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자가 만난 중국 전문가들을 만나면 이같이 입을 모은다. 한국은 난관에 봉착했다. 상대는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으로 또다시 한국이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 동맹 '칩(Chip)4'에 한국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밀고 있으면서다. 칩4 동맹은 미국, 한국, 대만, 일본 등 4개국 간 반도체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꺼내 든 구상으로, 사실상 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우뚝 섬)'에 대한 견제 성격이 강하다.
중국은 칩4 동맹 가운데에서도 유독 한국의 칩4 동맹 참여를 경계하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지난 18일부터 한국의 칩4 동맹 참여를 견제하는 기사, 사설을 올렸다. 앞서 지난 21일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중국은 한국 반도체 산업 최대 시장"이라며 "이렇게 큰 시장과 단절하는 것은 상업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23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공급망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적극적 외교'를 주문했다는 보도를 인용하며 "이 문제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중함은 한국이 칩4 동맹 참여의 득실을 조심스럽게 계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도 보도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이어 "한국이 최대 교역 상대인 중국에 대한 미국의 기술 분야 견제에 맹목적으로 참여할 경우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외교부는 이와 관련해 미국의 가입 제안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미국은 우리 정부에 8월 말까지 참여 여부를 확정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택을 요구받은 만큼 한국은 이제 미국과 중국 둘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 업계에서는 칩4 동맹에 가입할 경우 거대한 중국 시장을 잃을 수 있지만 가입하지 않으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될 위험이 크다고 보고 있다. 재편되고 있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칩4 동맹에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전략이 필요하다.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는 "칩4 동맹에 가입하는 것은 좋으나, 현 동맹 성격으로 가입하게 되면 기업에 치명적이다"라며 "우리 식으로 다시 설계해 기존의 칩4 성격을 희석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배타적 협의체가 아니라는 점 등을 명확히 하자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반도체 분야에서 우리의 영향력이 크다"며 "그 부분을 활용해 동맹의 모습을 지금과 다르게 이끌어갈 수 있도록 역제안을 걸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전했다. 또 정부가 기업과의 소통을 많이 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중국을 배제하게 되면 반도체가 아닌 다른 분야로 제재받을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 우리는 이미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 중국의 보복을 경험한 바 있다. 앞으로도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계속되는 한 한국은 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한국 경제와 외교·정치 전반을 고려한 영리한 한 수가 필요하다.