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다니는 A씨는 부서 내 유일한 여성 직원이다. A씨는 회식 자리에서 남성 동료로부터 "한 팀에 여성이 두 명 이상 있으면 꼭 싸움이 나고 팀 분위기를 망친다. 다른 여성들을 제치고 유일하게 살아남았으니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올해 입사 15년 차인 A씨는 자신의 연봉이 입사 동기이자 남성인 B씨의 70% 수준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두 사람 모두 연초 인사 때 부장으로 승진했지만, 생각보다 연봉 차이가 컸다. 임원들은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우리 때는 격차가 더 컸다. 이 정도면 많이 나아진 거다"라고 위로한다.
성평등지수 높아진다지만...고위직·임금 차별 커
2021년 우리나라의 성평등지수는 75.4점으로 1년 전보다 0.5점 높아졌다. 성평등지수는 경제활동이나 의사결정, 복지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수치다. 남녀 간 성평등이 완전하게 구현됐을 때를 100점으로 본다.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차별은 여전하다. 4급 이상 여성 공무원 비율과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이 포함된 의사결정 분야는 2020년 36.4점에서 2021년 38.3점으로 8개 분야 중 상승률이 가장 높았지만, 여전히 다른 분야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4급 이상 여성 공무원 비율은 39.5점,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22.9점에 불과했다. 고위직을 독식하고 있는 남성의 사회적 발언권이 클 수밖에 없다.
남녀 임금 격차도 크다. 지난달 OECD가 발표한 '성별 임금 격차(Gender wage gap)'를 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은 31.12%로 집계됐다. 지난해 남녀 노동자들의 연봉 중간값을 비교한 결과로 남성이 100만원을 수령할 때 여성은 68만8800원만 받았다는 의미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웃나라 일본(22.1%)은 물론 미국 16.9%, 캐나다 16.7%, 영국 14.3%, 멕시코 12.5% 등과의 차이가 현격했다. 한국은 OECD에 가입한 1996년 이후 26년째 꼴찌를 도맡고 있다.
그나마 희망적인 건 남성 육아휴직자 신청 비율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종전의 '육아=엄마'라는 등식에서 벗어나 '공동 육아'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28.9%였다. 이 비율은 2019년 21.2%에 불과했으나 2020년 24.5%, 2021년 26.3%, 2022년 28.9% 등으로 매년 꾸준히 오르는 추세다.
양성평등 정책 실효성은...여성단체 "원론적" 비판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발표한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에서 △함께 일하고 돌보는 환경 조성 △안전과 건강권 증진 △양성평등 기반 확산 등을 3대 목표로 제시했다.우선 성별근로공시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해 임금 격차를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기업이 채용·근로·퇴직 단계의 항목별 성비 현황을 외부에 공시하고 격차를 자율적으로 개선하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고용보험 대상자 확대(특수고용직 등)에 따른 육아휴직제 확대 적용도 검토 중이다. 육아휴직 기간 역시 현행 1년에서 1년 반으로 늘리는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나 여성단체는 원론적인 수준의 대책이라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여가부 안의 대부분이 고용부나 보건복지부, 법무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가 필요하거나 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항이라 현실화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것이다.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성별근로공시제 경우 기업에 자율적으로 맡긴 상황이고, 여성단체가 꾸준히 주장해 온 성별 임금 격차 해소 방안에 대한 로드맵도 보이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