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은 올 하반기 계획했던 인수합병(M&A)과 해외 투자 계획을 다시금 저울질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와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여파로 경기 활성화를 기대했지만 현재 상황은 완전히 정반대다. 금리와 국제유가 상승도 모자라 강달러 상황이 지속하면서 하반기 불확실성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무엇보다 M&A를 재점검하는 기류가 강하다. 대내외 환경이 불확실한 가운데 고환율을 감수하고 인수에 나섰을 때 장기적으로 자금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표적으로 LX홀딩스는 LX세미콘을 앞세워 차량용 전력 반도체 사업 회사인 미국 매그나칩 반도체 인수에 공을 들여왔다. LX세미콘은 지난 5월만 해도 매각 주관사인 JP모건에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하고 실사를 마쳤다. 하지만 이달 들어 돌연 인수 포기설이 나오는 상황이다. LX그룹은 매그나칩 인수와 관련해 공식적으로는 계속 검토 중이라고 말한다.
삼양그룹은 지난해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해외 고부가가치(스페셜티) 소재 업체 인수를 숙고하고 있다.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은 직접 미국과 유럽 지역에서 스페셜티 전문 업체를 찾아 M&A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부 투자자와 함께 최대 1조원 베팅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위해 올해 초 현지로 나가 유망 업체도 살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회장은 최근 태도를 선회해 M&A에 대해 관망세로 돌아섰다. 발목을 잡은 것은 역시 가격이다. 각국 기업들이 현금 유동성을 중시하면서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환율이 더해지면서 삼양그룹으로선 애초 예상한 가격보다 더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삼성전자도 이재용 부회장 복권 이후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했던 해외 반도체 기업 M&A를 숙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조 바이든 대통령 방한 이후 탄력을 받던 기업들의 대미 투자도 한풀 꺾일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제2공장 착공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력 확보에 더해 고환율 악재까지 겹치면서 애초 약속했던 170억 달러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지난해 11월만 해도 1달러에 1180원이라 원화로 20조원이었으나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22조7800억원에 달한다.
현대차그룹도 강달러에 투자 부담이 커졌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제정으로 인해 애초 계획했던 전기차 전용 공장과 배터리셀 공장 등에 속도를 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지난 5월 계획한 50억 달러 투자액이 원화로 6조3000억원에서 불과 3개월 만에 6조8000억원으로 뛰었다. 업계 관계자는 "IRA 시행으로 마음이 바쁜 현대차그룹은 2025년 상반기로 예정한 공장 가동 시기를 앞당겨야 하는데, 고환율과 인력 투입 확대로 당초 계획한 것보다 투자액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