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독일, '에너지전환'은 계속된다

2023-10-2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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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아니오.” 집에서 아이들에게 우유를 사먹이느냐는 앵커의 질문에 연방환경부장관이 던진 짧은 답변이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로 유럽 전역이 방사능 오염의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수개 월이 지나 일상회복에 관한 논란이 한창일 때 독일 연방정부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유를 마셔도 괜찮다는 입장을 계속 발표했지만 야당과 환경단체를 비롯하여 다른 전문가들도 반대하는 입장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이에 공영방송이 정규뉴스 시간에 장관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장관이 ‘전문가들의 판단에 따르면 우유를 마셔도 된다’는 공식 입장만을 반복하자 답답해진 앵커가 ‘돌직구’를 날렸다. TV 화면에 비친 장관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리는 듯하더니 솔직한 답변을 주었다. 이것으로 상황은 정리되었다.
독일 ‘에너지전환’의 뿌리는 1970년대 ‘신(新)사회운동’으로 불리는 환경운동과 반핵운동에서 찾아진다. 1960년대까지 경제성장에 수반되는 에너지 소비증대는 경제적 후생을 증대시키기 위해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1950년부터 1973년까지 유럽 에너지 소비는 연평균 4.5% 증가했다. 두 차례 석유위기는 에너지가 값싸게 얻어지는 생산요소가 아님을 각인시켜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에너지 전환’은 1980년 독일의 민간 ‘생태연구소’ 소속 연구원 크라우제, 봇셀, 뮬러-라이스만이 자신들의 저서 ‘에너지전환: 석유와 우라늄이 없는 성장과 복지’를 통해 처음으로 제안했다. 이 개념은 독일 시민사회는 물론 독일 녹색당과 사회민주당 좌파, 그리고 대안 언론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1983년 급진적인 녹색당의 연방하원 진입은 지금까지도 독일이 서구에서 생태주의와 핵발전 중단에서 가장 급진적인 행보를 보이게 되는 정치적 기반이 되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사회민주당을 반핵 정치세력으로 돌려세웠고 동시에 노동조합 역시 원전중단을 요구하는 대열에 합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주목할만한 결의안이 기독사회당과 녹색당이라는 상극적인 정당 출신 연방의원들이 발의하고 기민/기사연합, 사회민주당, 녹색당이 1990년 말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킨 ‘재생에너지전력공급법’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2차 원전폐쇄’를 포함하는 ‘에너지전환’을 보수연정 스스로 선택하도록 강제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야 만장일치로 ‘원자력법’ 개정이 통과됨으로써 8개 원전의 운행허가가 취소되었고 나머지 9개 원전 운행도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중단되도록 결정되었다. 이 ‘2차 원전폐쇄’가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에너지전환’ 개념이 더불어 관심을 끌었다.
독일 에너지전환의 요체는 원전은 물론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수급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독일 에너지전환이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에너지가격 폭등에 따른 독일 산업경쟁력의 약화이다. 우크라이나전쟁 이전 독일은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값싼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그 의존도를 더욱 높이려던 차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천연가스 수입이 불가능해지면서 에너지가격이 폭등했다. 액화천연가스에 비해 1/6에 지나지 않은 가격으로 수입하던 천연가스가 원전폐쇄에 따른 에너지비용 부담증가를 상쇄시켜주면서 재생에너지 보급을 향한 ‘징검다리 에너지’로서의 역할이 기대되었지만 차질이 발생한 셈이다. 그래서 독일 에너지전환에서는 ‘에너지는 비싼 것이다’는 기본인식이 재차 강조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프랑스가 요구하는 핵에너지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급에 동의하기도 했지만 독일 자체의 에너지전환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보완적인 에너지로 녹색수소를 활용하기 위해 북아프리카, 중동, 서남아프리카, 호주와의 협력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전환에서는 40년 된 ‘값싼 에너지’정책의 기조가 재고되어야 한다. 한국전력의 누적적자는 한 공기업의 방만경영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전환의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 서민생활 안정과 수출경쟁력 확보라는 명분은 이제 무의미해질 처지에 놓였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한국의 저렴한 산업용 전기요금이 철강업체에 사실상 보조금 역할을 하고 있다”며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에 1.1% 상계관세를 부과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에너지전환은 동시에 에너지안보이다. 재생에너지로 구성되는 에너지전환은 에너지 자립도를 크게 높여줄 수 있을 것이므로 경제적 주권을 강화시켜주고 국제 에너지가격 변동에 노출되는 정도를 낮출 것이다. 대한민국이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CF100은 우라늄 수입과 핵폐기물재처리시설 등으로 새로운 에너지종속을 낳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원천기술특허를 둘러싸고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분쟁이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은 상태인데다 미국을 상대로는 언제나 기울어진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대한민국이 미래에너지로 원전을 선택하는 것은 현명한 결정이 아니다. 수출상품을 말하자면 굳이 원전이 아니더라도 많다. 반대로 한국이 원전을 선택했을 때 수출을 포기해야 하는 상품종류나 상품량이 많아질 수 있다. 정부가 CF100을 선택하면서 두 가지 사실을 잊고 있다. 하나는 선택권은 제품을 생산하는 (한국)기업이 아니라 제품 소비기업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기업이 CF100을 기준으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고자 해도 수입기업은 거부할 수 있고 거부하겠다고 이미 선언한 글로벌 기업이 다수 있고 국내 일각에서는 이미 수출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다른 하나는 RE100은 정부가 아니라 민간 글로벌 기업들이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나서서 CF100 수용을 설득한다면 미국 정부가 아니라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해야 한다. 설령 미국 정부가 CF100을 지지한다고 해도 민간기업을 상대로 설득에 나설지도 의문이고, 미국 정부가 설득한다고 해서 미국 글로벌기업들이 받아들일지는 더욱 의문이다. 더욱이 지금처럼 재생에너지를 줄이면서 원전 비중을 높이는 CF100는 한국 상품의 경쟁자격 자체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한국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찾아 해외이전이나 해외직접투자를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한국경제의 공동화를 재촉할 우려마저 있다.
국내에서도 독일의 ‘에너지전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원전 육성을 주장하는 시각에서는 원전 폐기로 독일경제의 전반적인 전망이 흐려진 것처럼 과장하기도 한다. 선진국으로서 대한민국은 이제 모든 길을 정도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과의 ‘경제동맹’이나 한미일협력을 한국경제의 뒷배로서 활용할 수 있으려면 오히려 국제기준에 부합되는 에너지전환으로 에너지 자립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은 노동과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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