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칼럼] 한국 경제 '제자리 찾기' …정부가 만능손은 아니다

2023-02-28 06:00
  • 글자크기 설정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 교수]



맥가이버. 1980년대 말 인기 몰이를 했던 미국 드라마에서 맥가이버는 온갖 어려움을 비상한 재주로 헤쳐 나가는 첩보형사로 등장한다. 그 이름을 딴 여러 종류의 다기능 접이식 칼은 지금까지도 잘 팔린다고 한다. MZ세대는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르지만 중장년층은 ‘아, 그 맥가이버’ 하고 고개를 끄덕일 친숙한 드라마다.
 
수출 부진과 경기 침체 속에 난방비 등 물가 상승으로 도처에서 아우성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정부는 수출 촉진과 경기 진작책을 내야 하고 난방비와 물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연금을 비롯한 각종 개혁안 마련에 머리를 짜내야 하고 취약계층 지원 대책도 추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도대체 뭐 하고 있느냐고 질타하는 소리는 잦아들지 않는다. 정부는 만능 맥가이버가 되어야 할 판이다.
 
한국 경제의 어려움과 정부에 대한 불만은 필자가 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에 대한 갖가지 불만의 목소리는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학우들과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존경받는 경제학자인 케인스가 우리나라에 열 명쯤 와서 여러 해법들을 제시하면 불만의 소리들이 사라질까?” 경제학을 공부해 온 나 스스로도 대안을 못 내는 마당에 할 말은 없지만 케인스 수준 학자들이 단체로 머리를 싸매고 연구해도 뭇매를 맞다가 항복을 하지 않을까 싶다.
 
정부가 할 일이 있고 시장에 맡겨야 할 부분이 있는데 모든 일을 정부더러 책임지라고 한다. 정부가 맥가이버가 될 수도 없지만 종횡무진 모든 분야에 개입해서도 안 된다. 정부가 해야 하는 일만 해도 고득점하기는 언감생심이다. 혼자 답을 쓰고 채점위원이 3명에 불과한 국가고시 수석합격자의 논술 평균 득점이 통상 70점을 넘지 못한다. 우리 경제의 채점위원은 수천만 명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미국, 일본이나 유럽 어느 나라든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는 박하게 마련이다. 그만큼 국가 경영이 어렵다는 이야기겠다.
 
수출 부진. 정부의 정책 메뉴는 많지 않다. 해외시장이 안 좋아져서 헤매는 건 수출을 하는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다. 세계 각국 가운데 정부더러 빨리 수출을 좋게 만들라며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라고 압박을 하는 나라는 많지 않을 성싶다. 과거에는 환율, 금융, 보조금과 수입 규제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많은 부분에 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WTO 체제가 출범하고 각국이 감시하며 국내외 여러 단체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투명한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이나 장차관의 해외 순방 마케팅, 무역보험 늘리기, 코트라 독려, FTA 체결 확대 외에 별로 없다. 특히 작년부터 이어진 무역수지 적자는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결과이고 최근 수출 부진은 반도체 가격이 폭락한 영향이 절대적인데 국제적으로 결정되는 외생변수를 우리 정부가 좌지우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수출이 잘 되고 무역수지가 흑자일 때는 정부에 대한 칭찬이 없다. 그러다 상황이 나빠지면 갑자기 정부에 대한 비난이 속출한다.
 
3저 호황이 끝나면서 1990년 초에 수출이 부진하자 정부는 수출애로타개위원회를 가동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여러 업종의 수출 애로를 찾아내서 해결해 주면 수출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그러나 당시 접수한 수출 애로는 환율 조정, 금리 인하, 인건비 인하, 원료비 등 각종 물가 인하부터 공장부지 염가 제공에 이르기까지 수출 부처 차원을 넘는 것들이었다. 몇몇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해 달라는 요구를 제외하고 대부분 사항들은 모든 부처가 달라붙어도 해결하기 어렵거나 다른 부문을 생각지 않고 수출만을 고려해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저러한 기업 애로를 민원 해결 차원에서 제기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사람이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출도 잘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가 있고 무역수지도 매년 흑자만 날 수는 없다. 수출은 기업이 사활을 걸고 하는 것이므로 기업이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부는 기술력이 올라가고 인력 수급이 원활하도록 근본적인 대책에 힘을 쏟아야 한다. 산업부 장관이 요즈음 학생들이 반도체학과를 외면한다고 한탄하는 상황을 바꾸어 주어야 한다.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많은 현재 한국 산업은 수출에 비례해서 에너지 수입이 늘어나는 길항작용을 하게 마련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덜 쓰는 산업구조로 개편해야 하는데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지루하지만 꾸준히 경제 체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규제 개혁. 이제 정부는 기업의 영업을 직접 컨트롤하는 방식에서 시장에서 규제가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규제의 틀(regulation frame)을 바꾸어야 한다. 정부는 2019년 도입된 규제 샌드박스 시행 4년을 맞아 860건에 대한 규제 특례로 투자 유치 10조원, 매출 4000억원, 일자리 1만개 이상이 만들어졌다고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공식적 규제(formal regulation)에 대한 개혁은 정부의 역할로서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시장의 비공식적 규제(informal regulation) 또는 기득권에 의한 과도한 사실상의 경제 권력의 사용(excessive use of economic power)에 의한 지대 추구(rent seeking)를 규제하는 것도 절실하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가 강조되고 있고 노조에 대한 준법 적용 등이 추진되고 있다. 민감한 문제로 찬반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으나 사회의 상식과 보편적 타당성에 부합하느냐가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된 경제 및 사회 구조적 원인을 면밀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독과점 기업에 대한 규제를 동일한 형평성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수입이 개방되고 국제 경쟁이 필요한 비(非)에너지 산업과 달리 에너지산업은 독과점 구조이고 수입 개방이 안 되어 암묵적 담합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중화학 산업 위주의 경제개발 전략으로 에너지 산업 중심으로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졌고 지금에 와서는 내수 소화가 안 되는 과잉생산 물량이 수출로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수출량이 많은 효자 업종이라고 하지만 과잉생산량을 수출한다고 해서 국내 유통에 대한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수입 경쟁이 없는 상태에서 석유 등 에너지 산업의 과도한 이익에 대한 건전한 사회적 규제는 정당해 보인다. 사회적 규제의 방법으로 횡재세(windfall tax) 같은 논란 많은 제도 도입을 서두르기보다는 정유사 가격 책정에 기준이 되는 플라츠(Platts) 국제가격의 사회적 연구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정부도 경쟁을 하지 않는 독과점 기업들이 국내에서 과도한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사회적 규제의 틀이 정립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수출 또는 경기 부양 정책이든, 에너지 정책이든 정부 정책은 일시적 인기를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나무의 가지만 볼 게 아니라 뿌리까지 파보는 근본적인 인과관계를 따져 보지 않고서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못하게 되고 정권이 바뀌면 원위치될 가능성이 높다. 지속 가능한 정책(sustainable policy)이라는 말은 그래서 어렵고 중요하다. 눈앞의 어려운 상황을 당장 개선해 달라며 아우성치기보다 국가와 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투자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정부가 역할을 하도록 대승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