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식시장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간 은행주가 당분간 부진을 벗어나기 힘들 전망이다. 관치금융 리스크에 상승세가 제동이 걸린 이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발 투자심리 악화가 이어지고 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번 달 들어 KRX 은행지수는 6.75% 하락했다. 코스피 200 금융지수와 금융업지수도 각 6.57%, 5.48% 떨어졌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0.48% 오른 것에 비하면 낙폭이 컸다.
은행주들의 약세가 두드러지면서 지수 하락을 불러왔다. 개별 종목을 살펴보면 우리금융지주가 8.36% 내려 가장 많이 하락했다. 신한지주(7.98%), 하나금융지주(7.60%), BNK금융지주(5.97%), 기업은행(5.88%), JB금융지주(5.30%), KB금융(4.58%) 등 대부분 주가가 낮아졌다.
은행은 연초만 해도 상승이 눈에 띄었던 업종이다. 외국인 매수세가 몰렸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지난 1월 금융업종을 1조4049억원 순매수했다. 제조업, 전기전자에 이은 3위였다. 그러나 2월 406억원으로 순매수 규모가 크게 줄어든 뒤 3월 들어선 순매도로 돌아섰다. 이달에만 3687억원을 팔았다. 이번달 외국인 순매도 3·4위에 오른 종목도 KB금융(1979억원), 신한지주(1720억원)다.
은행주 상승세에 제동이 걸린 이유는 '관치 금융'의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13일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 고금리로 인해 국민들 고통이 크다"며 금융당국에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정부는 5대 은행이 높은 시장지배력을 토대로 이자장사를 하고 돈잔치를 벌이고 있다며 은행권 과점체제를 해소하기 위해 검토에 들어갔다.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에 배당 확대를 자제하라는 시그널을 보낸 점도 주가에 악영향을 미쳤다. 늘어난 배당으로 위험가중자산 비중이 낮아지면, 중·저신용자에 대한 자금 지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4대 금융지주는 외국인 지분율이 높아 배당에 민감하다.
최근 미국 SVB, 시그니처 은행 파산 사태로 인한 불똥까지 튀었다. 미국 중소형 은행의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우려, 크레디트스위스(CS)의 유동성 위기 등이 은행주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를 악화시켰다.
증권가에서는 이와 비슷한 금융시스템 불안이 국내에서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은행주에 대한 투심 악화로 당분간 주가 부진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직 금융불안 사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데다 해외 은행주 불안이 이어지는 점도 주가에 긍정적이진 않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기존 SVB와 시그니처 은행에 대한 예금 지급 보증을 전체 은행 예금으로 확대한다는 21일(현지시간) 보도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며 이튿날 선을 그었다. 은행주에 대한 안도감이 커진 상태에서 불안감을 다시 키웠다.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금융주의 경우 직접적인 부실 혹은 유동성 위험이 전이될 우려는 낮으나 해외 금융주와 연동된 주가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라며 "은행권의 경우 은행시스템의 안정요구가 확대될 것으로 보여 자본관련 규제나 경쟁촉진방안 관련 정책기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