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6일 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개막식 업무보고에서 '기술자립'을 강조하면서 이같이 주문했다. 미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미국이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의 발전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전략적 핵심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미국의 공세에도 중국 강한 대응 선언
반도체가 글로벌 기술 패권의 핵심으로 떠오른 만큼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패권 싸움이 갈수록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은 새로운 제재를 검토하고 있고 중국은 강경 대응 중인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면서 반도체 전쟁이 '강 대 강'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이다. WSJ은 기술자립과 과학, 교육에 대한 강조는 미·중 간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나왔다는 것을 주목했다. 실제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당대회 개최 직전인 지난 12일(현지시간) 발표한 첫 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에 대한 첨단 기술 규제를 확대하겠다면서 "향후 10년간 미국의 유일한 경쟁자인 중국과의 경쟁에서 앞서 나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국가안보전략은 바이든 대통령 임기 중 모든 외교 전략의 근간이 되는 최상위 전략지침이다.
정치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중국 애널리스트인 닐 토머스는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당대회 업무보고서가 과학과 교육에 새로이 초점을 맞춘 것은 시 주석이 중국의 경제 문제와 서방 기술 의존에 대한 해결책으로 혁신에 승부수를 걸었다는 점을 반영한다"며 "이는 최고로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美 보란 듯...中, 반도체 굴기 '지속'
중국은 미국에 보란 듯 자국 반도체 지원 정책을 확대하며 '반도체 굴기(崛起·우뚝 섬)'를 지속하는 모습이다.중국의 기술 허브로 꼽히는 광둥성 선전시는 최근 반도체·집적회로 산업의 고품질 촉진 관련 조치를 발표해, 지역 내 반도체 설계 업체에 연간 1000만 위안(약 20억원)을 지급하고 새로 사업장을 여는 기업에 3000만 위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선전에서 설계된 반도체를 구입하는 기업에는 구매 금액 20%의 지원과 연간 500만 위안을 지원하기로 했다.
뒤이어 중국 저장성 리수이시도 지난 14일 관할 지역 내 반도체 설계 회사들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책을 발표했다. 연간 매출액이 2000만 위안이 넘는 반도체 설계회사에 30만 위안, 매출액 1억 위안 이상 반도체 설계회사에는 100만 위안, 매출액 5억 위안 이상인 반도체 설계회사에는 500만 위안의 보조금을 각각 지급한 것이다.
이 밖에 장쑤성 난징, 안후이성 허페이 등 지방정부도 줄줄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보조금 정책을 발표했다. 상하이시는 이달 초 미국과의 기술경쟁 상황에서 '미래산업의 중심기지'가 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중국 지방 정부들의 자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 정책은 미국이 최근 새로운 대(對)중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하는 등 대중국 반도체 견제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반도체 굴기'를 추진하려는 중앙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운 중국 당국은 외국산 반도체 의존도를 줄이고 반도체 공급망을 완전 구축하기 위해 현지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최근 추진 중인 '작은 거인(小巨人) 육성 프로젝트'도 그 일환이다. 중국 당국은 미·중 무역갈등을 계기로 기술 자립을 위해 이른바 '작은 거인 육성' 프로젝트에 주력하고 있다. 작은 거인이란 작지만 경쟁력 있는 강소기업을 말한다.
작은 거인은 최근 중국 경제의 최대 화두다. 중국 정부는 최근에도 '우수중소기업 육성관리 방법'을 발표하며 2025년까지 1만개 전정특신 강소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전정특신은 전문성(專), 정밀성(精), 특별함(特), 참신함(新)을 가진 강소기업이란 뜻이다.
미국 제재, 결국 중국 반도체 굴기 가속화하나
물론 미국의 제재가 가시화되고 있다. 중국 고강도 방역정책 '제로코로나' 정책 등으로 중국 본토 내 제조업 활동 위축 영향도 있겠지만 전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중국의 반도체 칩 수입량이 미국과의 기술전쟁 여파로 올 들어 13%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실제 24일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집적회로 수입량은 1~9월 누적 기준 4171억개로 전년 동기 대비 12.8% 감소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수입 증가폭이 전년 대비 23.7%로 가파른 성장을 보인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가 오히려 반도체 굴기 속도를 올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엔 미국이 대중 반도체 수출 제한 정책을 발표하자 오히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는 등 미국은 미·중 반도체 전쟁에서 이미 지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전문가를 인용해 미국의 특정 산업에 대한 제재가 결국 중국의 특정산업 자립도만 높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중국은 풍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외국 기업과 정부의 견제를 이겨내고 결국 기술 자립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5G와 고속철도다.
블룸버그는 미국의 제재로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달성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지만, 중국은 엄청난 내수시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은 걸리지만 자립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앞서 지난 6월 블룸버그가 자체 집계한 지난 4개 분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반도체 기업 20곳 중 19곳이 중국 기업이었던 점도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아울러 이번 제재로 전 세계 반도체 업체들은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과의 반도체 전쟁에서 이미 지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평가했다. 실제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 이후 세계 반도체 업체의 주가가 폭락, 올 들어 반도체 업체의 시가총액(시총)은 약 1조5000억 달러(약 2149조원)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언론들도 미국의 제재가 중국에 위기이자 기회라며 중국이 결국 이겨낼 것이라고 전했다. 24일 중국 경제 매체 진룽제는 중국 투자은행 시그너스에쿼티의 반도체팀을 인용해 미국의 제재를 분석한 결과 제재 조치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겠지만 외신에서 보도하는 것만큼 중국 반도체칩에 전면적인 타격을 주진 않을 것이고 오히려 산업 발전 속도를 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