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환경의 악화를 우려하는 국가가 자국의 군사능력을 강화해도 그것이 오히려 주변국을 자극해 같은 조치를 초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안보의 향상이 아니라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안보딜레마는 국제정치의 중요한 연구 주제 가운데 하나다. 상호불신과 위협인식에 바탕을 둔 공포심과 불안이 안보딜레마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군비증강 경쟁을 초래하고 때로는 선제공격의 충동을 부추기기도 한다. 우려스럽게도 지금 한반도 주변에서 안보딜레마가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올해 들어와 30차례나 미사일을 발사했다. 지난 2일에는 원산 부근에서 발사한 탄도미사일 가운데 1발이 분단 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남쪽 26km 공해상에 떨어졌다. 이날 긴급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실질적인 영토침해 행위’라고 비난하고 ‘분명한 대가를 치르도록’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북한의 도발적 군사행동은 10월 3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와 11월 1일 박정천 당 중앙위원회 비서 담화에 잘 나타나 있듯이 한국군과 미군의 대규모 연합공중훈련에 대한 반발의 성격이 강하다. 5년 만에 실시된 대규모 한미 연합공중훈련을 우리는 ‘연례적이고 방어적’이라고 강조하지만, ‘전략적대상들을 타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침략적이고 도발적인 군사훈련’으로 규정한 북한을 ‘군사적으로 자극’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북한은 자국에 대한 “적대의식을 고취하며 승산없는 무력증강책동에 천문학적액수의 자금을 탕진”하고 있는 일본이 자국의 “정정당당한 자위권행사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는다면 안보불안만 증대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북한 외무성 홈페이지 게재 10월 24일자 논설, 스스로 화난을 불러오지 말라).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7일 “국가안전보장의 최종적인 담보가 되는 방위력을 5년 이내에 발본적으로 강화”할 것을 각의에서 결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방위성은 2023년도 방위예산으로 역대 최대규모인 5조 5,598억 엔을 요구했는데, 여기에는 적의 사정거리 밖에서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스탠드오프 미사일의 양산을 비롯해 금액을 명시하지 않은 소위 ‘사항요구’는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9년 만에 개정되는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세 가지 안보 관련 문서를 개정할 예정이다. 지난 4월의 자민당 제언대로 적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 즉 ‘반격능력’의 보유를 결정하게 되면, 이것은 전수방위원칙에 반하고 일본 방위 정책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일본 정부의 설명대로 억제력을 강화하고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는 효과도 있겠지만, 군사적 능력에 대한 의존이 역내 군비확장 경쟁을 초래해 오히려 일본의 안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특히,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육상자위대가 보유하고 있는 사정거리 약 200km의 12식 지대함 유도탄의 사거리를 1,000km까지 늘려 함정과 전투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하고 양산화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적기지 공격’에 전용할 수 있는 개량 작업은 2026년이 되어야 완료되며, 그때까지 미국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구입할 것을 결정하고 미국과 교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바마 정권 때 한국 등의 우려를 이유로 일본의 토마호크 미사일 구매 타진을 거부했던 미국 정부가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동맹과의 협력을 중시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은 전하고 있다. 토마호크는 함정과 잠수함에서도 발사할 수 있고 사정거리도 1,000km를 훨씬 넘기 때문에 중국과 북한은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지난 10월 12일 백악관이 공개한 ‘국가안전보장전략’은 대국 간의 경쟁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맹과 파트너십은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라며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동맹의 현대화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미국은 NPR에서 중국, 북한 및 러시아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 일본 및 호주 등 동맹에 대한 확장억제 협의를 강화할 것이며, 나아가 3자(한미일) 혹은 4자(한미일+호주) 간의 정보공유와 대화 기회를 만들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민주주의와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 동맹국 간의 협력과 연계를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중국과 북한의 행동을 우리가 바라는 대로 강제할 수는 없다. 유일한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는 중요하나 미국에 의존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생존과 국익이 보장되지 않는다.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미·일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일본의 방위력 증강이 바로 대북 억제력 강화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지금 우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자주 언급하듯이 ‘결정적인 10년(decisive decade)’의 시기를 살고 있다. 남북한과 주변 국가들이 상호불신과 안보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외교적 해법의 가능성을 닫아서는 안 된다. 또한, 한·미·일의 안보협력도 위협인식이 군비증강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함정(陷穽)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추진해야 한다.
조진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도쿄대 법학박사(국제정치전공)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