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로 '제조물책임법'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유족이 제기한 급발진 사고 입증책임과 관련한 국민동의청원이 5만명 동의 요건을 충족시켜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급발진 의심 사고 피해자를 상대로 한 실태조사에 착수했고, 국회는 차량의 결함이 없음을 제조사가 입증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여러 개 발의했다.
공정위, 급발진 소송 피해자 입증 어려움 여부 실태조사
공정위는 최근 '제조물책임법 운용 실태조사' 용역입찰을 공고하고 사업제안서를 제출한 업체나 기관 등을 대상으로 평가 및 검토 절차에 착수했다.현행법상 재판에서 피해자 측이 크게 세 가지를 입증하면 입증책임이 전환된다. △사용자가 제조물을 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 △통상 이런 사고로 인한 손해가 제조물의 결함이 없이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이 사고의 손해가 제조물을 제조한 자의 실질적인 지배하에 있었다는 점 등을 입증하면, 제조사 쪽에서 이 제조물이 과실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서 피해자들은 이 세 가지마저도 입증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소비자가 제조물의 결함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제조물책임법상 입증책임 전환 등 법 개정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며 "실태조사와 함께 국내외 이론, 법제 분석을 통해 제조물책임법 개선방안을 논의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실태조사를 통해 해당 규정이 재판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공정위는 제조물책임법을 손 볼 수도 있다. 공정위는 현행 제조물책임법의 '결함 추정' 규정(제3조의 2)상 피해자의 입증이 어려워 완화할 여지가 있는지, 우리 법체계에 맞지 않아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국회도 논의 '활발'..."제조사에 책임 전가" 우려도
21대 국회에는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를 계기로 총 4건의 제조물책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모두 급발진 소송에서 차량의 결함이 없음을 제조사가 입증하는 '입증책임 전환'을 골자로 한다.법이 제‧개정되려면 국회 공청회 절차도 필수다. 한국소비자안전학회(회장 최병록)와 한국소비자안전협회(문재승 회장)는 공동으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및 박정하 국민의힘 국회의원과 함께 오는 26일 소비자안전 정책세미나를 개최한다. 소비자의 입증책임을 제조업자에게 전환해 소비자의 권리구제 실효성을 제고하자는 취지다.
다만, 신중론도 제기된다. 소비자의 단순 실수를 인지하거나 혹은 모르고서 제조사에 책임을 전가하는 '소모적인 논쟁'이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한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제조사에게 입증 책임을 지운다는 취지의 입법은 제조사가 소비자에 비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기술적으로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가정한 것 같다"며 "해당 입법이 현실화되면 운전자의 단순 실수 등 과실 인정을 회피하는 데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와 제조사의 중재안 격인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2건도 발의된 상태다. 하나는 급발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자동차제작‧판매자 등에게 사고기록장치 장착 의무를 부과하자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자동차의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하면 성능시험대행자로 하여금 그 사고 원인을 의무적으로 조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