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채권시장 안정화를 위해 대규모 유동성 지원에 나섰지만 단기자금시장은 오히려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기업들의 단기자금 조달 창구인 91일물 기업어음(CP) 금리는 금융위기 수준까지 치솟았고, 국고채 3년물과 신용등급 ‘AA-’ 회사채 3년물 간 차이인 신용스프레드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말 회계장부 결산으로 기관들의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내년 초까지 단기자금시장에는 냉기가 돌 것으로 전망돼 기업들은 더욱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게 됐다.
24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이날 91일물 CP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0.08% 오른 5.48%로 마감했다. CP 금리는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월 12일 5.66% 이후 13년 10개월 만에 최고치다. 또 은행이 발행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0.01% 뛴 4.03%를 기록해 2008년 12월 23일 4.03% 이후 13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또 ‘AA-’ 회사채 3년물은 소폭 하락하며 5.402%로 마감했고 국고채 3년물도 소폭 내린 3.689%로 마감했으나 회사채 신용 위험도를 나타내는 신용스프레드는 전날 1.687%포인트에서 이날 1.713%포인트로 확대된 상태다.
CP 금리가 상승한 것은 한국전력공사채권(한전채)이 시장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은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누적된 적자 해소를 위해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에 적극 나선 상태다. 이에 따라 연초 이후 지난 11월 22일까지 순발행된 한전채는 26조96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발행액인 7조9800억원 대비 세 배 넘는 금액이다.
한전채와 같은 우량 채권들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자금 조달에 나선 기타 기업들은 채권 대신 CP 발행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발행보다 상환이 더 많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CP 이자율은 빠르게 상승 중이다. 금투협에 따르면 11월 CP 순발행액은 –4조4904억원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 2조9820억 순발행된 것과 정반대 모습이다. 이는 CP 발행이 줄어든 대신 상환한 액수가 그만큼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크레디트 시장 안정을 위해 금융당국이 한전채 발행 자제를 요구했으며 이에 대응해 은행 대출로 전환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하지만 한전채 발행과 관련하여 정책 변동이나, 보조금 지급 등 추가적인 대책이 필수적이며 해결책이 조속히 추진되지 않으면 한전채 발행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연말 북클로징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도 고려하면 투자자들은 당분간 신중히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확산된 신용위험이 단기간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다소 위험해 보인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속도 조절 속에 내년 초 시장 내 자금 유입이 원활하기 전까지 단기자금시장 자금경색이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