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이하 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의 한 병원이 폭격을 받으며 수백명이 사망하자, 중동 사태가 끝없는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병원 폭격 사건이 중동 전역에 분노를 일으키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을 앞두고 샘솟던 외교적 해법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공격 대상이 된 알 아흘리 아랍 병원은 성공회 선교사들이 1880년대 설립한 곳으로, 현재도 예루살렘 성공회 교구가 운영 중이다.
WSJ는 현지 의사들을 인용해 이스라엘의 대피 경고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 북부 병원들은 피란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도로가 파괴되고 건물 잔해가 도로를 막아 환자 이송이 쉽지 않을 뿐더러 인큐베이터에 있는 신생아나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들은 이동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알 아흘리 병원의 사상자들은 이 병원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알 시파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으나, 알 시파 병원 역시 환자 수용 능력을 초과했다. 더구나 전기공급이 조만간 끊기면 수천명에 달하는 환자들의 생명은 위태로워진다. 유엔 대변인은 이날 “가자지구 연료가 고갈 위기에 처했다”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7일 이후 가자지구 내 의료시설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48건에 달하는 공격으로 병원 6곳이 피해를 보았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당국에 따르면 알 아흘리 병원에 대한 공습이 발생하기 전 가자지구 사망자 수는 약 3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번 병원 폭격으로 인한 사망자 수까지 합치면 인명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전망이다. 이스라엘 당국에 따르면 이스라엘인 사망자는 최소 1400명이다.
국제 사회의 규탄이 커지는 가운데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양측은 공격 의혹을 부인했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은 “(병원 겨냥은) 끔찍한 전쟁 학살”이라며 “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규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 세계가 알아야 한다. 가자지구 병원을 공격한 것은 이스라엘군이 아니라 가자지구의 야만적인 테러리스트들이다”라며 “우리 아이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이들은 자기 아이들도 살해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 수석 대변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18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에 의문을 제기하고, 병원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무장세력의 소행이라는 주장을 입증하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가리 대변인은 또 영상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병원을 공격하지 않았다”며 “테러 조직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발사 실패로 병원이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2021년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기간 동안 하마스, 이슬라믹 지하드, 기타 무장 단체가 가자지구에서 약 4360발의 로켓을 발사했으며, 이 가운데 약 680발이 이스라엘에 도달하지 못하고 가자지구에 떨어진 점을 근거로 들었다.
반면, 이슬라믹 지하드의 다우드 셰하브 대변인은 "이것은 거짓말이고 조작이며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며 “점령군은 그들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끔찍한 범죄와 학살을 은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부대변인은 “미국이 모든 사실을 갖고 있지 않다”며 병원 공습 관련 정보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중동 전역에서는 시위가 불길처럼 번졌다. 튀르키예와 요르단의 이스라엘 대사관과 레바논의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예멘, 모로코, 이라크 수도에서도 시위가 열렸다.
외교를 통한 해결 가능성은 쪼그라들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이 임박한 가운데 요르단은 이날로 예정됐던 미국, 이집트, 팔레스타인 4자 정상회담을 취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