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국민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을 윤석열 대통령이 했다. 정치는 난삽하고 경제는 어려운 시국에 웬말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이럴 때 한국의 근본적인 문제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5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정부 시스템을 개조할 것을 주문했다. 이를 통해 국가 정상화와 초일류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을 마치고 처음으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다. 김은혜 홍보수석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해외에 나가보니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우리 국민은 대단한 성과를 냈다"며 "이런 국민의 역량으로 정부가 일류 국가를 만들지 못하면 그것이 비정상"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조급하게 미시적인 제도를 만들거나 바꾸기보다는 '체인지 싱킹(생각 바꾸기)'이 시작점이 돼야 한다"며 "국무위원들이 타성에 젖지 않고 일류 국가시스템,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로 바꾼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초일류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지식 시장, 가장 우수한 인재가 경쟁하고 가장 좋은 것이 선택되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는 미국 등 사례를 국무위원들이 연구·점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김 수석은 전했다.
윤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도 "규제, 노동 등 모든 시스템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우리 제도를 정합시키지 않으면 외국에서 투자도 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렵다"며 국제 기준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새해 벽두에 던진 화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정부 시스템’에 대해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 논의가 일고 있다. 기업의 마케팅 경영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정부 개조의 도달점으로 잡았으니 의아해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국제표준화) 전략이란 말이 기업과 국가에 쓰일 때는 마케팅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개념이 된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실행하는 대표적인 국제기구로 WTO(세계무역기구)를 들 수 있다. WTO가 1990년대부터 주창해온 국제표준화 전략은 기업 활동과 정부 역할에 대한 기본적인 콘셉트를 담고 있다. 2011년에 발표된 국제표준화 전략에 관한 집약된 의견이 있다.
‘최근 기업 경영 활동이 글로벌화하여 세계에 다양한 제품이 유통되고 있는 가운데 제품 품질의 우열과는 별도로 국제적인 규격이 아니면 세계시장에서 통용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국제표준화 전략이 각 나라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원래 표준화라 함은 자유롭게 방치하면 다양화·복잡화·무질서화하는 사안들을 소수화·단순화·질서화하도록 하는 것을 지칭한다. 또 국제표준화라함은 표준화로 제정된 국제적인 결정을 말한다. 대표적인 국제표준으로서는 국제표준화기구(ISO) 등이 있다.
국제표준화 전략이 기업의 국제 경쟁상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이유로는 표준화의 목적이 변화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즉, 종래 표준화는 △호환성 확보 △생산효율 향상 △제품의 적절한 품질 설정이 주요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표준화를 둘러싼 국제무역제도의 변화와 근년의 휴대정보통신단말의 보급 등 기술혁신을 동반한 지식재산권을 포함한 국제표준 증대를 배경으로 △기술 보급 △산업경쟁력 강화 및 경쟁환경 정비 △무역촉진·원활화 등이 주요 목적이 되면서 기업의 경영 전략에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은 일찍부터 국가정책으로 이를 추진해 왔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관민일체의 대응이 미흡한 형편이다.
원론적인 말이지만 국제표준화를 추진하는 구체적인 메리트로 우선 한국에서 개발한 기술이 세계시장에서 국제표준으로 받아들여지면 기술 선행성으로 시장에서 우위를 갖게 됨과 동시에 시장을 보다 크게 넓힐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또 규모의 경제로 제품 코스트가 싸져 국제경쟁력이 한층 높아지게 되고 특허 등 지식재산에서도 수입이 늘어난다. 게다가 제품과 서비스의 편리성이 향상되고 제품 가격과 서비스 요금의 하락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국제표준화에 관한 전략으로 2010년 5월에 책정된 ‘지식재산추진계획 2010’에서 금후 세계적인 성장이 기대되면서 일본이 기술 우위를 가진 ‘선진 의료’ ‘물’ ‘차세대 자동차’ ‘철도’ ‘에너지 매니지먼트’ ‘콘텐츠 미디어’ ‘로봇’ 등 7개 분야를 특정 전략 분야로 자리매김하고 국제표준 획득을 추진해 왔다. 민간에서도 전자 대기업과 공공 연구기관이 주체가 되어 중소기업 니즈 등을 고려하면서 공동으로 국제표준화 활동을 행하는 ‘표준인증 이노베이션기술연구조합’을 2011년 1월에 설립하는 등 일본의 국제표준화 전략을 선도해 왔다.
최근 기업(특히 제조업)은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와 그에 따른 급격한 수요 변동, 원자재 가격 급등, 환율 변동에 대한 대응과 급격한 기후변화와 자연재해에 대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2020년 1월 이후에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보다 큰 사업 환경 변화에 직면하고 있어 눈코 뜰 새 없이 변화하는 예측 불허의 세계에 지속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업무 시스템 기반 마련이 생존을 위한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한편 업무·시스템 기반의 대부분은 거점마다 제각각인 구조와 개별의 데이터 관리가 되고 있어 글로벌 시각에서 경영 정보 파악과 의사 결정이 곤란한 상황이 되고 있다. 변화에 계속 대응하기 위한 업무·시스템 기반에는 글로벌 레벨에서 시황·사업 상황 변화를 시의적절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 인적 자원 재배치를 포함한 거점 통폐합·M&A·포트폴리오 변경 등 다이내믹한 사업 경영 판단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로벌 각 거점에서 공통의 방침·룰에 따른 표준 업무 프로세스를 확립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에 관해서도 공통의 생각에 근거한 일원적인 데이터 관리가 가능한 구조로 통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최근에는 이와 더불어 업무 시스템 기반에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으로서 IoT(사물인터넷), AI(인공지능), 기업 간 연계 데이터 활용을 추진하는 중추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즉, 업무 시스템 기반으로서 얼마나 양질의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고 글로벌 업무 표준화·통합화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또 다른 측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진하고 있다. OECD가 2004년에 펴낸 ‘글로벌화에 대응-변화하는 세계와 OECD(Getting to Grips with Globalisation:The OECD in a changing World)'의 서문이 매우 시사적이다.
도널드 J. 존스턴 사무총장(1996~2005년 역임)의 서문 내용이다. “내가 1996년 OECD 사무총장에 취임하면서 회원국 수도를 방문했을 때 받은 주요 조언은 오늘의 문제에 대한 1)민첩한 정치적 대응, 2)효율적인 조직 운영, 3)글로벌 접근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정치인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양측이 글로벌 상호의존의 이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널리 합의된 게임의 규칙 제정이라는 과제에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정치인들은 OECD가 이러한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국제사회의 정합적인 틀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다른 플레이어의 서포트를 얻으려면 이러한 룰은 가능한 한 높은 기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도 이 과제에 임하고 있다. 각국이 국제적 트렌드를 무시해도 국내에서 경제정책을 잘 운영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다. 경제 정책 당국은 환경과 건강, 식품 안전성에 대한 우려에서 기술 혁신 및 개발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른 많은 문제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OECD는 각국 정부와 정책 당국이 결집하여 이러한 문제와 기타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독특한 처지에 있다. 그러나 세계라는 무대에 등장하는 플레이어는 OECD 국가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앞길에는 많은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경기 둔화로 실업률이 다시 상승하고 있다. 무역 장벽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생필품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 테러 위협은 일상생활을 불안하게 하고 비즈니스 활동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불화나 반목은 사라지지 않고, 효과적인 인도적 원조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정부 간 조직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는 미래를 내다보는 데 필요한 관점을 얻기 위해 한발 물러서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내가 이 소책자에서 의도한 것은 OECD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많은 정책 과제에 대해 되돌아보는 동시에 현시점에서 OECD가 중점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몇 가지 정책 과제를 지적하는 것이다.(이하 생략)’ 도널드 존스턴 전 사무총장은 캐나다의 경제개발·지역개발장관, 과학기술장관,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을 지낸 뒤 OECD를 10년간 지휘하며 OECD 자체는 물론 선진국들의 글로벌 스탠더드 확산에 힘을 썼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에 UAE,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을 순방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의 중요성, 특히 국제표준에 맞춘 정부 시스템의 개조에 착안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을 다시 연구하자고도 했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WTO, OECD 등이 오래전부터 이끌고 온 주제지만 아직 기업과 정부가 혼연일체가 된 좋은 착지점을 찾은 사례가 많지 않다. 그만큼 어려운 과제다. 이점에 있어서 한국도 취약하다. 세계경제포럼이나 블룸버그통신 등이 매년 발표하는 각국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정부의 비효율과 노동 문제가 항상 뒷다리를 잡고 있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정부 시스템 개조가 그 답안이다. 이제부터는 실행력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3일 제1차 수출전략회의에서 ‘전 부처의 산업부화’를 강조하며 국무위원들을 수출 전선에 뛰어들라고 했다. 이번 UAE 순방 후 개최한 국무회의에선 ‘본인이 제1호로 전 국무위원이 영업사원’으로 나서자고 했다. 기업과 정부가 2인3각으로 뛰려는 ‘체인지 싱킹’이 정부 시스템 개조의 출발점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