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강원 정선 지하 600m에서 시작하는 지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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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인 한국기상산업기술원장 사진한국기상산업기술원
안영인 한국기상산업기술원장

지난 2016년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규모 5.8의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 1978년 기상청이 지진계기 관측을 시작한 이후 국내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가장 강력한 지진이다. 다음 해인 2017년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11월 15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해 사상 처음으로 수능이 1주일 미뤄졌다. 올해 들어서는 7월 29일 전북 장수에서 규모 4.1 지진이 관측돼 전국에 긴급재난문자가 송출되기도 했다. 장수 지진은 이후 상세 분석을 통해 규모 3.5로 조정 발표됐다.

강한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라는 생각은 이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특히 경주·포항 지진 이후에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지진 관측·연구 지원에 가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투자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지진 관련 세계 최고 기관인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앨버커키지진연구소(ASL)와 독일 지구과학연구센터(GFZ), 캐나다 서드베리지하연구소(SNOLAB), 일본 국립방재연구소(NIED)에는 하나의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지진관측뿐 아니라 지진장비에 대한 연구·개발과 성능검증을 할 수 있는 지하심부 실험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지하심부 실험실은 자연재해나 각종 인간 활동으로 발생하는 잡음에 영향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온도와 습도, 기압 등이 일정하다. 이 때문에 안정적인 환경에서 지진관측과 지진장비 성능검증, 지진 관련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강원 정선군 신동읍 예미산 지하 1000m 지점에는 약 3000㎡ 규모에 달하는 거대한 실험실이 있다. '예미랩'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철광석을 채굴하는 광산에 구축된 예미랩에는 우주를 구성하는 암흑물질 실험실 등 여러 실험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지진관측과 지진장비 성능검증을 할 수 있는 기상청의 지하심부 암반실험실이다.

지하심부 암반실험실은 지하 600m에서 지하 1000m 깊이까지 비스듬히 내려가는 터널의 입구 부근에 있다. 2020년 12월 조성이 끝난 정선 지하심부 암반실험실은 우리나라 지진관측과 연구, 실험, 장비 성능검증에서 새로운 여정과 도전을 상징한다.

기상청은 지난 2021년 7월 지하심부 암반실험실에 특별 지진 관측소를 설치했다. 자연재해나 인간 활동으로 인한 잡음이 거의 없어 가장 정확한 지진 신호를 관측할 수 있어서다. 특히 실험실 이름 그대로 암반에 설치돼 지하 암반을 통해 전달되는 미세한 지진 신호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잡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올해부터는 지진관측 장비 개발과 제품 실증, 성능검증을 위한 테스트베드(시험장)로 운영할 예정이다. 기상청 지진관측장비 검정대행기관이자 지하심부 암반실험실 운영을 지원하는 한국기상산업기술원은 2021년부터 충남 천안 국가지진계검정센터 내 지하실험실을 테스트베드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지하 10m에 위치한 지진계검정센터의 테스트베드는 깊이가 깊지 않아 잡음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특히 만족할 만한 지하실험실이 없다 보니 연구·개발과 성능검증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원천기술 확보와 기술력 향상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지하 600m 깊이에 위치한 정선 지하심부 암반실험실은 이런 아쉬움과 문제점을 모두 떨쳐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지하 암반실험실이라는 데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기술원은 앞으로 지하심부 암반실험실을 새로운 테스트베드로 활용해 국내 지진분야 기상 기업에게 신기술과 제품 실증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특히 지진 관련 산업체와 대학, 연구소가 목적에 맞게 활용할 수 있도록 실험실을 개방할 예정이다. 산업체·대학·연구소가 지하심부 암반연구실에 지진 관련 장비를 설치해 실험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돕겠다는 뜻이다.

지하심부 암반실험실은 우리나라 지진관측과 연구, 실험, 장비 성능검증의 새로운 도전을 이끌어가는 든든한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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