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부당한 금품일까, 정당한 대가일까...건설현장 '월례비'를 둘러싼 3가지 시선

2023-03-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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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공인한 면허를 독차지하면서 공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빨대(부당 월례비 수취)'를 꽂는 집단은 국가경제의 약탈자"(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일부 개인의 일탈 사례로 노동계 전체를 근거 없이 매도하지 말라. 장관이라는 위치에서 입을 함부로 놀리시면 안 된다."(건설노조 관계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와 건설노조의 '월례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월례비는 건설사가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지급해온 일종의 상납금으로 건설사와 노동자 서로의 필요에 의해 도입돼 오래 지속되면서 업계 관행으로 굳어졌다.

월례비가 논란이 된 건 정부가 '불법 노조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첫 척결 대상으로 꼽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례비에 대한 시선은 건설사와 법조계, 노동계 안에서도 약간씩 다르다.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의 중심에 선 월례비를 둘러싼 논란과 주요 쟁점을 정리했다.

◆주객 전도된 월례비 문화...전문건설업계 "월례비 문화, 업계 관행 수준 넘어섰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이달부터 월례비를 받은 타워크레인 기사들에 대해 최대 1년간 면허정지 조치를 시행한다. 면허 정지 대상으로 꼽힌 불법·부당 행위는 △월례비 등 부당한 금품수수 △건설기계를 사용한 현장 점거 등 공사방해 △부당한 태업 등 성실의무 위반 등 3개 유형이다.
 
정부는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라 건설기계 운전 자격 취득자가 업무를 성실히 하지 않거나 품위를 손상해 공익을 해치거나 타인에 손해를 입히면 자격(면허)을 취소하거나 정지하는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다. 국토부는 불성실 업무 발생 여부를 건설 현장 내 폐쇄회로(CC)TV, 과거 작업량 등을 토대로 확인한 뒤 행위가 실제 발생할 경우 1회는 경고, 2회 이상은 면허 정지를 명령할 방침이다.
 
정부가 월례비를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월례비로 인한 건설원가 상승이 소비자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월례비가 처음 도입되던 1970년대만 해도 건설사들이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담배나 소줏값 등 현금을 조금씩 쥐여주던 '당근책'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주객이 전도됐다는 게 건설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부당행위는 건설업체 비용을 증가시키고 공기를 연장하는 한편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국민들에게 피해가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번 계기에 타워크레인 등 건설기계를 활용한 뿌리 깊은 불법행위와 악성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국토부가 2022년 12월 말부터 보름간 실시한 건설현장 불법행위 실태조사에서는 전국 1494개 건설현장에서 피해사례 2070건이 접수됐는데, 이 중 1215건(59%)이 '월례비 요구'로 나타났다. 최근 3년간 118개 건설사가 지출한 월례비와 노조전임비만 1686억원에 달했다. 특히 A건설현장에서는 10곳에 달하는 노조들이 전임비를 요구해 월 1500만원 이상 지급한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월례비를 직접 부담하는 하도급 업체들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보탠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건설업계 관계자는 "하루에 10~20곳의 건설노조가 찾아와 자기 조합원을 쓰라고 압박하고,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드론을 띄워 준법작업 여부를 감시하는 통에 '울며 겨자 먹기'로 월 500만~600만원씩 월례비를 지급하고 있다"면서 "업무방해가 도를 넘어선 수준인 만큼 확실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건설업체 대표도 "전국 10곳의 공사현장에서 벌어들이는 순이익 가운데 80%가 다시 월례비로 나간다"면서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건설산업의 미래도 없다"고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법조·노동계 "월례비는 사실상 임금"

법조계와 노동계가 바라보는 월례비에 대한 시각은 정부와 차이가 있다. 광주고등법원은 지난달 한 건설사가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소송 2심에서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지급한 월례비를 통상임금으로 해석했다. 재판부는 "월례비는 수십 년간 지속된 관행으로 사실상 임금의 성격"이라며 "건설사와 기사들 간 월례비의 묵시적 계약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노동계도 "IMF 이후 건설사가 타워크레인 업무를 완전히 외주화하면서 생겨난 문제"라며 "근로자들의 열악한 업무환경과 처우, 월례비가 확산될 수 밖에 없었던 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설업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미묘하게 갈린다. 월례비를 직접 지급하는 하도급사는 정부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원청사는 월례비가 '현장을 굴러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데 대체적으로 공감한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월례비는 초과노동이나 안전규정 위반 작업을 시키기 위한 일종의 '시간 외 임금'이자 '위험수당'"이라며 "원청의 발주 금액에 이미 월례비 지급항목이 녹아있어 원청이 하청에게 부담을 억지로 전가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월례비를 없애면 공사기간이 기존 2~3년에서 배 이상인 5~6년으로 늘어나 선분양 제도 아래에서는 소비자 피해가 더 크다"면서 "'월례비=사회악'이라는 일방적인 인식은 사태 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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