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서 관료들과 만나 비즈니스를 하려면 ‘관단(摜蛋)’이라는 게임을 꼭 알아야 합니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한국기업 대관업무 담당자가 한 말이다. 그는 최근 정부 관료나 기업인, 학계 인사들을 만나면 ‘관단’을 즐긴다고 했다.
4명이 2인 1조로 팀을 구성해 포커카드 2세트(총 108장)를 사용해서 즐기는 관단이 최근 중국서 정치·경제·학술·문화계 인사들의 새로운 취미생활이자, 비즈니스 도구로 떠올랐다고 제일재경일보 등 중국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마작·골프 등과 같은 게임도 반(反) 부패 타깃으로 삼아 단속하는 등 관료사회 기강을 엄격히 바로잡던 중국 정부도 관단은 건전하고 합법적 게임으로 장려하고 있다. 중국 국가체육총국과 장쑤성 체육총회 주최로 지난 2월부터 약 3주에 걸쳐 전 국민 대상으로 전국 규모의 관단 게임이 열렸을 정도다.
사실 최근 중국 경기 회복세가 둔화하고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고 지방정부 부채 부담이 커지는 등 중국 경제가 어려움에 빠지면서 투자를 받는 게 어려워졌다. '부자동네'인 저장·장쑤성 정부도 예산이 삭감되는 등 영향을 받았지만, 타 지역보다는 경제 여력이 있어서 그나마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상황. 이 지역 관료나 국유기업 사람들이 즐기던 관단이 올 들어 전국구 규모로 급속도로 유행하게 된 배경이다.
특히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정부가 키우는 전략적 신흥산업에 대한 투자가 집중되면서 지방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얻어내려는 기업인들에게 관단은 현지 관료들과의 친목 도모를 위해 배워야 할 '덕목'이 됐다.
요새 중국 금융가에서도 '관단'을 모르면 간첩이나 다름없다. 중국 매체 36kr는 "과거 월가 투자자들과 친목 도모를 위해 텍사스 홀덤(포커게임의 일종)을 배우던 중국 금융맨들이 이제는 중국 현지 관리들과 관시(關係·인적 네트워크)를 쌓기 위해 관단 게임을 배운다"고 보도했다.
한때는 월가 투자자가 중국 투자 큰손이었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 정부나 국유기업 주도의 펀드 규모가 커졌다. 월가 투자자와의 교류보다 지방정부 관료와 친목을 쌓는 게 더 중요해진 것이다.
중국의 모 벤처캐피털 창립파트너는 최근 공개석상에서 "일을 위해서, 펀딩을 위해서, 관단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중국 중신증권은 최근 자체 제작한 포커카드 게임 2세트와 게임 매뉴얼을 담은 '관단 선물세트'를 큰손 고객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관단은 게임 방법도 비교적 쉬운 데다가 사행성도 약해 건전하게 놀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인 1조가 한 팀으로 같은 팀원끼리 마주보고 앉아서 즐긴다. 카드 108장을 4명이 27장씩 각각 나눠가진 후 개인 플레이를 해서 상대편보다 먼저 카드를 다 버리는 팀이 이기는 방식이다. 같은 팀원끼리 협업과 소통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게임 방식은 상대팀보다 더 높은 패를 던져 상대팀의 패를 덮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카드를 조합해 한번에 최대한 많은 개수의 카드를 내려놓아 빨리 카드를 소진하면 이긴다.
관단의 특징은 '레벨카드(級牌)'가 있다는 것이다. 2부터~A까지 모두 레벨카드가 될 수 있으며, 레벨카드는 매 경기마다 업그레이드돼 다이내믹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붉은색 하트 무늬 레벨카드는 일종의 '와일드 카드'로 특정 상황에서 아무 카드를 대체할 수 있다.
카드의 지위는 붉은조커>흑백조커>레벨카드>A>K>Q>J>10>9.....(숫자가 클수록 위치가 높음) 순으로, 숫자가 큰 조합일수록 더 높이 쳐준다.
최고의 패는 붉은 조커 2장+검은 조커 2장의 조합으로 왕폭탄(天王炸)이라 불린다. 모든 패를 다 덮어버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진다.
그 다음은 '폭탄'패다. 색깔·무늬는 달라도 숫자가 같은 카드 조합을 내놓는 것이다. 예를 들면 '6-6-6-6'면 '4폭탄(四炸)', '8-8-8-8-8'은 '5폭탄(五炸)'이다.
5개 연속된 숫자로 동일한 색깔·무늬의 카드 패는 일종의 스트레이트 플러쉬(同花順)로, 5개 폭탄패보다 높다. 다만 6개 이상 폭탄패보다는 낮게 쳐준다.
이외에도 무늬·색깔은 달라도 '3-3-3-4-4-4'처럼 2개의 연속된 숫자카드가 3장씩 조합을 이루는 '철판(鋼板)', '4-4-5-5-6-6'처럼 3개의 연속된 숫자카드가 2장씩 조합을 이루는 '목판(木板)'등의 카드 패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