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분기 전기요금 결정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200조원 넘는 부채에 허덕이고 있는 한국전력 재무 개선을 위해 요금 인상이 시급하지만 최근 다시 상승 곡선을 탄 물가가 부담이다.
21일 한전은 4분기 연료조정단가를 3분기와 같은 1㎾h당 5원으로 유지하면서 전력량요금(기준 연료비)은 발표하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와 여당 간 협의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통상 분기별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전력량요금·기후환경요금·연료비조정단가를 종합해 발표하는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전력량요금 산정이 제외됐다. 정부가 요금 인상 카드를 버리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연료비조정단가는 한전 약관과 산업부 고시에 따라 정해진 기한이 있지만 전력량요금은 따로 기한이 없어 언제든지 조정 가능하다.
한전 누적 적자 해소를 위해서도 전기요금 인상이 절실하다. 상반기에만 8조원 적자를 기록한 한전은 올 5월부터 전기를 팔수록 손해를 보는 역마진 구조에서 벗어나며 3분기 흑자 전환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산유국 감산으로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4분기 다시 역마진 늪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한전은 올해 영업손실 규모에 따라 내년 부도 위기에 처할 가능성도 있다. 2021년부터 영업손실을 내면서 운영자금을 한전채 발행으로 충당하고 있다. 한전채 발행 한도는 한국전력공사법에 따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 대비 5배까지다. 시장 예상대로 올해 영업손실이 7조원 발생하면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가 약 14조원으로 줄어 한전채 발행 가능액이 약 70조원 수준으로 축소된다.
지난달 말 기준 한전채 발행 잔액은 78조3000억원으로 내년에는 발행 한도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4분기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은면 운영자금 조달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물가 흐름이 변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4%로 5월 이후 3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섰다. 정부는 집중호우와 폭염에 따른 농산물 가격 상승 등 일시적 요인으로 물가가 올랐다며 본격적으로 반등세로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간 물가 안정 배경으로 작용한 국제 유가가 다시 오름세를 보이면서 불안을 낳고 있다. 배럴당 70달러대를 유지하던 국제 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OPEC+(플러스)가 감산 연장을 결정한 이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19일 기준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94.3달러, 두바이유 가격도 95.1달러를 기록해 조만간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제 유가 상승은 물가에도 악영향을 미치지만 전기요금 인상 요인도 된다는 점에서 딜레마다.
한전 관계자는 "4분기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은 여전하다"며 "추석 전후로 정부 부처 간, 당정 간 협의를 통해 전력량요금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