저장성의 한 도시에서 주민들에게 10일치 식량을 준비하라고 통지했다는 등의 소문도 퍼졌다. 현지 정부에서는 사실과 다르다며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지만 주민들은 '제로코로나' 봉쇄가 재현될까 불안에 떨었다.
상하이 푸둥 국제공항에서 해외 입국자를 대상으로 선별적으로 실시한 코로나 검사도, 국가급 대형 행사 참석자에 대한 코로나 검사도 마찬가지다. 평소대로라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데, 호흡기 질환 증가세와 맞물려 공포심을 유발했다. 미국·대만·인도네시아 등지에서는 중국 여행을 자제하라는 경계령까지 내리니 한국의 지인들도 중국 폐렴이 괜찮냐며 안부를 물어온다.
코로나19 팬데믹 봉쇄 해제 후 처음 겨울을 맞는 중국에서 호흡기 질환 환자가 급증한 것은 이미 예상됐던 바다. 중국보다 먼저 코로나19 예방 조치를 완화한 다른 많은 국가에서도 지난겨울 호흡기 병원체가 비슷한 증가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기초 의료 인프라가 여전히 취약해 호흡기 환자 급증세가 의료 시스템에 끼치는 부담이 크다. 지역 진료소가 부족한 탓에 중국인들은 아프면 무조건 대형병원 응급실부터 찾는 데다가, 지난 수년간 전국 대형 소아과 외래 진료소가 전반적으로 줄면서 환자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것이다. 며칠 전 중국 보건당국이 각 병원에 소아과 발열진료소와 외래진료 시간을 늘리라고 촉구한 배경이다.
사실 중국 내 호흡기 질환이 증가하자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전염병 대유행이 다시 발발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건 당연하다. 코로나19 발발 초기 우한에서 시작된 정체불명의 폐렴을 중국 정부가 은폐한 ‘전력’도 있지 않은가. 중국 정부의 발표를 끊임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글로벌 감시 및 대응 시스템은 분명 이전보다 더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내 호흡기 질환 급증 상황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 보건 규정 메커니즘을 통해 중국에 추가 정보를 요청했고, 중국은 새로운 병원체나 임상적으로 특이 양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근거로 WHO는 “2020년 1월 상황과는 다르다”고 밝혔다. '제2의 코로나'는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제로코로나 방역 3년으로 중국 경제는 망가졌다. 중국이 병원, 요양원, 학교, 공항 등 특수 장소에서 방역을 강화할 순 있겠지만, 전 사회가 예전처럼 제로코로나 통제에 다시 갇힐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행동경제학을 보면 '가용성 휴리스틱'이라는 말이 있다. 머릿속에서 바로 떠오르는 정보, 즉 가용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어림짐작으로 사안을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중국 코로나 관련 뉴스에 많이 노출된 사람들은 최근 중국 내 폐렴이 창궐하는 것에 대해 무조건 코로나와 연관 지어 제로코로나 방역의 악몽을 떠올리는 것이다. 중국 폐렴 발발과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공포감을 불러일으킨 배경이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문가들은 앞으로 인류가 코로나 같은 또 다른 전염병 팬데믹의 발발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했을 정도로 우리는 전염병의 심각성을 절대로 경시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번 중국에 유행하는 폐렴과 관련해 소셜미디어에 퍼지는 가짜뉴스와 잘못된 정보엔 우리가 맹신하거나 막연한 공포심을 갖기보다는 경각심을 갖고 사실 확인을 철저히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