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새해 경제약진 위한 방책 …인도ㆍ싱가포르ㆍ북유럽의 성공모델 반영하자

2023-01-0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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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논설위원장]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계(癸)의 형태는 사물을 재는 나침반에서 왔다고 한다. 조리 있게 도모한다, 계획한다 등의 의미로 이어진다. 묘(卯)는 가장 대중적인 동물인 토끼다. 토끼가 등장하는 동화에는 마지막에 반전이 많다. 언뜻 보기에 호조를 보이더라도 끝까지 조심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적 설화들이다. 따라서 올해는 주변을 잘 살피면서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해라고 할 수 있겠다.
계묘년은 윤석열 정부가 본격적으로 출발하는 해다. 외교는 인도·태평양 중시로 전환했고, 경제는 신성장 4.0 전략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난해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인플레이션, 세계적인 통화 긴축 등에 세계가 흔들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약진했거나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나라들이 있다. 이들이 구사한 방책 가운데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내용들이 적지 않다.

◊중국을 대체하는 인도의 약진=일본경제신문이 분석한 2022년 아시아 주가지수를 돌아보면 인도가 압승이다. 인도의 견조한 주가는 장기적인 성장을 전망한 매수세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도 주가지수가 아시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단기적인 요인 때문이 아니다. 인구 동태, 디지털화, 탈탄소화, 탈세계화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괴적인 트렌드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인도다. 모건스탠리가 최근 리포트에서 내린 평가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확대 등에 따라 2031년 인도 상류층 가구는 5배 늘어 2500만가구, 중산층 가구는 배 이상 늘어 1억6500만가구에 이를 것이라며 두터운 경제권이 탄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장기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주식 매수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차이나 플러스 원’도 순풍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애플의 스마트폰 ‘iPhone’을 꼽을 수 있다. ‘iPhone’ 생산 중심지가 인도로 변하고 있다. 재벌 타타그룹은 투자를 확대하며 노동력 확보를 서두르고 있다.
이와 반대로 중화권의 부진은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경제의 하방 효과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책의 불투명성과 미·중 관계 악화 등을 배경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서플라이 체인(공급망) 기본 틀에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인구 동태 면에서도 중국은 인도에 최대의 인구대국 자리를 내주게 된다. 2022년 주가의 인도 강세·중화권 약세는 앞으로의 세계 경제와 자금의 침로(針路)를 어느 정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인도 정부가 발표한 지난 7~9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6.3% 늘어나면서 8분기 연속 플러스를 기록했다. 인도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2021년 5월 한때 하루 40만명을 넘어섰지만 지금은 수백 명 정도에 불과하다. 대기오염 등 과제도 많지만 앞으로도 인도의 성장은 계속될 전망이다.
탄탄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인도의 방대한 내수다. 이미 14억명의 거대 시장을 거느린 이 나라 인구는 2023년에는 중국을 제치고 세계 제일이 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인도는 2022년 명목 GDP에서 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에 독일을 앞지른 다음 2027년에는 일본도 제치고 미·중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인도는 인구 증가에 더해 IT(정보기술) 주도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 경제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의 정부계 비즈니스 스쿨인 인도무역학원(IIFT)의 네하 제인 교수는 2001년부터 2061년까지 ‘인도의 잠재적 인구 보너스’라는 논문에서 이 기간 동안 유리한 인구 동태 변화와 적절한 사회경제정책 시나리오의 조합으로 약 30년간 인구 보너스 혜택을 누릴 것이며, 고령화 부담이 시작되기 전에 인구 보너스를 최대한 누릴 수 있는 기간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도는 IT 경쟁력 등 뛰어난 면도 있지만 경제 격차 등 문제점도 적지 않다. 인도공대 델리의 자얀 호세 토마스 박사는 인도가 2020~2040년 세계 생산연령인구 증가분 중 20%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많은 잠재적 근로자들이 경제성장에 큰 혜택을 주지만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늘어나는 청년들에게 적절한 새로운 일자리 기회를 창출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건강, 교육, 기타 사회 부문에 대한 정부 지출 증가는 인도 청년층의 잠재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문했다.
 
◊싱가포르는 전 국민 리스킬링, 인구보다 생산성 우선=2014년에 시작된 싱가포르의 ‘스킬스 퓨처(Skills Future)’ 운동은 이른바 전 국민 리스킬링 계획이다. 25세 이상 남녀에게 스킬 습득을 위한 학습비용을 지원하며 대상 코스는 디지털 기술부터 경영관리에 이르기까지 2만4000개 이상에 달한다.
여기에는 심각한 저출산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건국의 아버지 리콴유 전 총리는 2050년을 내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이민 없이는) 노동자 1.5명으로 노인 1명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가 붕괴된다고 지적했다. 1980~199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외국인 유입으로 낮은 출산율을 보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여론이 분출해 인구 중 30%가 채 안 되는 외국인 유입을 줄였다. 이렇게 되면 중장년 세대를 포함해 본토 사람을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싱가포르는 생산성 향상을 중시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여행 제한 영향으로 2021년 외국인 수가 147만명으로 전년 대비 10% 줄었다. 인구는 처음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 그럼에도 정부 관계자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스킬스 퓨처 운동은 제2단계로 이행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브레이크를 밟는 게 아니라 기어를 한 단 올린 것이다. 일률적인 보조금 외에 개별 업종과 직종에 맞는 능력을 육성하기 국내외 기업과 제휴한 프로그램을 차례로 시작했다. 2021년 싱가포르에서 재학습 지원을 받은 사람은 약 66만명에 이른다. 이는 외국인을 제외한 생산연령인구 중 4분의 1에 해당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페이팔을 비롯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독일 지멘스 등 많은 유명 기업들과 제휴했다. 단기간에 이렇게까지 국민을 재교육에 끌어들인 예는 드물다. “사람의 잠재 능력은 교육과 훈련으로 극대화할 수 있다”는 리콴유 전 총리의 조언은 지금 빛을 더한다.
싱가포르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2020년 기준 약 17만 달러로 2015년 이후 연평균 증가율은 3% 정도다. 국내총생산(GDP)이 이미 높은 수준인 국가에서 이룩한 대단한 기록이다.
싱가포르는 어떻게 생산성을 높였을까. 리콴유 총리 시절인 1980년대부터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외국인 근로자의 값싼 노동력 수용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건설과 음식을 포함한 많은 업종에서 생산성이 충분히 높아지지 않았다. 경제성장을 창출하는 요소인 노동력, 자본, 생산성 중 노동력 증가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경제산업의 구조개혁이 지연된 것이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민 수용이 어려워지면서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이런 구조를 재검토할 좋은 기회가 됐다. 생산성이 낮은 업종에서 높은 업종으로, 같은 회사 안에서도 생산성이 높은 일자리로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이 국가 전체의 과제로 부각되었다.
인공지능(AI)과 로봇뿐 아니라 의약, 에너지 등 모든 산업에서 기술혁명이 일어나고 있어 그 변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평생학습이 필요한 중장년 세대에게 접근하기 쉬운 리스킬링(Reskilling) 기회를 정부 주도로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책이다. 문제는 리스킬링이 효과를 나타내 사회 전체에서 인력 재배치가 진행되는 데 5~10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안전망을 동시에 정비하지 않으면 기술혁신을 따라갈 수 없는 하층민을 만들게 된다.
생산성 향상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저임금 외국인 근로자 수용을 줄이고 전체 이민 수도 좁혀야 한다. 반면 고도의 기능을 갖춘 인재는 부족하고, 유능한 외국 인재는 앞으로도 환영해야 한다. 도시국가로서 뉴욕, 런던 등 세계 대도시와 인재 영입 경쟁을 벌이고 있어 가만히 있으면 경제 경쟁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사회 다양성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인구 감소와 그것을 기점으로 한 성장 둔화라는 미래가 선진국에 다가온다. 축소 균형의 현실에 안주하면 나라도 사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디지털화로 산업구조를 바꾸고 동시에 성장을 묶는 규제도 풀어야 한다. 재학습을 통해 인재의 가능성을 이끌어 내는 싱가포르 사례를 살펴보면 취해야 할 선택지가 많다.
 
◊북유럽의 트램펄린 경제=스웨덴 산업경제연구소 라쉬 파숑 교수는 ‘트램펄린과 같은 경제’ 구조가 북유럽 사회에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낙오되는 사람을 확실히 받아들여 결코 가라앉지 않고 몇 번이라도 위로 뛰어오를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은 스타트업, 리스킬링, 성평등 그리고 민주주의를 포괄하는 사회다. 북유럽 국가의 성공은 기업보다 사람과 기술을 중시하는 성장에 기인한다. 노키아 감원으로 흔들린 거리는 창업을 키우는 장(場)으로 변신했다. 높은 복지는 중산층을 지탱하는 유연성을 제공하고 있다.
1960년대 덴마크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유연성이 제 힘을 발휘한 것은 1994년 이후다. 10% 전후로 고공 행진하는 실업 대책으로 리스킬링과 재취업 활동에 나서지 않으면 실업 보상을 줄이는 벌칙을 만들었다. 실업자에 대한 압박이 가해지자 실업률이 떨어졌다. 실직하지 않은 사람도 자신을 연마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덴마크에서는 기업이 종업원을 해고하기 쉬운 유연성과 실업보상·직업훈련에 의한 안전성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유연성은 유럽 전체로 확산된 노동모델이다. 그 발상지는 덴마크다.
고복지 북유럽 모델이 성립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는 민족과 문화의 동질성에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균질한 사회에서는 국가가 세금을 사용해 평등한 복지를 제공하는 합의를 이끌어내기 쉬웠다고 한다. 이민의 증가로 이 전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세계의 최대 화두는 ‘경제안전보장’이었다. 올해도 이 개념은 한층 확대·강화될 것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자유롭고 열린 국제 질서를 유지·발전시킨다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노선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가치 외교다. 국익도 가치 외교에 따라간다. 이런 점에서 같은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싱가포르, 인도, 북유럽과 협력을 강화하고, 이들의 성공모델을 우리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매우 유익할 것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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