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여행]① 추억이 스민 궁궐…경복궁

2022-09-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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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언제쯤 끝나나 했더니 어느덧 가을이다. 선선한 날씨가 폐부를 간질인다. 여행 가기 딱 좋은 계절이다. 특히 이번 추석 연휴는 일상회복 후 처음 주어진 '온전한' 휴가다. 당장 행장을 꾸려 가을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그곳'을 찾아가련다. 목적지가 어디냐고? 학창시절 수학여행지로 주목받았던 국내 대표 여행지다. 한국관광공사가 마침 추억의 수학여행 명소를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경주 불국사부터 서울 경복궁에 이르기까지 중장년층의 추억을 소완하는 여행지 세곳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경복궁 근정전과 박석[사진=기수정 기자]

경복궁(사적)은 추억과 어울린다. 전각 지붕에는 애틋한 사연이 내려앉고, 교복 대신 한복을 입은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마당을 채운다. 왕비가 거닐던 꽃담, 왕이 풍류를 즐기던 연못가에 궁의 이야깃거리가 담겨 있다. 근정전 박석에 지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질 듯한데, 담장을 돌아서면 따사로운 햇살과 미소가 창호에 스며든다. 궁은 서울로 수학여행에 나선 학생들의 단골 방문지였다.

경복궁은 조선왕조 5대 궁궐 중 최초로 건립했다. 태조는 조선을 세운 뒤 고려의 도읍지 개경에서 한양(서울)으로 천도하고, 1395년 경복궁을 창건했다. 권위가 깃든 정궁이자 왕이 정사를 돌보던 법궁이며, 국가의 대사를 이곳에서 거행했다.
수없이 보고 들은 공간이지만 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맞닥뜨림은 생경하다. 광화문 천장에는 주작이 그려졌고, 문 너머로 흥례문과 백악산(북악산)의 자태가 곱다. 일제가 세운 조선총독부가 한때 이곳을 가로막았으나, 지금은 완연한 왕궁의 품 안이다.

돌짐승이 다리를 지키는 영제교를 지나면 근정전으로 향하는 길이다. ‘천록’이라 불리는 돌짐승은 물길을 타고 궁으로 들어서는 나쁜 기운을 경계하는 역할을 했다. 세 번째 남문인 근정문(보물)의 가운데 문은 왕이 지나는 ‘어문’이고, 동쪽 문은 문관, 서쪽 문은 무관이 오갔다. 성리학에 바탕을 두고 세운 궁궐에는 길과 문마다 준엄한 규율이 존재했다.

정치가 발현되던 근정전(국보)은 유별함과 휴식으로 무르익는다. 일월오봉도를 드리운 용상은 경복궁의 어느 공간보다 화려하다. 월대 모서리의 석견상은 새끼를 품에 안은 모습이 해학적이다. 월대 아래로는 흥례문, 광화문이 직선으로 엄숙하게 뻗어 있다. 예전 육조 거리였던 세종로 마천루와 새롭게 단장한 광화문광장도 담장 너머 몸을 낮춘다.

근정전 드넓은 마당에는 박석을 깔았다. 박석은 궁궐의 넉넉한 여백이 되고, 동서남북을 에워싼 행각은 여행자의 쉼터로 자리를 내준다. 행각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대고 근정전과 인왕산, 백악산을 바라보면 왕의 느꼈을 번민이 발끝에 스며든다. 태조 때 정도전이 올린 근정(勤政)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이 부지런해야 다스려진다’라는 뜻이다.

근정전과 경회루(국보)를 잇는 길은 방문객으로 늘 분주하다. 임금은 나뭇잎 서걱대고 꽃향기 흩날리는 연못 위 경회루에서 궁중 연회를 베풀었다. 연못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허리를 낮추고 그늘을 만든다. 경회루는 노비 출신 토목건축가가 처음 건립했으며, 1960년대에는 스케이트장으로 쓰였다. 연못 앞 수정전(보물)은 궐내 각사 중 유일하게 남은 곳으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집현전이 있던 자리다.

궁은 깊숙이 들어설수록 이야깃거리를 더한다. 임금의 집무실인 사정전(보물) 좌우에 자리한 만추전과 천추전에는 온돌을 깔고 난방을 한 아궁이 흔적이 있다. 왕의 침전인 강녕전 지붕과 추녀는 마주 보는 선이 유독 아름답다. 강녕전 서쪽 경성전에는 왕의 우물 ‘어정’이 있다.

왕비가 머무는 교태전은 아담한 쪽문과 창호 밖 후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교태전에 들어서면 궐은 바탕색을 바꾼다. 화려한 단청 아래 아미산 뒤뜰에는 왕비의 마음을 다독였을 화단이 있다. 꽃과 나무, 새 등이 새겨진 아미산 굴뚝(보물)은 교태전 꽃담과 어우러져 궁을 자줏빛으로 단장한다. 대비가 머무르던 자경전(보물)에도 십장생 굴뚝(보물)의 섬세함이 깃든다.

후원 영역인 향원정(보물) 너머 건청궁은 궁궐 안의 또 다른 궁이다. 고종은 경복궁 북쪽 끝에 단청 없는 사대부 가옥을 짓고 머물렀다. 건청궁은 국내에서 처음 전기가 들어온 전기등소이기도 하다. 명성황후는 건청궁 내 옥호루에서 일본 자객의 칼에 맞아 슬픈 죽음을 당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당시 불탔고,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주도해 중건하기까지 270여 년간 외면됐다. 일제강점기에 전각이 헐리는 등 또다시 훼손의 아픔을 겪었다. 조선 최초 궁궐이라는 위용 뒤에는 질곡의 과거가 있다. 경복궁은 2045년까지 단계별로 복원을 진행 중이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화요일 휴궁), 관람료는 어른 3000원이다(만 24세 이하·65세 이상 내국인 무료). 무료 해설을 진행하며, 문화가 있는 날(매달 마지막 수요일)과 한복을 입은 사람은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경복궁 옆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왕실 유물을 살펴볼 수 있다.

경복궁 북쪽 신무문을 지나면 청와대 정문과 연결된다. 청와대는 경복궁의 후원이 있던 자리다. 올해 전격 개방해 청와대 본관, 영빈관 등을 내부까지 둘러볼 수 있다. 대통령 옛 관저에는 장독이며 살림살이가 남아 있다. 관저 뒤쪽 산책로를 오르면 ‘미남불’이라 불리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보물)과 만난다. 전통 가옥 침류각(서울유형문화재)도 경복궁 후원의 자취다. 청와대의 운치를 더하는 상춘재, 녹지원 등은 냇물이 흐르고 새가 지저귀는 숲길 옆에 있다.

수백 년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조연은 북악산이다. 올봄 북악산 남측면 탐방로가 개방되며 삼청안내소에서 청운대전망대까지 오르는 길이 열렸다. 창의문에서 시작되는 한양도성 백악구간은 백악마루와 청운대를 거쳐 숙정문, 와룡공원, 혜화문까지 이어진다. 북악산을 밟고 북한산을 바라보며 호젓하게 걷는 길로, 탐방에 약 3시간 30분이 걸린다.

경복궁 서쪽의 서촌은 북촌과 달리 옛 서민의 삶터가 있던 곳이다. 서촌에서 주목받는 공간은 옥인길이다. 윤동주 하숙집 터, 갤러리로 변신한 옥인동 박노수 가옥(서울문화재자료) 등 예술가의 자취를 따라갈 수 있다. 통인시장 지나 인왕산이 마주 보이는 골목에는 한옥, 식당, 카페, 빵집 등이 옹기종기 들어섰다. 옥인길 끝자락에 인왕산 수성동계곡(서울기념물)이 흘러, 도심 속 숨은 계곡에서 시원하게 발 담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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