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썩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산을 찾는 계절이 가을이다. 울긋불긋한 단풍의 유혹이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이리라.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마다 여름이 길어지니 가뜩이나 짧은 가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가을인가 했더니 산속은 이미 단풍이 끝물이다. 찬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계절의 끝자락을 지키며 힘겹게 매달려 있던 나뭇잎들이 제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우수수 떨어진다.
겨울로 가는 문턱 입동도 이미 여러 날이 지났다. 산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다람쥐도 평소 때보다 바빠 보인다. 긴 겨울을 나려면 밤이며 도토리를 부지런히 모아 땅속 깊은 곳에 마련해 놓은 비밀창고에 쟁여놓아야겠지. 매년 이맘때면 품앗이하러 온 동네 아줌마들이 집 마당에 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배추를 절이고 양념으로 속을 채워 김장을 하던 유년시절의 풍경이 문득 떠오른다. 샛노란 배추속대를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 속댓국과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김치소를 얹어 돼지 수육을 배불리 먹는 건 김장을 담그는 날에나 누리는 호사였다.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던 시절에 김장은 생략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하고 든든한 월동준비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매한가지다.
낙엽은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단골 소재였다. 두보가 중양절에 높은 누대에 올라 낙엽 지는 늦가을 정경을 바라보며 지은 '등고(登高)'는 고금의 칠언율시 중 으뜸으로 꼽힌다. 근세에 들어와서 낙엽은 대중가요의 노랫말로 영역을 넓혔다. 20대에 요절한 차중락은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몰랐다고 애통해 하며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불러 대중의 심금을 울렸다. 낙엽은 가을의 전령사다. '일엽낙지천하추(一葉落知天下秋)'라,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고 했다. 대개 '일엽지추(一葉知秋)'로 줄여서 통용하며 사소한 일에서 장래의 변화를 예측하는 통찰로도 쓰인다. 낙엽의 쓰임새는 이뿐만이 아니다. 제 역할을 다한 잎사귀는 낙엽이 되고 거름이 되어 내년 가을을 다시 화려하게 수놓을 단풍의 자양분이 된다.
중국인들은 낙엽이 되어 생을 마감하는 나뭇잎의 생태를 인문학적으로 고찰하여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는 성어를 만들어 냈다. 낙엽귀근은 직역하면 '낙엽은 결국 뿌리로 돌아간다'인데, 사람이 나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비유한다. 즉 나뭇잎이 나무줄기에 매달려 한 시절 잘 보낸 후 낙엽이 되어 자신이 태어난 나무뿌리 주변에 쌓이는 것을 타향에서 살다가도 나이가 들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귀소본능으로 풀이한 것이다. 타지에서 죽으면 유골이라도 고향으로 가지고 가서 낙엽귀근을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향귀(異鄉鬼, 객귀)가 된다고 여긴다. '人老歸鄉, 葉落歸根', '사람은 늙으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고, 나뭇잎도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는 속담도 같은 맥락이다. 뿌리에 대한 중국인들의 사유는 또 이렇게 확장된다. 鳥戀舊林, 魚思故淵, 樹高千丈, 落葉歸根. (새는 옛 숲을 연모하고 물고기는 오래 전 살던 연못을 그리워하며, 나무의 높이가 천길이나 되어도 그 잎사귀는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간다.)
해마다 설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고 고속도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귀성차량들로 호된 몸살을 앓는다. 몸살을 앓는 게 어디 고속도로뿐이랴. 평소 때보다 곱절 이상 걸리는 긴 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귀성객의 고달픔도 못지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꺼이 고향을 찾아 길을 나선다. 명절 때마다 귀성전쟁을 치를지언정 찾아갈 고향을 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서울은 고향은 고향이되 꿈엔들 잊힐 리 없는 고향은 아니다.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울컥해지는 그런 고향도 아니다. 적어도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흐르고 얼룩빼기 황소가 게으른 울음도 울고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도 있어야 언제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살지 않겠는가. 명절을 고향에서 보내려는 마음의 근원에는 자신이 태어난 뿌리로 돌아가려는 낙엽귀근 정서가 자리잡고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낙엽귀근을 읽으며 인간의 끝을 생각하게됩니다. 파란만장한 인생사도 예외없이 돌아가야하는법. 그런 의미에서 자연은 늘 우리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