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출산율은 0.8명으로 세계 꼴찌다. 합계 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진 건 1999년으로 4년 연속 1명을 밑돌고 있다. 출산율 1명 이하는 세계에서 유일하며, 인구 학자들은 한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할 나라로 꼽는다. 정부는 2006년부터 출산율 정책에 무려 280조 원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예산도, 정책으로도 안 되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출산율 높이는데 돈을 쓸게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고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출산율 하락에 따라 가장 타격을 받는 분야는 대학과 산업현장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은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산업현장은 일할 사람이 없어 가동을 멈춰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 대입 수시모집에서 경쟁률 6대1이 넘지 않은 4년제 대학은 96곳으로, 지역대학은 80%(77곳)를 차지했다. 경쟁률 6대 1은 사실상 미달로 간주된다. 지역대학은 미달은 지난해도 72곳이었다. 학령인구 감소가 일상화됐다는 반증이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 닫는다는 말도 이제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병역자원 확충이다. 산업현장에서 모자라는 인력은 외국인 근로자로 대체할 수 있다. 나라를 지키는 국방의무는 외국인에게 맡길 수 없다. 현 추세대로라면 연간 출생아는 25만 명 선에 머물 것으로 전망한다. 이 가운데 군 복무를 해야 하는 남자 아이는 14만 명 남짓이다. 우리군 상비 병력은 이전보다 감소했지만 여전히 50만 명을 헤아린다. 현 수준을 유지하려면 매년 22만 명이 필요하다. 현실에 비춰볼 때 연간 출생아 14만 명으로는 상비 병력 유지가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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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정책은 간부 정예화로 모아지고 있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부사관 뿐만 아니라 장교 확충도 여의치 않다. 사병 월급 인상에 앞서 우수한 군 간부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과 미군 장교 급여를 비교하면 우리 군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다. 지난해 3월과 6월 비슷한 시기에 중위로 진급한 한국 장교와 미군 장교를 비교해 보자. 한국군 중위 A가 받는 연봉은 기본급에다 식대와 연가보상비, 초과근무 등 각종 수당을 합해 3,850만원 수준이다. 반면 미군 장교 B는 기본급에다 집값과 식대를 포함해 8만9,938달러를 받는다. 최근 환율로 환산하면 우리 돈으로 1억1,000만원을 넘는다. 미군이 3배 더 받는다. 한국과 미국 물가 수준과 현지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양국 차이는 지나치다.
육군사관학교나 육군 ROTC 지원율은 급락하고 있다. 육사 경쟁률은 2020년 최고 44.4대1을 기록한 뒤 지난해 26.2대1로 크게 하락했다. 더구나 여자 생도는 최고 111대 1을 기록했지만 남자 생도는 20% 미만에 그쳤다. ROTC 학군장교 경쟁률 하락은 한층 심각하다. 2015년 4.5대1에서 지난해 2.4대1로 반 토막 났다. ROTC 장교는 육군 초급장교의 70%를 차지한다. 대부분 최전방 지휘자로서 육군을 지탱하는 중추다. 그런데 ROTC 인기 하락을 반영하듯 수도권 대학에서 경쟁률 2대1을 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폐지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ROTC가 위기에 봉착한 결정적 이유는 다양한 유인책 폐지가 첫째다. 과거 제공했던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대기업 채용 가점이 없어졌다. 복무기간도 중요한 걸림돌이다. ROTC 의무 복무기간은 1968년 28개월로 운용된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다. 같은 기간 사병은 36개월에서 18개월로 절반 줄어 대조된다. 이전에는 ROTC 장교 복무기간이 병사들보다 짧았지만 이제는 거꾸로 10개월 길다. 혜택은 줄고 의무기간은 길다보니 지원하지 않는다.
이밖에 군 관계자들은 통솔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인권 감수성 확대라는 시대적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제한 때문에 정상적인 통솔마저 애를 먹고 있다. 명령을 근간으로 하는 군 특성상 지휘명령은 필수지만 이마저도 인권을 이유로 제약받고 있다. 구타나 얼차려 금지는 당연하지만 통상적인 지휘명령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군이라면 큰 문제다. 하지만 언론보도를 의식한 나머지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했다는 불만이 만만치 않다.
간부 정예화가 필연적이라면 이들의 명예와 사기를 올려주는 병영 문화와 함께 파격적인 급여 인상, 처우 개선은 관건이다. 장교 출신 채용 우대를 특혜가 아닌 국가를 위한 헌신에 대한 예우로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병역을 이행한 사병에 대한 가산점도 성차별을 떠나 적극 고민해야 한다. 지금처럼 의무만 강요하고 합당한 대우를 소홀히 한다면 군 전력 유지는 한계가 있다.
이와 함께 갈등을 유발하고 범법자를 양산하는 병역 특례제도 폐지를 공론화할 할 때다. 최근 언론보도에서 보듯 스포츠와 예능분야에서 병역 특례제도를 악용한 병역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 귀화자를 병역자원으로 끌어들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병역법(65조)은 귀화한 외국인 남자는 병역 의무가 없다. 다만 본인이 희망할 경우 보충역 또는 전시 근로역에 편입할 수 있다. 우리 국적을 취득한 귀화 외국인은 2018년 기준 20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을 우리사회가 병역 자원으로 포용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파격적인 급여 인상과 복지는 간부 정예화를 위해 선행되어야 한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간부 정예화가 현실이라면 걸맞은 정책을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덧붙여 군을 자랑스럽고 존중하는 문화를 기대한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