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in Trend] 격화되는 글로벌 양자기술 레이스 … 한국도 신발 끈 조인다

2023-06-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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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컴퓨터 실용화 경쟁 본격화

미중 패권 전쟁에 유럽, 일본도 가세

한국, 12대 국가기술로 선정...추격 발판

IBM은 2022년 11월 433큐비트 양자 컴퓨터 프로세서 '오스프리(Osprey)'와 이를 다루는 양자 컴퓨터 시스템의 신호 제어 효율을 높인 배선 디자인 '퀀텀 플렉시 케이블'을 공개했다. 당시 IBM 연구소가 공개한 오스프리 프로세서와 플렉시 케이블 모습. [사진=IBM]

디지털 컴퓨터 기술로 발전해 온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양자 컴퓨터를 비롯한 양자 기술이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기술 연구 성과 면에서 미국과 유럽연합, 중국 등 주요 국가가 앞선 상황이지만, 그 수준은 이제 막 실용화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상용화 단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고 판단하고, 산업계, 학계, 연구계 협력을 바탕으로 추격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IBM·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 간 양자 컴퓨터 실용화 경쟁

양자역학적 특성을 이용하는 '큐비트'로 정보를 처리하는 양자 컴퓨터는 기존 디지털 컴퓨터로 처리하기 어려운 계산 문제를 풀 수 있다.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의 최적화 효율을 높이고 화학·에너지·물리·수학 분야 이론 검증과 실험 관련 계산도 빨라질 수 있다. 양자 컴퓨터용 알고리즘이 늘어나고 응용하는 방법이 다양해질수록 여러 IT 분야 고전적 난제가 양자 컴퓨터로 해결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양자 컴퓨터가 기존 슈퍼컴퓨터나 디지털 컴퓨터가 해결하지 못한 모든 문제를 풀 수는 없지만, 특정 분야 문제 해결에 충분히 뛰어난 성능을 내기만 해도 그 가치와 실용성은 증명된다.

2019년 10월 구글 연구자들은 당대 최고 성능을 내는 IBM 슈퍼컴퓨터 서밋(Summit)으로 1만년 걸릴 계산을 구글의 53큐비트 프로세서인 ‘시카모어(Sycamore)’를 탑재한 양자 컴퓨터로 200초 만에 끝냈다고 주장했다. IBM은 서밋이 해당 계산을 1만년이 아니라 2.5일 만에 끝낼 수 있다고 즉각 반박했지만, 업계는 이제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제약이 큰 디지털 컴퓨터보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양자 컴퓨터의 잠재력에 더 주목하고 있다.

구글은 2029년까지 실용적인 양자 컴퓨터를 개발해 상용화하겠다고 2021년 예고했다. 하지만 실용적인 양자 컴퓨터는 IBM이 먼저 내놓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IBM 연구팀이 자사 양자 컴퓨터를 활용해 자연적인 물질의 자성을 다루는 시뮬레이션 계산 문제에서 현존 슈퍼컴퓨터보다 더 나은 성능과 정확도를 달성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장애 내성에 우선하는 양자 컴퓨팅의 실용성에 대한 증거(Evidence for the utility of quantum computing before fault tolerance)’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작성돼 지난 14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표지에 게재됐다.

IBM 연구팀은 초전도 큐비트 127개를 다루는 양자 컴퓨터 프로세서 ‘이글(Eagle)’을 사용해 대규모 ‘얽힘’ 상태를 생성하고 자성을 띠는 물질의 동역학 특성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양자 컴퓨터 선도 기업조차도 얼마 전까지 정확한 계산 결과를 얻기 위해 많아야 수십 개 큐비트를 다룬 점을 감안하면 큰 발전이다. 양자 컴퓨터가 다루는 큐비트를 수백, 수천 개로 늘리면 이론상 더 크고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다.

IBM이 내놓은 계산의 정확성을 검증하려고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과학팀이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의 ‘국립에너지연구과학컴퓨팅센터(NERSC)’와 퍼듀대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같은 물질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다. 하지만 기존 슈퍼컴퓨터는 IBM 퀀텀 시스템과 직접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능이 떨어졌다. 특히 시뮬레이션하는 물질 모형 규모가 커질수록 성능 차이는 벌어졌다. 양자 컴퓨터는 오류 경감 기법으로 정확한 결과를 도출한 반면, 기존 슈퍼컴퓨터는 그렇지 못했다. 다리오 길 IBM 리서치 수석부사장 겸 총책임자는 “양자 컴퓨터가 기존 시스템에서 불가능할 수 있는 문제 해결에 쓰일 만한 유용하고 과학적인 도구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IBM은 2021년 이글 프로세서를 공개하고 올해 1121큐비트를 다루는 프로세서 ‘콘도르(Condor)’를 선보인다고 예고했다. 이 하드웨어를 활용하는 커널, 알고리즘, 모델 등 핵심적인 양자컴퓨터 시스템용 소프트웨어 구성요소를 만들면 양자 컴퓨터 실용화 단계로 진입하는 셈이다. 구글은 2021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에 양자 데이터센터와 양자 하드웨어 연구소를 둔 ‘퀀텀 인공지능 캠퍼스’를 열었다. 전 세계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 1위 기업 아마존웹서비스(AWS)도 2년 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칼텍)에 ‘퀀텀 컴퓨팅 센터’를 세우고 양자 컴퓨터 실용화를 위한 하드웨어 기술과 공학 연구를 수행 중이다.
 

[사진=아주경제 DB]

◆미·중 이어 유럽연합, 일본도 가세…패권경쟁 넘어 ‘양자기술 세계대전’
 

세계 주요국 양자산업 투자 규모 [자료=양자정보기술 백서]

해외 주요국은 양자 시장을 초기 선점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대규모 관련 예산을 편성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패권 경쟁에 의한 국가 차원 투자와 민간 투자 규모가 함께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은 2016년 양자정보과학 발전계획을 세웠다. 2019년부터 10년 동안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 법을 통해 양자 기술 전 분야에 투자하고 전반기 5년에 1조5000억원가량을 쓰기로 했다. 2020년 7월 ‘양자 네트워크 전략비전’을 세워 10년 내 전국망으로 양자 네트워크를 구현하는 방침도 세웠다. 2025년까지 양자 상호연결과 양자 중계기, 양자 메모리 개발에 역점을 두고 2040년까지 국가 차원에서 양자 네트워크를 통합한다는 전략이다. 2022년 3월 백악관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NSTC) 양자정보과학 소위원회(SCQIS)는 양자 센서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기술 상용화에 필요한 연구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은 2016~2020년 진행한 제13차 국가과학기술혁신계획에 양자 통신, 컴퓨터를 2030년까지 추진할 중대 과학기술 프로젝트로 규정했다. 2017년 베이징과 상하이를 연결하는 2000㎞ 이상 규모의 양자통신 간선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2016년 띄운 양자 통신용 인공위성 ‘무쯔(墨子)’를 이용해 차세대 암호체계를 위한 ‘양자 키 분배’와 ‘양자 순간이동’ 실험에 성공했다. 2020년 10월 발표한 14차 5개년 규획(2021~2025년)에서 전략적 과학기술 프로젝트로 양자정보를 선정했다. 2018년부터 작년까지 양자정보과학 국가연구소 사업 예산으로 17조9000억원을 투입했다. 장관급 과학기술 부처인 중국과학원(CAS)은 산하 대학과 연구소를 통해 기업과 협력해 양자 기반 기술 종합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중 과학기술대학(USTC) 양자혁신연구소가 양자 컴퓨터 실현 가능성을 연구 중이다. 

일본은 2017년 발표한 ‘양자과학기술(광·양자기술)의 새로운 추진 방책’으로 양자 기술 육성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2018~2019년 연구예산 규모 200억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20년 첨단 연구 과제 성과를 토대로 사업화와 산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마련한 일본 최초 양자 기술 통합 전략 ‘양자 기술 이노베이션 전략’을 발표해 범용 양자 컴퓨터 확보를 비롯한 기술 개발 목표를 제시하고 글로벌 양자기술 개발 흐름에 합류했다. 일본 내각부는 작년 4월 제11차 통합혁신추진회의에서 양자 기술 및 융합 영역별로 2040년까지 혁신 과정을 담은 ‘양자 기술 혁신전략 로드맵’을 발표했다.

유럽연합(EU)은 2016년 중장기 양자 기술 연구개발 프로젝트 ‘퀀텀 매니페스토’를 발표했다. 2018년부터 2027년까지 10년 동안 1조3000억원 규모 연구비를 지원하는 양자 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다. 2021년 3월 발표한 ‘2030 디지털 콤파스’ 전략을 통해 2025년까지 유럽 최초의 양자 컴퓨터를 개발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독일은 연방정부 프레임워크 프로그램 예산으로 2018~2022년 9000억원을 배정해 연구 환경과 산업경쟁력 개선을 추진했다. 프랑스도 양자 기술 국가전략 수립과 연구개발 프로젝트 선정 작업을 진행했다. 영국은 2014~2018년 국가 양자기술 프로그램 허브 구축에 4000억원을 투입했고 2019년 양자 컴퓨터 상용화·사업화 지원과 양자 분야 산업화를 위한 38개 과제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3월 ‘국가 양자 전략’을 발표해 향후 10년간 약 4조원 투자를 예고했다.

◆2030년 전 세계 양자 컴퓨터·통신·센서 시장 101조 전망…9배 커져

글로벌 양자기술 분야별 시장 전망 [자료=양자정보기술 백서]

우리 정부는 양자 컴퓨터와 함께 통신과 센서 등 ‘양자 기술’을 잠재력 높은 미래 성장 동력으로 바라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작년 11월 발간한 ‘2022 양자정보기술 백서’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양자 기술 시장은 11조5058억원을 형성하고 오는 2030년 101조2414억원으로 급성장한다. 이 가운데 빅테크 기업들이 집중 경쟁하는 양자 컴퓨터 영역이 6조9377억원에서 70조1171억원으로 10배 커지고, 국내 주요 통신사들이 뛰어든 양자 통신 영역이 2조4086억원에서 24조5793억원으로 역시 10배 규모가 된다.

산업 수요를 기술 영역별로 나눠 보면 양자 컴퓨터 수요는 은행·금융·보험, 공공안전 및 국방 분야에 크게 형성돼 있고 우주·에너지·자동차·운송·제조·공급망 분야도 예상 성장률이 높다. 해커가 정보를 탈취할 수 없게 만드는 양자 통신 기술 시장은 보건·의료와 금융 등 일상 생활 영역과 안전·군사·국가안보·정부 영역에 크게 형성되고, 기존 센서보다 훨씬 정밀하거나 불가능했던 측정값을 얻게 해주는 양자 센서는 현재 주로 의료·연구개발에 쓰이나 향후 에너지·운송·건설 업종에서 많은 수요가 예상된다.

과기정통부는 2020년부터 작년까지 양자 통신 구축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한편, 2021년 4월 양자기술 연구개발 투자전략을 발표하면서 2030년 ‘양자 기술 4대 강국’을 목표로 내걸었다. 작년 말 산학연과 함께 양자 기술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제1회 양자기술 최고위 전략대화’를 개최해 △2030년 초 양자 우위를 달성한 양자 컴퓨터 시연 △현재 100㎞ 수준 거리에 구현한 양자 통신 기술 전국망급 확대 △5년 내(2027년 말까지) 첨단 산업 응용, 10년 전후(2032년 말·2033년 초) 국방 분야 적용 가능한 무(無) 위성 항법 시스템용 양자센서 기술 확보 등 목표를 세웠다.

올해 5월 제2회 전략대화에선 현재 오류를 포함하는 50~100큐비트 수준 양자 컴퓨터 활용 방안에 투자하는 세계 추세에 맞춰, 양자 컴퓨터 활용 가능성을 검증하는 ‘양자이득 도전연구’ 과제 5개를 추진하기로 했다. 산학연이 함께 양자 시뮬레이터와 양자 센서 등 개발에 나선다.

과기정통부는 2023년 업무보고에서 ‘양자기술 전략 로드맵’에 따른 맞춤형 기술 개발에 올해 예산 984억원을 배정했다. 양자 분야를 ‘12대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로 선정하고 기술 확보에 국가 역량을 결집하는 대형 연구개발 사업으로 올해 4월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에 선정된 ‘양자과학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이 프로젝트에 내년부터 2031년까지 8년간 약 1조원을 투입해 양자 컴퓨터, 통신, 센서 분야 핵심 기술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양자 기술 개발, 산업발전 촉진 법령 제정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5월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양당 의원들이 발의한 관련 법 제정안을 반영해 마련한 ‘양자과학기술 및 양자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안(대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은 정부가 5년마다 ‘양자종합계획’을 세워 기술 개발과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연구개발과 상용화 촉진, 산업과 기업 육성, 전문인력 양성과 산업단지 지정 등 지원 정책을 시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와 국회 본회의 의결 등 후속 절차도 통과해야 비로소 시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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