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제르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지 한 달여 만에 가봉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안정세를 찾아가던 아프리카가 2020년대 들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인플레이션(고물가)에 따른 경제 상황 악화와 서방 세력을 등에 업고 석유 등 원자재 수출에 따른 막대한 부를 독식해 온 기존 권력에 대한 환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아프리카에서 쿠데타가 빠른 속도로 전염되고 있다고 30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가봉 ‘봉고 왕조’에 불만 품은 군부 들고일어나
인구 240만명의 중앙아프리카 산유국 가봉에서는 군 고위 장교들이 이날 국영TV 방송에 등장해 “우리가 권력을 장악했다”며 “최근 선거 결과는 신뢰할 수 없으므로 결과를 무효로 한다”고 알렸다. 북쪽으로 약 2000km 떨어진 니제르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지 약 한 달여 만에 아프리카의 또 다른 나라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다.가봉에서는 이달 열린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로 변질될 것이란 우려가 상당했다. 투표 당일 인터넷이 차단되면서 부정선거 의혹이 커진 가운데 이날 가봉 당국이 지난 26일 열린 대선에서 현 가봉 대통령인 알리 봉고 온딤바가 64.27%를 득표해 당선됐다고 알리자, 군부가 들고 일어났다. 이코노미스트는 “군 장교들은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는 대신 봉고 일족에 대한 불만을 품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손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가봉은 1967년 이래 봉고 가문이 지금까지 권력을 독식해왔다. 오마르 봉고 온딤바가 1967년 11월부터 2009년 6월까지, 그의 아들인 알리 봉고가 2009년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을 역임하고 있다. 알리 봉고가 대선에서 첫 당선됐을 때 외신들이 가봉에서 왕조가 탄생했다고 지적한 이유다.
아프리카 지역 전문가인 토마스 보렐은 “가봉은 약 60년간 한 가문이 소유한 석유 토후국”이라고 비판했다.
자원의 저주…국민 3분의 1 빈곤
가봉은 ‘자원의 저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나라다. 석유 수출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지만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극히 일부 계층만 부를 독점하고 있다. 석유 수출 외에는 이렇다 할 산업 자체도 없다.가봉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나라 가운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네 번째로 높다. 또한 전 세계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다. 그러나 세계은행(WB)은 가봉 국민의 약 3분의 1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봉고 가문의 부패도 심각하다. 지난해 프랑스 당국은 봉고 가문 사람 5명을 국가 자금 남용 및 기타 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경제 신음…러시아·중국 영향력 커지고 민주 지도자도 부재
아프리카에서 쿠데타가 잇달아 발생한 데는 경제·정치적 요인이 작용한다. 우선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생활비 상승 등으로 아프리카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경제난 속에서 프랑스 등 서방이 부패한 엘리트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2020년 이후 발생한 쿠데타 24개 가운데 16개는 과거 프랑스 점령지에서 발생했다.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 정부는 영국보다 이전 식민지에 대해 개입주의적인 접근 방식을 유지해 왔다”며 “프랑스는 여전히 가봉에 군사 기지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는 프랑스가 부패한 아프리카 엘리트들을 지원한다는 인식을 심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이 사헬(사하라 사막 남부의 경계지) 일부 지역에서 존재감을 높이면서 아프리카 전역에 불안정을 더한 데다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서방의 입김이 약해졌다.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지도자들도 없다. 과거에는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등의 민주적 지도자들이 목소리를 냈지만, 지금은 이러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들이 부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