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연말이 다가온다. 늘 이쯤 되면 트렌드를 미리 읽어주는 유행어들이 으레 등장한다. 시중 서점에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런 부류의 책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온다. 세태에 뒤지지 않으려고 귀동냥 눈동냥을 하면서 민감해지려고 한다. 일부 공감되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이 많다. 얄팍한 상술도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여 부채질한다. 여하튼 변화에 둔감하면 실패, 민감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 특히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이는 철칙이자 불문율이다. 다만 시기에 따라 변화의 크기에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주관적이라는 점에서 보는 각도는 천차만별이다. 변화의 흐름을 잘 읽는 국가나 기업, 그리고 개인이 상대적으로 우월적 경쟁력을 가지는 것은 시공을 초월한 불변의 진리다.
지구촌 많은 국가가 포퓰리즘 함정에 빠져 신음을 한다. 한쪽은 우파 포퓰리즘, 다른 쪽은 좌파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린다. 갈수록 피폐해지는 삶의 질로 인해 성난 군중이 포퓰리즘에 부화뇌동하여 좀처럼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국가 재정을 파탄 내고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미국 전 대통령 트럼프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중국 시진핑 주석의 ‘공동부유’등도 이에 속한다.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등을 원조 포퓰리즘 정권으로 간주하지만, 아직도 이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는 국가들이 수두룩하다. 포퓰리즘과 먼저 결별하는 국가일수록 정상적인 궤도에 진입하여 경쟁적 우위 확보가 가능하다. 내년 5월 우리 총선도 포퓰리즘이 승패를 가를 공산이 크다.
외국인의 한국 관광 풍습도 달라지고 있다. 눈에 확 띄는 변화가 중국 관광객의 방한 패턴이다. 과거에는 중장년의 ‘유커(遊客, 단체 관광객)’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가족이나 친구 위주의 ‘싼커(散客, 개별 관광객)로 바뀌고 있는 모양새다. 당연히 관광의 형태나 질이 달라지고, 그만큼 숫자도 줄어들었다. 자유 여행을 선호하고 찾는 곳도 각양각색이다. 패키지 여행객들의 찾던 단골 명소이던 명동이 시들하고 성수동 맛집·카페들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전통 상권에서는 중국인이 더 많이 와주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러나 다시 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본이나 한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중국 단체 관광객이 이제 한국보다 더 먼 국가로 옮겨갈 것이 확실하다. 소득이 높아지면 관광 업계의 상품 메뉴가 바뀌는 것은 정해진 시간표다. 이를 간과하고 오지 않을 기차를 기다리면 주름이 늘 수밖에 없다.
말초신경 자극하는 유행어에 현혹되지 말고 변화의 맥을 읽는 혜안이 필요
또 하는 주목할만한 것은 2030 MZ 세대의 복고풍이다. 팝이나 랩 혹은 발라드보다 트로트에 열광하고 있는 모습을 봐도 그렇다. 빠르지만 인간미가 떨어지는 디지털 문화보다 느리지만 정감이 묻어나는 X 세대 아날로그 향수에 푹 빠지고 있다. 입는 패션에서부터 말투까지 흉내를 내면서 새로운 유행으로 정착되는 분위기다. 오랜 기간 코로나 후유증을 경험하면서 생겨난 일종의 반란이다. 좋다 나쁘다는 평가가 앞서 이런 풍속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오히려 훈훈해 보이기까지 한다. 한류 탓도 있겠지만 한국 MZ 세대는 글로벌 문화 흐름의 한복판에 있다. 다수 글로벌 기업이 거대 아시아 시장 공략을 위한 시험대로 한국 시장을 활용하고 있는 것만 봐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들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있다.
60세 이상 공사장 근로자가 20%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아파트 공사장 인부의 약 80%가 외국인이고, 나머지 내국인은 거의 50대 이상이다. 고령화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라고 한다면 국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건강한 노인의 일자리 참여를 늘려야 한다. 정년 연장을 갖고 저울질만 하면서 시간 벌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정년 폐지를 과감하게 도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 당연히 청년층 일감을 뺏는 것이 아닌 일의 유형을 구분해 내는 지혜가 동원되어야 한다. 또한 100세 시대에 맞추어 국가는 노년의 건강에 초점을 맞추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메워야 한다. 실제로 중소기업 경영업자와 자영업자는 정년과 무관하게 노령에도 거뜬하게 일과 여유를 즐긴다.
변화는 나이가 상관이 없다. 공평하게 다가오고, 적응하는 데도 차별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끝까지 변화를 거부하다 막판에 어쩔 수 없이 수용하기보다는 인정하고 능동적으로 치고 나가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우파나 좌파로 두 동강이 난 나라 꼴에 연연하지 말고 스스로 변화를 재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정 진영, 지역, 세대가 이익을 부당하게 갈취하는 것이 아닌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용광로를 만들어내야 한다. 선거가 임박했는지 정치판도 덩달아 경쟁에 뛰어들어 큰 몸짓을 한다. 변하지 않는 정치 탓만 할 것이 아니고 국민이 변해야 한다. 국민이 변하지 않으면 정치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변화의 주체는 결국 사람이고, 흐름을 타고 잘만 순응하면 실패할 확률이 낮아진다. 그 어느 때보다 변화 폭이 큰 시기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