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 미국 등 서방세계에서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전쟁을 가리킬 때 종종 사용하는 말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끝나지 않은 전쟁이기도 하다.
전 세계가 또 다른 전쟁에 말려들 위기에 처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터졌다. 전 세계 시선이 중동으로 쏠리고 있다. 세계 대부분 국가들은 이·팔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호소가 효과를 발휘했는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미국 의회에 우크라이나 지원 자금 600억 달러(약 81조원)를 포함해 총 1050억 달러에 대한 예산 승인을 요청했다. 물론 미국 의회 일각에서 과도한 지원이라는 반대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일단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재확인한 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는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휴전국인 한국이 강 건너 불 보듯 할 상황이 아니다. 전 세계 시선이 이·팔 전쟁에 집중되고 있지만 나날이 핵·미사일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북한의 위험은 하마스 등에 비해 결코 낮은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무력 수준으로 보자면 이미 지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위험 요소로 자리 잡았다.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 핵 개발을 위해 작년에만 2조원 이상의 암호화폐를 탈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을 개시한 러시아, 하마스 측에 북한이 무기를 공급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쯤 되면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죽음의 상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따라서 우리 안보뿐 아니라 전 세계 안보를 위해서도 국제사회에 북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호소해야 할 필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북한의 위험성, 그리고 한국의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 잊히지 않도록 알리고 그에 따른 지원과 협조를 촉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강경 일변도 기조에서 다소 벗어나 대화 채널을 마련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사실 냉전이든 열전이든 간에 대결을 하면서도 상대방과 대화 채널을 마련해두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국 역시 주요 경쟁 상대로 규정한 중국과 각종 설전과 제재를 주고받으면서도 대화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실사구시적 자세로 중국과 협상에 임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을 '독재자'로 칭하며 양국 간에 설전이 오갔고 최근에는 반도체와 광물 관련 제재를 주고받았지만 고위급 회담이 꾸준히 이어진 가운데 다음 달 있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심지어 현재 전쟁 중인 이스라엘과 하마스조차도 교전을 이어가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물밑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한국 역시 북한과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물론 지금까지 그래왔던 바와 같이 북한 측 태도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이후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대화를 한다고 해서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리도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의 예에서 볼 수 있다시피 일단 대화의 길을 터 놓는 것은 최소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방지하고 향후 관계 개선을 위한 여지를 남겨 놓는다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미국 방문 기간 중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승리한 전쟁”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우리는 북한의 남침을 막아냈고 이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최종적인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와 함께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동시에 힘과 부드러움을 적절히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