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백세인 조사과정에서 발견된 놀라운 변화는 백세인의 독거비율이다. 20년 전에는 10%가 독거노인이었으나 현재는 장수지역인 구곡순담(구례군 곡성군 순창군 담양군) 같은 농촌지역 사회에서도 독거 비율이 25%로 늘었으며 이 비율은 더욱 커져 가고 있다. 초고령자의 경우는 독거생활이 삶의 질을 크게 낮출 것이 분명하다. 그 해법으로 등장한 요양원과 같은 시설은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가족들의 태도이다. 늙은 부모를 요양원에 맡겼다는 것에 자위하고 찾아보지도 않고 잊어버리며 사는 가족이 의외로 점점 많아진다는 담당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씁쓸하기만 하였다. 10년째 면회를 한 번도 안 온 가족도 있고, 연락하면 서로 다른 형제에게 책임을 전가해버리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고 하였다. 그대신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주면 찾아와 장례식은 요란하게 하는 집들을 본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는 요양원장들의 현장 경험 이야기는 노인부양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민족 분단의 냉엄한 현장에서 가까운 산속의 별장 집에서 102세 되는 할머니를 찾았다. 공직에서 갓 은퇴하였다는 손자 분이 맞아 주었다. 나름대로 노인문제에 대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고, 고향에 새로운 개념의 노인복지시설을 건설하고 싶은 꿈을 표현하였다. 새로운 개념이 무엇이냐고 묻자 “노인을 살게만 도와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살도록 하여야 해”라고 대답하였다. 기본 취지는 공감이어서 좋은 의견이라고 맞장구쳐주었다. 할머니에게 안내를 부탁하였더니 별장 뒤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가보라고 하였다. 할머니는 지금도 스스로 청소하고 빨래하고, 식사도 하고 목욕도 한다고 부언하였다. 102세 된 할머니의 자립적 생활이 궁금하여 별채를 돌아 찾아갔다. “아!” 우리 일행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늙은 할머니가 기어서 나오는데 옷은 남루하기 그지없었고, 얼굴에는 핏기조차 없었지만 눈빛은 형형하였다. 몸에 묻은 때며, 냄새가 풍기는 옷을 보고 조사에 앞서서 우선 목욕이라도 시켜드리자고 서둘렀다. 마치고 나오면서 문간에 기다리고 있는 손자에게 노인을 어떻게 모시느냐고 다시 물었다. 할머니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할머니 때문에 가족들이 많이 희생 되었다는 둥, 시집간 딸만 생각하고 다른 가족은 무시한다는 둥, 그래서 지금은 보름에 한번 정도 반찬만 가져다 주고 만다는 둥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였다. 면담하면서 열어 보았던 냉장고에는 아무런 반찬도 남아있지 않았고, 갈아입을 옷 한 벌 걸려 있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물었다. “다른 가족들은 안 오나요?” “불러도 아무도 안 와” 그러면서 면담하고 있는 조사단의 젊은 여성팀원의 손을 꼭 붙잡았다. “정말 색시 손이 따뜻해”. 한여름인데도 사람의 손에서 따뜻함을 느껴야 하는 할머니의 가련한 모습을 보면서 가족이 돌보지 않으면 노인의 모습은 저리 될 수밖에 없구나 라고 탄식하면서 산을 내려왔다.
늙은 부모를 산속에 버렸다는 풍속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고려장’이라는 단어가 처음 언급된 책은 우리나라를 한번도 찾은 적이 없는 미국 선교사 그리피스가 일본인이 한 이야기를 듣고 1882년에 쓴 책 <은둔의 나라 한국>에 처음 등장한다. 이어 고려장 이야기는 일본인 미와타바키가 1919년에 쓴 <전설의 조선>에 언급된 이래 마치 한국의 전통인 양 오도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일본에는 늙은 부모를 버리는 ‘오바스테(姨捨, おばすて)’라는 풍속이 있었다. 나가노 지역의 장수조사를 갔을 때 명칭 자체가 늙은 어머니를 버리는 산이라는 오바스테야마 (姨捨山)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라는 영화에서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는 칠십이 넘은 가족을 산에 버리는 처절한 풍습을 실감나게 재현하였다. 그런데 이런 오바스테가 마치 우리의 전통인 양 고려장이라는 이름으로 근자에 새롭게 부각되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장사익의 '꽃구경'이라는 노래 구절이 귀에 거슬렸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혀서 꽃구경 가요 --- 한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버려질 줄 알면서도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하긴 하였지만 우리 전통사회에 이러한 풍습은 없었다. 고려장이라는 용어를 버려야 할 때이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