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납치사건 50주년 토론회'…민주 "민주주의 되돌아보는 계기 되길"

2023-08-1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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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 내‧외빈 약 60명 참석…김대중 업적 등 재평가

김홍걸 "민주주의·평화 멀어져…DJ 지혜 본받는다면 좋은 결과 낼 것"

패널들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김대중 납치사건 50주년 토론회'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의 진상과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사적 사건과 업적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민주당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준비위)와 민주연구원은 11일 오후 여의도 국회박물관 2층 국회체험관에서 ‘김대중 납치사건 50주년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는 1973년 8월 8일 김 전 대통령이 일본 도쿄에서 납치된 사건을 돌아보고, 정치인으로서의 업적을 재평가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토론회에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과 민주당 설훈‧김한정‧정태호‧신현영 의원과 김 전 대통령의 삼남인 김홍걸 의원 등 내‧외빈 약 60명이 참석했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김대중대통령탄생10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 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김대중 납치사건 50주년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독재 정권이 해외서 야당 지도자 백주에 납치"
토론회 좌장이자 준비위 위원장을 맡은 김한정 의원은 "김 전 대통령 납치사건은 독재 정권이 해외에서 야당 지도자를 백주에 납치한 살인미수 사건"이라며 "오늘 자리가 당시 사건을 되짚고 오늘의 우리 민주주의를 되돌아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홍걸 의원은 축사를 통해 "50년 전 8월 13일, 아버지인 김 전 대통령께서 납치된 후 서울로 돌아오신 그날이 생각난다"며 "당시 철없던 10살 어린아이였던 저는 아버지가 정상 귀국이 아니라 납치된 뒤 돌아오셔서 빈손으로 온 것을 보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위기와 악재도 슬기롭게 대처하면 나중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한 기억도 떠올렸다.

김 의원은 "정권 교체 후 김 전 대통령이 애써 일으킨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가 조금 거리가 먼 방향으로 가는 모습들이 보인다"며 "안타깝고 암울한 시기일 수 있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드셨던 김 전 대통령의 지혜를 잘 본받는다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발제를 맡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박정희(전 대통령)는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기 전부터 김 전 대통령을 몹시 싫어했다"며 "1971년 5월 대선이 끝난 후 김 전 대통령이 일본으로 출국하는 1972년 10월까지 중앙정보부(중정)의 관련 내사보고가 약 1100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중정 요원들은 김 전 대통령을 도쿄시내에서 납치해 오사카에서 중정 공작선 용금호에 실은 뒤 서울로 보냈다"며 "납치의 여파는 심각했다. 8월 28일 이북은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 명의로 남북대화 중단을 선언할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참석자들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김대중 납치사건 50주년 토론회'에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김대중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상징…젊은이들 가슴에 불 지펴"
'김대중 자서전'을 집필한 김택근 작가는 "김대중 납치사건은 우리 민주화 여정에 깊이 새겨져 있다. 김 전 대통령이 곧 우리나라 민주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라며 "이 사건은 당시 민주화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고 평가했다.

김 작가는 "서울대 문리대생 300여명이 김대중 생환 한 달 남짓 후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며 "이는 유신정권 출범 후 첫 학생시위였다. 이후 병영국가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불길이 솟았고,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를 발동시켜 이를 억눌렀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길윤형 한겨레 국제부장은 "김대중 납치사건은 민주화를 위해 피를 흘리며 투쟁하는 한국인들의 투쟁에 비로소 눈뜨기 시작한 일본인들에게도 형용할 수 없는 큰 충격을 안겼다"며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78명은 사건 발생 후 2주 정도 지난 뒤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라 할 정도였다”고 했다.

이어 "이 서명에 참여한 이들을 중심으로 '김대중씨를 구하는 모임'이 결성됐다"며 "이는 이듬해 4월 '일본의 대(對)한국 정책을 바로잡고 한국 민주화 투쟁과 연대하는 일본 연락회의' 결성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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