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경제검찰]⑤'과징금 감면'에도 담합기업 발표로 주가하락…투자자 울리는 리니언시

2023-03-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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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몇 년 전 대기업 계열사 H사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한 투자자 A씨는 지난해 이 회사가 담합을 했다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이후 주가가 급락해 큰 손실을 봤다. 공정위 발표가 있기 전 주당 2만1100원까지 올라갔던 주가는 발표 직후 1만8150원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A씨는 이후 언론 보도를 통해 H사가 당시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해 실제로는 과징금을 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허탈감을 느꼈다.

기업 간 담합을 방지하고 담합 사실에 대한 자발적인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자진신고감면(리니언시) 제도가 오히려 주식 투자자들에게는 손실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담합 사실을 가장 먼저 자진신고한 기업은 과징금을 면제받게 되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진신고 기업을 밝히지 않고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처럼 발표해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1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자진신고감면 제도가 기업 간 담합 척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공정위가 발표한 공정거래법 위반 유형별 사건 접수 현황에 따르면 평균 70건대였던 담합 등 부당공동행위 사건 접수가 2006년 자진신고감면 제도 도입 이후 100~200건대를 넘어섰다. 200건을 훌쩍 넘는 해도 있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부당공동행위에 참여한 기업이 그 사실을 자진 신고하면 시정 조치나 과징금 등 제재 수준을 감면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가장 먼저 담합한 사실 등을 자진신고한 1순위 신고자는 과징금과 시정 조치를 100% 면제받을 수 있고 2순위 자진신고자도 과징금을 최대 50%까지 면제받을 수 있다. 

그런데 자진신고를 통해 기업 간 담합 사실을 알게 된 공정위가 이 같은 사실을 발표할 때 1순위 신고자도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처럼 발표하는 것이 투자자들에게 혼선을 주고 있다. 자칫 몇 년치 영업이익에 해당할 수도 있는 과징금 부과 소식이 투자자들에겐 주가 하락 등 상당한 피해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공정위는 최근 일본 국적인 9개 콘덴서 제조·판매사들이 10년 이상 담합을 해 온 사실을 알게 됐다. 담합 기업 중 한 곳인 S사가 공정위에 자진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해당 업체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총 360억9500만원 부과했는데 공정위가 발표한 과징금를 부과받은 담합 기업 중에는 S사도 포함됐다.

이어 담합이 적발된 9개 기업 중 하나인 N사가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등처분취소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재판 과정에서 S사는 1순위 자진신고를 통해 과징금을 감면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공정위가 S사가 포함된 과징금 부과 기업 명단을 공개해 직전 5940엔이었던 S사 주가는 공정위 발표 직후 5300엔까지 떨어졌다.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 10% 이내에서 결정된다. 이 같은 과징금 부과는 결국 경영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당시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발표로 인해 S사 투자자들은 주가 하락으로 인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리니언시 공개 금지 조항을 두고 있고 익명성 보장을 통한 신고 활성화를 위해 1순위 자진신고자가 누구인지 공정위를 통해서는 알려줄 수 없다고 설명한다. 자진신고자를 배제하고 담합 기업을 발표하면 자진신고자는 업계 내 '배신자'로 낙인이 찍힐 수 있고 이로 인해 기업들이 리니언시 제도를 기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에서는 자진신고한 업체를 보호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이를 따로 발표하거나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진신고자가 누구냐를 놓고 벌어지는 각종 추측성 루머로 인한 주식 투자자들의 혼선과 손실을 막기 위해 담함 사실 발표 때 자진신고 기업을 배체하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관계자는 "공정위가 리니언시 공개 금지 조항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자진신고 기업에 실제로는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지만 자진신고하지 않았을 때를 가정해 과징금 액수를 정하고 이를 발표하는 것은 사실과 다른 발표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대형 로펌 공정거래 분야 전문가는 "담합이 적발된 기업이 과징금 취소소송을 제기해 사건이 재판으로 가게 되면 재판 과정이나 판결문에서 자진신고 기업이 어디인지 드러날 때가 많고 쉬쉬한다 하더라도 업계 내에서는 이미 자진신고자가 누군지 다 아는 분위기"라며 "사실상 자진신고 업체 비밀보호를 위해 얻는 실익이 크지 않고 오히려 시장에 혼란만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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