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AI혁신과 산업저변 확대, 정부는 움직여라

2023-02-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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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논설위원장]



 
정부가 금주 초 신성장 4.0 전략을 발표했다. 3대 분야(미래 기술, 디지털 혁신, 신산업 창출) 15대 프로젝트다. 올해부터 5~6년간에 걸친 실행계획의 연도별 로드맵도 밝혔다. 로드맵에는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우주 탐사, 양자컴퓨터, 첨단 재생의료, 소형모듈원전(SMR), 인공지능(AI), 차세대 물류, 탄소중립 도시, 스마트 농어업, 스마트 그리드 등 15대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 정책과 추진 일정이 잡혀 있다.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전략 기술들이지만 특히 주목되는 분야는 역시 AI다.
AI 로드맵을 보면 2023년은 AI 학습용 데이터·바우처 지원 확대, 2024년은 전 국민 AI 일상화 프로젝트 추진, 2025~2026년 사람 중심의 AI 개발, 2027년 이후 범용 AI 개발 등으로 짜여 있다. AI 기술 개발 계획은 2~3년 전부터 추진되어 왔으나 이번에 로드맵을 통해 집대성한 셈이다. 나름 야심 찬 모습이나 최근 AI가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터라 보다 긴박감 있는 실행계획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금 세계는 가히 AI 시대라 할 수 있다.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회화 등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쓰는 AI가 미국 등에서 속속 탄생하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 학습으로 똑똑해진 기반 모델로 불리는 AI가 그 만능성을 드러내며 충격을 주고 있다. AI가 인간보다 우위에 서는 SF 같은 세계가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1960~1980년대에 이은 제3차 AI 붐이 시작된 2010년대 초반 AI가 가속적 진화를 거쳐 인류를 능가하는 싱귤래리티(기술적 특이점)가 2045년에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한 미국 연구자 레이 커츠와일의 책이 주목을 끌었다. 2016년 영국 딥마인드사의 바둑 AI(알파고)와 한국 프로기사 이세돌의 대국은 AI의 급속한 발달을 세계에 알리며 지금의 제4차 AI붐에 불을 댕겼다.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미국 기업가 일론 머스크 등이 AI의 인류 위협을 주장했으며, 컴퓨터화로 사라질 직업을 분석한 영국 옥스퍼드대 논문도 화제를 모았으나 이젠 오래된 작은 얘기로 사라졌다.
이후 미국 조사회사 가트너가 공표하는 첨단 기술 트렌드 ‘하이프 사이클’에서 AI는 2019년에 ‘과도한 기대’에서 ‘환멸기’ 단계로 옮겨 그 과실이 2021년부터 2022년에 걸쳐 빛을 보게 된다. 2020년 오픈AI가 내놓은 대규모 언어 모델 'GPT-3'는 텍스트 번역과 질문 응답 외에 소설도 만들어낸다. 심지어 계산 문제를 풀거나 프로그램 코드를 쓰기도 했다.
2022년에 등장한 고도의 화상 생성 AI는 기술 진화를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AI 연구 비영리단체인 오픈AI의 DALL-E 2(달리 투), 미국 독립계 연구소의 Midjourney(미드 저니), 영국 AI 스타트업 Stable Diffusion(스테이블 디퓨전) 등 화상 생성 AI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기반 모델은 그 규모나 학습하는 데이터의 양, 컴퓨터의 능력을 확대할수록 그 정밀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후 미국 빅테크를 중심으로 거대 모델 개발 경쟁에 속도가 붙었다.
싱귤래리티 제창자 커츠와일은 작년 가을 한 인터뷰에서 싱귤래리티의 전 단계로 2029년에 AI가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춘다고 재차 주장했다. 현재 상황은 그의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6~7일 발발한 인터넷 검색엔진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은 전 세계 톱뉴스가 됐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출자회사 오픈AI의 충격적인 최첨단 AI 기술 '챗GPT‘를 자사 제품에서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인터넷 검색에서 압도적 지배력을 자랑해온 구글이 밀려날지 모른다는 예측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미디어와 전문가들은 ’챗GPT’ 등장으로 경쟁의 씨름판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글의 대항책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진 몇 가지 강점(파이낸셜타임스 분석)을 본다면 향후 승패는 아주 불투명하다.
첫 번째 강점은 경제적인 것이다. 대량의 텍스트 데이터를 미리 읽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장을 생성하는 자연어 처리 AI를 활용해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 이 점에서 생성 AI ‘챗GPT’는 유리하다.
두 번째 강점은 잘 알려진 것처럼 이 회사 소프트웨어가 PC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싸움도 압도적 지배력을 쥔 검색엔진 구글 대 마이크로소프트 빙(Bing)의 오랜 싸움의 재현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진짜 강점은 브라우저 Edge(에지)에 있다고 본다. 에지는 테크 관계자들 사이에서 평가가 높다. 이번 발표에서는 에지에 탑재되는 새로운 생성형 AI를 통한 문장 생성 능력과 검색 기술도 선보였다. 키보드 키를 하나 누르면 에지가 화면상 장문의 자료 내용을 순식간에 조목조목 5개 글로 요약해 준다. 그 편리함은 상상하기 어렵다.
세 번째 강점은 생성형 AI 투입으로 선수를 친 것이다. 생성형 AI 경쟁은 마이크로소프트가 3년여 전인 2019년 오픈AI에 처음 약 10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시작됐다.
네 번째 강점은 많은 기업과 깊이 관여해 왔기 때문에 자사를 절대 필요로 하는 고객 기업을 다수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검색엔진이 다양한 사이트에서 정보를 망라적으로 획득하는 크롤링과 함께 고객이 가진 데이터를 자사의 거대 언어 모델에 접목해 개별 기업에 최적의 결과를 출력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인터넷 검색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의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할 수 있다. 각종 소프트웨어가 인터넷 검색의 개념을 바꿔간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사용자가 어떤 작업을 하든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얼마나 찾아내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느냐가 검색엔진의 성패를 결정하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검색 사업이 완전히 새로운 사업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간 2000억 달러 규모가 넘는 인터넷 검색 사업이야말로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시장 그 자체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가 동향은 생성형 AI가 가져올 수 있는 창조적 파괴력을 주식시장도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기술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한 테크 대기업들이 어느 곳도 이 생성 AI라는 신기술을 자사의 강점으로 살리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금 기술시장 화두는 ‘챗GPT’지만 결국 중심은 AI 시장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더 큰 트렌드는 기업들이 AI 연구를 가속화하면서 산업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는 지금 AI 주도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자연스러운 문장이나 이미지를 생성하는 AI를 비롯해 모든 영역에서 데이터 활용에 AI는 필수가 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세계에 발표된 AI에 관한 연구 논문을 분석하면 IT뿐만 아니라 제약·의료, 에너지, 자동차 등 업종에서도 질 높은 성과가 나왔다.
일본경제신문은 최근 네덜란드 학술정보 대기업 엘제비아의 협력을 얻어 2012~2021년 학술 논문과 학회 논문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누적 논문 수가 많은 기업 톱10에는 미국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6개사, 중국에서는 국유 송전업체인 국가전망, 텐센트 등 4개사가 포함됐다. 일본 최상위는 NTT로 12위였다. 논문 피인용 수를 바탕으로 한 엘제비아 산출의 질(質) 지표에서는 미국 알파벳이 선두였다.
현재의 AI 열풍이 시작된 2012년 시점에 AI 논문을 100편 이상 낸 곳은 IBM과 마이크로소프트뿐이었다. 각 사의 논문 수는 급속히 늘어 2019년 이후에는 상위 10개 기업이 매년 각 100편 이상을 발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논문 발표를 하는 것은 대학과 공적 연구기관이 많지만 AI는 학술적인 연구와 산업 응용 관련이 깊고, 성과를 적극적으로 공표하는 기업도 많다. 지난 10년간 기업별 누적 논문 수 1위였던 IBM은 전 세계에 연구자 3000여 명을 거느리고 AI를 경영 중심축의 하나로 내세운다. 이 회사는 반도체부터 소프트웨어, 윤리 등 사회적 영향에 관한 것까지 폭넓은 AI 관련 연구 주제를 다루면서 음성 인식 등 분야에서 뛰어난 실적을 올려왔다.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비즈니스용 AI ‘왓슨’을 개발해 언어와 음성 관련 등 다양한 서비스를 클라우드로 제공한다.
연구의 질적 측면에서도 기업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 다른 논문에서 인용된 횟수가 상위 10%인 주목 논문을 분석했다. 2012년 시점에 주목 논문을 1편 이상 발표한 기업은 36개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는 90여 개에 달했다.
IT 이외 업계에서도 질 높은 성과가 생겨나고 있다. 성장세가 눈에 띄는 분야는 제약·의료, 에너지, 자동차다. 2012년 시점에는 주목 논문을 내고 있는 기업이 각 업계에서 1개밖에 없었지만 2021년에는 제약·의료가 13개, 에너지가 8개, 자동차가 7개로 늘었다.
제약·의료는 진단과 창약(創藥) 등으로 AI 응용이 빠르게 진행되는 분야다. 2021년 주목 논문 수가 가장 많았던 곳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21편)였다. AI를 ‘치료하고 싶은 질병 이해’ ‘약이 되는 분자(分子) 설계’ ‘임상시험 가속’ 등에 활용해 창약을 효율화하려 한다. 이 회사는 반도체 대기업인 미국 엔비디아와 협업하는 것 외에 AI 창약 스타트업인 영국 베네볼런트 AI와는 만성콩팥병, 특발성 폐섬유증 등을 대상으로 5개 이상 신약 후보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GE헬스케어는 미국 의료기관·대학 등과 손잡고 의료용 영상을 AI로 해석하는 기술을 향상시키고 있다. ‘에디슨’으로 불리는 AI 활용 서비스를 통해 이 회사의 진단기기를 도입한 의료기관이 활용하고 있다.
에너지업계에서 중국 국가전망은 1억대가 넘는 스마트미터 데이터를 분석해 효율적인 전력 공급을 실현하는 스마트 그리드(차세대 송전망) 등에 AI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트로차이나는 석유자원 탐사 등에 AI를 활용하는 논문을 내고 있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독일 부품 대기업 보쉬가 특출하다. 연구 거점인 ‘보쉬 AI 센터’를 설치해 230개 이상인 동사 공장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을 진행하고 있다. 센터는 설립 3년 만에 초기 투자를 회수해 2021년 현재 3억 유로 가까운 이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까지 전 제품을 대상으로 AI를 이용한 개발·제조나 AI 탑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의 AI 열풍은 ‘심층학습’이라고 부르는 기술의 혁신으로 2012년경 시작돼 아직 관심이 시들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유창하게 언어를 다뤄 정교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생성 AI'가 연구개발의 주 전장이 되고 있다. 이러한 최첨단의 연구를 견인하는 것은 미국 빅테크들이지만 이제 경쟁은 글로벌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도 민관 일체의 ‘AI 산업기술전략’을 시급히 마련하여 지체 없이 추진해야 할 때다.


 

[자료 = 일본경제신문]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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