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던 테슬라, 감산에 할인공세까지
전기차 전문매체 인사이드EV는 지난 19일 테슬라의 글로벌 추정 주문 잔고가 지난 7월 말 약 50만대에서 지난달 말 19만대로 급감했다고 밝혔다. 4개월 만에 차량 판매량이 약 62%나 주저앉았다.
최근 테슬라는 중국 생산공장인 상하이 기가팩토리의 감산을 결정하면서 판매량 둔화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줬다. 표면적으로는 중국 내 코로나19 환자 급증으로 감산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중국 내 토종 전기차 제조사인 BYD(비야디)보다 판매량이 밀리고 있다. 중국상업은행(CMBI) 보고서에 따르면 이달 1~25일 테슬라의 중국 내 하루 평균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0%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본토 미국에서도 7500달러(약 944만원)를 깎아주는 할인공세를 펼치고 있다. 테슬라 자체 충전소인 ‘슈퍼차저’에서 사용할 수 있는 1만 마일 무료 충전 혜택까지 추가 제공하며 재고 줄이기에 안간힘이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는 10월부터 할인행사에 들어갔고 최근에 할인폭을 더욱 높였다.
시장 안팎에서는 테슬라의 이러한 조치가 내년 전기차 시장의 침체를 예고하는 징조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 기준금리의 가파른 인상에 자동차 소비 주요국마다 고금리에 나서 이미 구매심리가 크게 얼어붙었다. 국내의 경우 캐피탈사와 신용카드사의 조달금리가 천정부지 올라 자동차 할부금리는 10% 이상을 형성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이달 기준 현금 10% 비율로 36개월 할부를 적용해 3000만원대 중형 세단을 구매한다면 캐피탈사와 카드사를 막론하고 평균 11%대의 할부금리가 적용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 2~3%대의 할부금리와 비교하면 5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더욱이 전기차 구매 유인책이었던 보조금마저 축소 분위기다. 국내 전기차 보조금은 내년부터 최대 7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줄어들 예정이다. 보조금은 낮아지지만 전기차 제조사들은 원자재 공급난 등의 이유로 전기차 가격을 올리고 있어 구매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현대차 ‘아이오닉5’의 2023년 연식변경 모델의 경우 이전 모델보다 가격을 약 400만원 인상했다.
전기차 열풍의 선봉장이었던 유럽에서는 치솟는 전기료에 전기차 충전비용이 휘발유값과 차이가 없어졌다. 전기차 강점인 유지비 경쟁력이 단숨에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독일에서 테슬라 ‘모델3’가 슈퍼차저에서 100마일의 주행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충전하는 비용은 18.46유로(약 2만5000원)가 든다. 같은 조건에서 혼다 ‘시빅’의 휘발유값은 18.31유로를 형성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어니스트앤영(EY)은 보고서를 통해 유럽 전역의 전기료가 장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에너지 수급난이 심각해진 결과다. 전기차 충전소 인프라 확대도 전기료 급등에 지지부진할 전망이다.
주요국마다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거나 할인폭을 대폭 삭감한 점도 수요 확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올해 유럽에서 영국과 스웨덴은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철폐했으며, 독일과 노르웨이는 보조금 혜택을 크게 줄였다. 독일은 2026년 전기차 보조금을 아예 없앨 계획이다.
이 밖에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에 따른 중국산 배터리 광물 사용제한에 따라 전기차 소재 공급망에 큰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호주 산업과학자원부는 최근 배터리 소재 필수 광물인 리튬 가격이 내년 50% 이상 치솟을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기차 시장을 노린 일부 자원부국이 리튬의 자원무기화를 꾀하는 점도 시장 활성화를 저해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전기차 시장은 제조사들의 잇따른 전기차 출시와 각국 정부의 보조금 혜택과 인프라 확충에 힘입어 고공성장을 거듭했다”면서 “내년에도 제조사들의 전기차 신차가 쏟아지지만 시장을 둘러싼 불투명성이 극에 달하면서 신차 출시만으로 소비 활성을 도모하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