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5박 7일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이 애초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분위기다. 순방의 하이라이트로 꼽혔던 한·미, 한·일 정상 간 만남은 '48초 회담', '약식 회담(혹은 간담회)'로 끝났다. 야당에서는 '외교 참사'라는 말이 나온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외교의 기본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관들이 우회적이고 유화적인 화법, 이른바 '외교적 수사'를 사용하는 것도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질 수도 있는 것이 외교무대다.
외교는 '소리없는 전쟁터'다. 그래서 프로토콜(Protocol, 의전절차)이나 관례를 중시하고 사전 준비와 조율에 집착한다. 국익이 걸린 협상에 돌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경우 그에 대처할 플랜B, 플랜C를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정상회담에서 나올 이야기는 실무진 차원에서 이미 다 조율해놓고, 정상들은 준비된 원고를 읽고 웃으며 사진만 찍는 것이 통상이다. 사소한 것 같지만 정상회담 개최 발표를 당사국들이 같은 시간 동시 발표하는 것도 그러한 꼼꼼한 준비과정의 일환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윤석열 정부 외교라인이 사전 준비와 조율을 철저히 했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플랜B와 플랜C를 제대로 준비했는가.
지난 15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공언했지만 결과적으로 실언이 됐다. 상대국과 조율을 끝마치지 않은 일방적인 발표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됐고 '어떻게든 만나달라'고 저자세를 자처하게 했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갑작스런 초청에 두 개의 예정된 일정을 취소했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의 회동도 기시다 총리의 행사장을 윤 대통령이 찾아가 만나는 형식으로 간신히 성사됐다.
윤 대통령 혹은 대통령실 핵심 참모들은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일본과의 '강력한 연대'를 구축하면 난마처럼 얽힌 북핵문제 등 다양한 국제사회 난제들을 풀어갈 수 있다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도그마(Dogma, 신조)'가 해답인지 여부도 의심스럽지만 현실화 역시 전혀 별개의 문제다. 과연 지금의 대통령실이 '국제사회의 전환기(Watershed Moment)'를 헤쳐나갈 외교적 능력이 있는가. 윤 대통령과 참모진의 철저한 반성과 각성,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